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준감위, 이사회에 ‘전경련 복귀’ 넘겨…4대 그룹도 물꼬 트나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이하 준감위)가 삼성의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재가입의 물꼬를 터줬다. 정경유착 우려는 드러내면서도 재가입에 반대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삼성의 전경련 재가입 여부는 삼성전자 등 주요 계열사 이사회로 그 공이 넘어갔다.
이찬희 준감위원장(전 대한변호사협회장)은 18일 오전 삼성생명 서초사옥에서 2차 임시회의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전경련이 정경유착 우려를 완전히 해소하지는 못했다는 데 만장일치로 의견을 모았다”면서도 “전경련 가입 여부는 (삼성 계열사) 이사회와 경영진이 최종 결정할 문제”라고 밝혔다. 앞서 준감위는 지난 16일에도 삼성의 전경련 재가입 문제를 논의했으나 의견이 모아지지 않아 최종 결론을 내리지 못한 바 있다.
준감위는 회의 뒤 낸 입장문에서 “현재 시점에서 전경련의 혁신안은 선언 단계이고 실제로 실현될 가능성이 있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확인된 바 없다. 전경련이 정경유착의 고리를 완전히 단절하고 환골탈태할 수 있을지에 대해 확신을 가질 수 없다”며 “위원회는 삼성 관계사가 전경련 가입을 결정하더라도 정경유착 행위가 있는 경우 즉시 탈퇴할 것 등 필요한 권고를 했다”고 밝혔다. 이 외에도 준감위는 △전경련 활동 시 회계 투명성 등을 위해 안전장치 설치 △전경련 활동에 대한 준감위 보고 등의 내용도 권고안에 담았다. 준감위 관계자는 “구체적인 재가입 조건은 공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전경련 재가입 여부는 전경련 산하 기관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의 회원사인 삼성전자를 비롯해 삼성에스디아이(SDI)·삼성생명·삼성화재·삼성증권 5개 계열사 이사회로 넘어갔다. 전경련이 한경연을 흡수하는 방식으로 주요 그룹의 전경련 재가입 절차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경련은 오는 22일 임시총회를 열어 한경연을 흡수통합하는 안건과 조직명을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로 변경하는 안건을 의결할 예정이다. 삼성·현대차·에스케이(SK)·엘지(LG) 등 4대 그룹은 2016년 국정농단 사태 당시 전경련을 탈퇴한 바 있다.
삼성 쪽은 준감위가 재가입의 문을 열어주면서도 전경련 활동에 우려를 표명한 것에 대해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재가입 결정을 삼성이 직접 해야 하는 모양새가 됐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일부에선 삼성 5개 계열사 이사회가 전경련 임시총회 전에 열리지 않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삼성 관계자는 “일단 준감위 판단은 조건부 승인으로 보고 있다”며 “늦어도 전경련 임시총회 전에는 계열사별 판단이 정해지지 않겠느냐”고만 말했다.
시민단체에선 날 선 비판이 나왔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이날 낸 논평에서 “준감위는 전경련의 대변 기구가 아니라 삼성그룹의 정경유착 유인을 차단하는 기구”라며 “정경유착을 근절해야 할 준감위가 전경련 재가입의 책임을 이사회와 경영진에 떠넘기는 건 스스로 존재 가치가 없음을 확인해준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준감위가 전경련의 정경유착이 우려된다면서 재가입을 막는 사전 조치를 하지 못하고 문제가 발생하면 탈퇴하라는 무책임한 사후 조치만 내렸다. 권고 기구에 불과한 준감위의 태생적 한계가 드러난 것”이라고 말했다. 준감위는 ‘국정농단 사건’ 재판부가 삼성의 내부 준법감시제도 마련 등을 주문한 것을 계기로 2020년 2월 출범했다. 현재 이찬희 위원장을 포함한 외부 위원 6명과 내부 위원 1명 등 모두 7명으로 구성됐다.
삼성이 전경련에 재가입하기로 최종 결정을 내리게 되면 에스케이, 현대차, 엘지 등 4대 그룹도 순차적으로 전경련에 복귀할 공산이 있다. 다만 일괄 재가입 가능성은 낮다. 현대차그룹은 “한경협이 새롭게 출범하고 쇄신한다고 하니 지켜보겠다. 한경협 활동 여부는 추후 혁신안 실천 및 변화되는 모습 등을 감안하여 결정할 예정”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옥기원 기자 o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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