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희 자서전, 1937년 최초 출간된 형태로 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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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가 최승희는 최승일의 권유로 경성공회당에서 일본 현대 무용의 선구자 이시이 바쿠 공연을 보고 무용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일본에 갔다.
1933년 3월 이시이 문하로 재입문해 1년 만에 청년회관에서 전통과 현대 무용을 접목한 창작극 '에헤야 노아라'를 발표해 호평을 받았다.
특히, 뉴욕 공연 후 '세계 10대 무용가의 한 사람'이란 평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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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이수지 기자 = 20세기 한국이 낳은 세계적 무용가’ 최승희((1911~1967)의 자서전이 1937년 최초 출간된 형태로 복원됐다.
무용가 최승희는 최승일의 권유로 경성공회당에서 일본 현대 무용의 선구자 이시이 바쿠 공연을 보고 무용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일본에 갔다. 1926년 무용 수업을 위해 도쿄로 간 뒤 3년 만에 주역급 무용수로 발탁됐다. 1927년과 1928년 이시이바쿠의 조선공연에 참가해 호평받았다.
1929년 귀국해 1930년부터 개성에서 무용 대회, 창작 무용 공연회, 제2회 공연회, 1대전에서 무용 대회 등 본격적인 무용 공연을 시작했다.
1933년 3월 이시이 문하로 재입문해 1년 만에 청년회관에서 전통과 현대 무용을 접목한 창작극 '에헤야 노아라'를 발표해 호평을 받았다. 1936년 말부터 4년간 세계무대로 진출해 유럽, 미국 중남미에서 공연을 펼쳤다. 특히, 뉴욕 공연 후 '세계 10대 무용가의 한 사람'이란 평을 받았다.
중일전쟁 후 전시 체제기가 형성되면서 일제에 협력했다. 해방 직전 중국에서 위문 공연을 하다 베이징에서 해방을 맞고, 1946년 5월 귀국했다. 친일 행적이 문제가 돼 남편 안막, 오빠 최승일과 월북했다.
사회분위기 상 월북 예술가로 최승희는 오랫동안 금기시되며 그간 많은 자료가 불태워 없어졌다.
1937년 발간된 '최승희 자서전'(소명출판)은 친일 협력 도구가 되기 전 전통 춤과 민족 유산, 새로운 무용 예술에 심취했던 20대 후반 최승희를 만날 수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suejeeq@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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