DJ 추도식에 여야 대표 '아전인수' 추도사 눈길
[곽재훈 기자(nowhere@pressian.com)]
18일 서울 동작현충원에서 열린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14주기 추도식에서, 여야는 고인의 삶과 업적 중 자신들의 상황에 맞는 부분만 강조하는 아전인수격 추도사를 각각 내놨다.
김 전 대통령이 몸담았던 민주당의 후신,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대표는 추도사에서 "대통령님께선 어떠한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국민의 삶과 겨레의 미래에 평생을 헌신하셨다"며 "5번의 죽을 고비, 오랜 수감과 망명이라는 모진 풍파 속에서도 인동초 정신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고 고인에 대한 군사정권의 탄압을 강조했다.
이 대표는 "존경하고 사랑하는 대통령님, 무능하고 무책임하며 무법적인 정권의 폭력적 통치가 국민과 나라를 벼랑으로 내몰고 있다"며 "공포정치에 민주주의와 법치, 정의가 실종되었다. 민생은 도탄에 빠졌고 한반도에는 신냉전의 먹구름이 드리웠다. 국민들은 절망 속에 하루하루를 버티고 계신다"고 추도사를 통해 현 정부를 비판했다.
이 대표는 "국민의 삶이, 대한민국의 운명이 총체적 위기에 직면한 지금 '행동하는 양심이 되자', '벽에 대고 소리라도 치라' 하시던 대통령님의 간절한 당부를 다시 떠올린다"며 "혹독한 고난도, 매서운 시련도 인내하며 국민과 나라를 위해 투쟁했던 강철 같은 그 의지를 되새기겠다"고 했다.
이 대표는 "민주주의를 억압하고, 민생을 파괴하고, 평화를 뒤흔드는 권력의 퇴행에 정면으로 맞서겠다"며 "대통령님 당신께서 앞장서 걸었던 그 길을 따라 민주당도 흔들림 없이 전진하겠다"고 했다. 전날 검찰 소환조사를 받는 등 사법 리스크가 재부각되며 정치적 위기를 맞은 이 대표 자신의 현 상황을, 독재정권의 탄압을 받았던 김 전 대통령의 생애에 비기려 한 것으로 해석됐다.
반면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는 추도사에서 "외환위기라는 초유의 국난 속에 취임하셨던 대통령님께서는 강도 높은 자유 개혁에 착수하셨다"며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대, 규제 철폐, 비대한 공공부문 개혁을 통해 대한민국 경제 구조의 체질을 혁신하셨다"고 김대중 정부 초반 IMF의 요구에 따라 단행된 경제 구조조정 조치를 부각시켰다.
김 대표는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시대의 변화를 읽어 그 조류를 잘 활용하시면서 새로운 이론과 풍부한 경험, 지적 소통을 토대로 해서 친(親)시장주의로 우리 경제 체질의 진화를 이끌어내셨다"면서 "국민의 잠재력, 자유 시장 질서에 대한 굳건한 믿음, 실사구시의 국정 철학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용감한 대전환이라고 저는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김 대표는 "아울러 한일 관계의 정상화, 많은 장벽에도 불구하고 그 장벽을 과감한 결단으로 허물고 마침내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이끌어내는 커다란 업적도 만드셨다"며 "그 당시라고 왜 극심한 반대와 논란이 없었겠느냐만 대통령께서는 굳은 신념과 결단력을 가지고 이러한 결정적 변화를 이끌어내셨다"고 했다.
김 대표는 이어 "친일과 반일의 낡은 이분법을 깨시고 미래지향적인 극일로 나아가셨던 대통령님의 용기 있는 결단은 특히 오늘 우리 정치에 많은 것을 가르쳐주고 시사하고 있다"고 해 눈길을 끌었다. 윤석열 정부가 한일관계 회복에 방점을 둔 대일 외교정책을 펴고 있고, 민주당 등 야권이 이를 비판하는 상황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김 대표가 "또한 대통령님께서는 공과 사를 구별하는 모범을 보이시면서 국익과 국민통합을 위해서는 과거의 어떠한 악연도 다 초월하는 결단도 보여주셨다"고 한 것 역시 김 전 대통령이 당선 직후 전두환·노태우 사면을 건의한 일을 언급한 것으로, 과거 윤 대통령이 검사 시절 수사했던 국정농단 등 사건 관련자들을 사면·복권하거나 내년 총선을 앞두고 보수통합 논의가 진행될 수 있다는 관측과 맞물려 눈길을 끌었다.
김 대표는 "오늘 우리 정치가 이러한 대통령님의 빛나는 업적들을 다시 한번 되새겨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저와 우리 국민의힘도 그 발자취를 잘 새기면서 큰 정치를 복원시켜 나가도록 노력하겠다"는 말로 추도사를 마쳤다.
이날 추도식에는 양당 대표 외에 김진표 국회의장이 참석해 추도사를 했고, 이진복 대통령실 정무수석,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정세균·문희상 전 국회의장, 김동연 경기도지사, 박정희·노태우·김영삼·노무현 전 대통령 아들들인 박지만·노재헌·김현철·노건호 씨 등이 참석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문재인 전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 부인 권양숙 봉하재단 이사장은 조화를 보냈다.
[곽재훈 기자(nowhere@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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