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도록 '방치'된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객관화해서 봐야"
"램지어 논문, 우익단체 주장 짜깁기"…"민간 분야 학술 지원 필요"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100년 전 일본과 지금의 일본 모두 법치국가를 표명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죽인다는 것 자체를 인정하기 어렵죠."
일본의 저널리스트인 와타나베 노부유키 씨는 18일 서울 종로구 전태일기념관에서 열린 언론 간담회에서 간토(關東) 대지진 학살의 참상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는 이유를 이같이 분석했다.
그가 최근 펴낸 '관동대지진, 학살 부정의 진상'은 오랜 기간 '방치된' 기억을 되돌아보는 책이다.
책은 마크 램지어 미국 하버드대 교수가 2019년 발표해 논란이 일었던 '경찰 민영화: 일본의 경찰, 조선인 학살 그리고 민간 경비 회사' 논문을 분석하고 논거로 쓰인 신문 기사를 살폈다.
와타나베 씨는 "논문은 (대지진 이후) 일본인이 죽인 조선인은 많지 않으며, 일부 사망자는 나쁜 사람들이었기에 정당방위가 인정된다는 것인데 신문 기사에 근거를 두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당시 상황을 고려하면 기사 자체의 신뢰도가 높지 않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당시 신문의 제작 환경은 대단히 제한적"이었다며 "(지진으로 인해) 통신, 교통 등이 제한된 환경에서 만들어졌는데 이 가운데 일부만 인용한 게 램지어 교수의 논문"이라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새로 발견하거나 새로 주장한 내용은 사실상 없었다"며 "종전의 우익단체가 내세우는 주장을 짜깁기해 한 편의 논문으로 만든 것으로 봐도 무방할 정도"라고 지적했다.
와타나베 씨는 학살 원인을 분석한 기존 연구에 대한 비판적 입장도 내비쳤다.
그는 "지진 발생 50년 만인 1973년 (역사 소설가) 요시무라 아키라가 쓴 책이 나왔지만, 사회적 혼란 가운데 발생한 집단적인 정신 이상 증세로 결론 내렸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재일사학자 강덕상은 1975년 낸 책에서 일본 국가 권력의 범죄를 원인으로 짚었는데 도쿄(東京) 일부에서는 맞지만 요코하마(橫浜) 등에서는 맞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와타나베 씨는 요코하마의 경우 지진 당일인 9월 1일부터 학살이 시작됐다며 "당시 경찰서 8곳 중 7곳이 없어졌고 대부분 관청도 파괴돼 군정의 개입이 없었다고 단언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학살의 원인을 짚으려면 19세기 말부터의 역사적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학농민군과 일본군의 전투, 각지에서 전개된 항일 의병 활동 등으로 일부 일본인들 사이에서 '불령선인'(不逞鮮人·조선인을 불온하고 불량한 인물로 지칭하는 말) 인식이 공유된 점도 생각할 부분이다.
그는 "유언비어 가운데 가장 핵심이었던 건 조선인이 집단 무장해서 공격하러 온다는 내용이었다"며 "만주, 연해주 등에서 이런 경험을 해봤던 사람들이 유포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와타나베 씨는 역사적 객관화 혹은 상대화 작업이 필요하다고 봤다.
그는 간토대지진 및 학살 100주년인 올해 무엇을 먼저 해야 하냐는 질문에 "역사를 이야기할 때는 어느 쪽이 옳은지 대결 구도로 가기 쉬우나 객관화, 상대화해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는 한국 정부를 향해서는 "한국 정부 차원에서 알고 싶은 게 무엇인지, 역사적 사실이 어떤 것인지 확실하게 알 필요가 있다"며 "민간 분야의 학술 연구를 지원하는 먼저"라고 말했다.
약 40년간 신문 기자로 활동했던 그는 기자의 사회적 책무도 강조했다.
와타나베 씨는 "기자는 사회의 병을 발견하고 지적하는 의사"라며 "문제의 근원이 무엇인지 질문하고, 탐구한다는 마음으로 취재해왔다"고 힘줘 말했다.
"양심적이거나 진보적인 일본인으로서 이 일을 한 게 아닙니다. 철저하게 기자로서 사건의 진상, 역사적 사건의 진실을 취재하며 내린 결론이지요."
와타나베 씨는 이번 책과 관련, "애매한 역사나 사실이 얼마나 오랜 기간 방치되었는지 생각하게 됐다"며 "다시 한번 역사를 뒤돌아보고 되묻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바랐다.
책을 번역한 이규수 전북대 고려인연구센터 학술연구교수는 "한국 역사학계의 간토대지진 관련 연구는 여전히 미비하다"며 "100년이 지나 끝난 게 아니라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마음으로 연구가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ye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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