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일 정상, 위기 시 ‘협의 의무’ 서약…“즉각 협의·대응 조율”
한국과 미국, 일본이 18일(현지시간)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를 계기로 역내 위기가 발생할 경우 의무적으로 협의하고 대응 방안을 조율하기로 약속했다. 한·미·일이 인도·태평양 지역의 포괄적인 위협에 대응하는 ‘안보 협의체’로 격상되어 사실상의 ‘준군사 동맹’으로 나아가게 됐다는 관측이 나온다. 북핵 관련 공조가 주를 이뤘던 기존 한·미·일 협력의 초점도 미국이 가장 큰 지정학적 도전으로 꼽는 중국 대응으로 급속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조 바이든 행정부 고위당국자는 이날 사전브리핑에서 “한·미·일 3국 정상은 위기 상황, 또는 어느 한 국가의 안보에 영향을 미치는 상황에 대해 협의할 의무(duty to consult)가 있다고 서약(pledge)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른 미 고위당국자도 정상회의 결과물로 “3국 간 위기 시 협의하기로 공약(commitment to consult)하는 내용을 별도 문건(standalone document)으로 채택할 것”이라며 “이는 3국 간 안보 공조를 근본적으로 새로운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측은 한·미·일이 “서로 밀접하게 연결된 안보 환경과 위협”에 직면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3자 협의를 사실상 의무화하는 것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미 고위당국자는 “어느 한 나라에 대한 위협은 근본적으로 3국 모두에 대한 위협을 제기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의 공약은) 역내 비상사태나 위협이 발생할 경우 즉각적이고 신속하게 상호 협의하기로 약속하는 것”이라며 “우리는 입장 조율을 위해 정보를 공유하고 서로 협력해 정책적 조치를 취하는 방안에 대해서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미·일이 유사시 관련 협의를 하는 데서 나아가 공동 대응 가능성까지 시사한 것이다.
미 고위당국자는 특히 이같은 한·미·일 협력 체제가 “위기 시 긴밀하게 협력하기 위한 공동 안보 프레임워크(common security framework)를 구축하려는 것”이라며 “정식 동맹이나 냉전 초기 안보 조약과 같은 집단 방위 협정은 아니다”고 밝혔다. 한·미·일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 같은 집단방위 동맹으로 변모하는 것 아니냐는 일각의 우려를 의식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이 당국자는 “국제법상 자위권을 침해하거나 미국이 일본, 한국에 대해 갖고 있는 양자 간 조약 동맹의 의무를 변화시키거나 지장을 초래하지도 않을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도 전날 외신기자 상대 브리핑에서 이번 정상회의를 통해 “공식적인 3자 동맹을 구축하려는 것이 아니다”며 “일본 및 한국과 개별적으로 맺고 있는 안보 동맹 외에 다른 구속력 있는 동맹을 구축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미·일 협력을 되돌릴 수 없는 수준으로 ‘제도화’하는 데 방점을 찍은 미국이 위기 시 즉각적인 협의는 물론 3자 간 공동 대응 조율 방침을 시사함에 따라 안보 협의체로 격상된 한·미·일이 향후 북한, 중국 등 역내 위협에 대해 ‘동맹에 준하는’ 대응을 하는 것이 불가피해진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또한 북한 핵·미사일 위협 대응을 위한 합동 군사훈련 연례화, 실시간 정보 공유 등 대북 확장억제 차원을 넘어서 중국의 공세에 대응한 3각 공조가 가속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미 고위당국자는 정상회의 공동성명에 중국 관련 언급이 어느 수위로 반영될 지를 묻는 질문에 “남중국해를 포함해 여러 영역에서 3자 공통의 강력한 입장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향후 남중국해, 대만해협 등 미국이 중시하는 중국 관련 안보 이슈에서 3자 협력이 심화할 수도 있다.
미국이 중국 견제를 위해 주력하는 반도체 등 핵심 산업 공급망 재편이나 인공지능(AI) 등 신흥기술 관련 정책 공조도 활발해질 전망이다. 미 고위 당국자는 “한·미·일 경제안보대화 논의 결과를 토대로 경제적 강압에 함께 대응하고 공급망 교란에 대해 서로 파악하기로 협력한다는 내용에 합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 당국자는 다만 “한·미·일 협력은 중국을 고립시키는 것과는 무관하다”며 “3국 모두 중국과의 실용적인 외교에 전념하고 있고, 안정적인 대중 관계를 원한다”고 말했다.
워싱턴 | 김유진 특파원 yj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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