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리오만 최소 9개…연금 개혁안 '맹탕' 되나
우선순위 없는 '다지선다' 보고서
결국 정부에게 최종 선택 떠넘겨
총선 앞두고 '흐지부지' 될 수도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 보고서를 두고 정부 안팎에서는 “책임 떠넘기기”라는 비판이 나온다. 보험료율, 소득대체율, 연금 수급 시기를 바꾸는 모수개혁과 관련한 시나리오만 최소 9개, 최대 12개에 달하기 때문이다.
정치권이 지난해 연금개혁을 논의하기 위해 구성한 국회 연금특별위원회가 갑론을박만 벌이다가 올해 초 “모수개혁은 정부가 할 일”이라며 손을 놔버린 데 이어 정부 연금개혁안의 틀을 짜는 재정계산위까지 ‘다지선다’식 보고서를 남긴 것이다. 전문가들이 주축을 이룬 재정계산위(민간 전문가 13명, 정부 위원 2명)가 유력안을 도출하지 못하면서 연금개혁이 시작부터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9개월 논의하고 우선순위도 못 정해
재정계산위는 18일 마지막 회의인 21차 회의를 열고 정부에 제출할 최종 보고서를 논의했다. 당초 이날 보고서를 확정할 예정이었지만 내부 이견이 불거지면서 최종안 확정을 다음주로 미뤘다. 재정계산위는 원래 현재 9%인 보험료율을 12%, 15%, 18%로 올리는 ‘재정 안정 강화안’(더 내고 그대로 받는 안) 외에 소득대체율을 50%, 보험료율을 13%로 올리는 ‘노후소득 보장안’(더 내고 더 받는 안)을 보고서에 모두 담으려 했다.
하지만 ‘재정 안정 강화안을 다수안으로, 노후소득 보장안을 소수안으로 적어야 한다’는 지적에 일부 위원이 반발하자 결국 최종 보고서 작성을 다음주로 미뤘다. 노후소득 보장을 지지하는 위원뿐 아니라 재정 안정 강화안을 지지하는 위원까지 퇴장하며 회의는 파행으로 치달았다. 재정계산위는 회의 직후 “보고서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국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노후소득 보장안을 보고서에서 빼는 방안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정계산위는 최근까지도 우선순위를 매긴 연금개혁안을 제시할지를 두고 논의를 거듭했다. 그러다 지난 11일 복수안을 나열하는 쪽으로 방향이 잡혔다. 재정 안정 강화안과 노후소득 보장안을 두고 위원회 내에서 갈등이 커진 결과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보험료 인상 폭 등과 관련해 딱 떨어지는 연금개혁안을 제시하면 여론이 악화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재정계산위 보고서에 담긴 개혁안은 재정 안정화 방안에 무게가 실려 있다.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만 놓고 보면 재정 안정화 방안이 세 가지인 데 비해 노후소득 보장안은 한 가지라는 점에서다.
○연금개혁 동력 떨어지나
재정계산위의 최종 보고서에 단일안이나 유력안이 담기지 않으면서 국민연금 개혁의 동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재정계산위가 오는 30일께 공청회를 열어 연금개혁안을 발표하면 정부는 이를 토대로 10월 말까지 정부 연금개혁안을 만들어 국회에 제출할 계획인데, 내년 4월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보험료율 인상 등 휘발성이 큰 개혁안을 정부가 전적으로 책임지고 마련하는 게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당장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가 연금개혁 과정에서 정치적 부담을 모두 떠안아야 한다는 관측이 나온다.
역대 정부와 정치권에서도 연금개혁은 어려운 과제였다. 국민연금 보험료율만 해도 1998년 이후 25년째 9%에 묶여 있다. 전임 문재인 정부는 재정계산위가 최종안을 두 가지 제시했지만 정부안은 네 가지를 제시하면서 연금개혁을 미뤘고, 결국 개혁에 실패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당시 정부의 네 가지 개혁안에 대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며 퇴짜를 놨다.
이런 사정 때문에 전문가들은 재정계산위처럼 전문가가 참여하는 자문기구에서 단일안을 내놓거나 적어도 유력안을 제시해야 연금개혁이 탄력을 받을 수 있다고 강조해 왔다. 하지만 모수개혁과 관련한 시나리오만 최소 9개, 최대 12개에 달하는 만큼 연금개혁이 시작부터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한 국민연금 전문가는 “큰 틀에서 재정 안정에 무게를 두고 있는 윤석열 정부가 ‘더 내고 그대로 받는 안’에 초점을 맞춘다면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은 ‘더 받는 안’을 내놓을 것”이라며 “미래 세대 부담을 줄이고 국민연금의 지속성을 높이려면 소득대체율을 올리지 않으면서 보험료를 더 내는 쪽이 합리적이지만 선거엔 불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황정환/허세민 기자 j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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