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덜 깨끗하게, 덜 완벽하게
그 속에서 살아가는 곤충 등
나름의 생태계에 개입하게 돼
차라리 덜 깨끗한게 나을지도
태풍이나 큰비가 내린다는 예보가 들리면, 나는 집 주변을 청소한다. 다가구 주택을 둘러싼 담벼락 아래에 떨어진 쓰레기를 줍는 것이다. 회색 담과 벽돌벽 사이에 난 좁은 시멘트 길, 폭이 좁아 어깨를 비스듬히 틀며 걸어야 하고, 벽을 타고 내려오는 전선과 호스를 피해 머리를 숙여야 하는 그 사잇길이 내가 책임지고 살펴봐야 할 장소다.
책임이라고 해서 누군가 억지로 내게 떠맡긴 것은 아니다. 건물을 빙 두르는 그 사잇길에는 몇 개의 하수구가 있는데, 철망 뚜껑으로 덮여 있는 그 위에 찢어진 종이나 부서진 아스팔트 조각이 쌓여 있을 때가 많다. 큰비가 내려 빗물에 이물질이 휩쓸려가 하수구에 쌓이면, 그 사잇길을 따라 물이 차오를 수 있기에 나는 그곳을 둘러보며 청소한다.
그런데 그렇게 몇 차례 쓰레기를 치우다 보니 고민이 생겼다. 담벼락 아래 떨어진 것은 대부분 어디선가 날아온 종이 쪼가리나, 플라스틱 조각, 깨진 보도블록의 파편이지만, 낙엽과 꽃잎들도 꽤 많았다. 담벼락 뒤로 무성하게 자란 능소화가 있고, 얼마 떨어지지 않은 길가에 플라타너스 가로수들이 많으니, 그 좁은 틈까지 낙엽과 꽃잎이 날아와 쌓이는 것이다.
처음엔 다른 쓰레기처럼 나뭇잎과 꽃잎도 모두 모아서 봉투에 버렸다. 빗자루로 쓸고, 손으로 집고, 발로 쓱쓱 밀치면서 먼지와 흙가루를 뭉쳐 버렸는데, 그렇게 허리를 숙여 땅을 살피다 보면 개미나 작은 날벌레들이 눈에 띄었다. 낙엽과 썩은 나무토막 사이에 안락하게 숨어 있다가 내가 지붕을 들춰내자 부리나케 달음질치는 곤충들. 어느 날엔 매미 한 마리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가슴과 배, 까만 두 눈, 바짝 움츠린 다리와 투명한 날개가 놀랍도록 그대로 보존된 채 땅바닥에 뒤집혀 있었다. 그 날개가 어찌나 투명하고 맑은지, 얇디얇은 세포막을 따라 이어진 가느다란 날개맥들이 너무도 신비롭고 아름다워서 나는 한참을 쪼그려 앉아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이 좁은 길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 이 길에 떨어진 낙엽과 솔잎, 주황색 능소화 꽃잎은 누군가의 집일 수도 있고, 아껴 먹고 싶은 간식일 수도 있었다. 내가 나의 공간을 돌본다는 명분으로 다른 존재의 터전을 마구 헤집어도 되는 걸까?
'하지만 내버려두면 하수구로 쓸려가 물길을 막을지도 몰라.'
나는 좁은 벽과 벽 사이에 서서 고민에 빠졌다. 살다 보면 어떤 길이 옳은지 판가름하기 힘든 크고 작은 갈림길을 맞닥뜨리게 되는 경우가 많다. 쉽사리 결정을 내릴 수 없을 때면 나는 삶에서 체득한 방법을 쓰곤 한다. 내가 결정하는 게 아니라 세상이 정하도록 선택권을 돌리는 것이다. 저토록 완벽한 매미의 날개를 만든 이 세상이 잘못된 선택을 내릴 리 없다고 믿으며, 내 의지와 판단을 내려놓고 세상의 흐름에 내맡기는 것이다. 그와 동시에 그 선택이 불러올 결과와 삶이 이어져 있는 다른 존재에게 의견을 묻는다.
'내가 이 낙엽을 다 치우는 게 맞겠니? 죽은 너를 쓰레기봉투에 버려줄까?' 나는 겉모습만 남고 속이 텅 비어 있는 매미에게 물었다.
'아니, 그대로 둬. 나도, 낙엽도. 아무것도 건드리지 말고 그냥 지나가.' 나는 매미의 대답을 상상하며 매미와 함께 축축하고 잘 썩은 나뭇잎들은 그대로 두었다. 만약 그것들이 빗물에 쓸려가 하수구를 막으면 그때 다시 치우면 되니까. 더 깨끗하게, 더 완벽하게 일을 끝내는 것보다 어정쩡하고 미적지근하게 남겨둬도, 그 빈틈을 배경 삼아 얽혀 있는 무수한 관계들이 세상을 온전하게 굴러가게 할 테니까. 좁은 콘크리트 길까지 날아와 겹겹이 쌓인 꽃잎, 그 아래 집을 짓고 알을 낳을 가볍고 작은 존재들을 생각하며 나는 청소를 마친다. 계절이 흘러 내가 사는 집 둘레길이 그들로 인해 마음껏 너저분해지길 바라며.
[김멜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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