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TV 없는 것 알고” 성범죄 저지른 가해자, 둘레길이 범행장소로[플랫]

플랫팀 기자 2023. 8. 18.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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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오후 전날 성폭행 사건이 발생한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둘레길 모습.

지난 17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공원에서 여성을 너클로 폭행하고 성폭행한 최모씨(30)는 공원 인근 야산에 폐쇄회로(CC)TV가 없는 점을 노려 범행 장소를 택한 것으로 파악됐다. 최씨는 지난 4월 강간하려는 목적으로 인터넷에서 손에 끼는 금속 재질의 너클을 구매했다.

18일 서울 관악경찰서에 따르면, 최씨는 “등산로를 걷다가 피해자를 발견했다. 강간을 하고 싶어 범행했다”며 “그곳을 자주 다녀 CCTV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 범행 장소를 정한 것”이라고 진술했다. 또 “강간할 목적으로 지난 4월 너클을 인터넷에서 구매했다”고 했다.

최씨는 전날 오전 9시55분쯤 금천구 집에서 나와 오전 11시1분쯤 신림동 공원 둘레길 입구에 도착했다. 약 43분 뒤 피해자의 비명을 들은 등산객이 신고했고, 출동한 경찰은 오후 12시10분쯤 최씨를 체포했다.

경찰에 따르면 최씨는 일정한 직업이 없으며 부모와 함께 거주 중이다. 금천구 소재 거주지에서 가까운 신림동 공원에 운동하러 자주 방문해 CCTV 여부와 지형 등을 잘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날 확인한 관악구 생활안전지도에 따르면 7만6000㎡ 규모인 해당 공원에 설치된 CCTV는 총 8대이다. 그 중 3대는 공원 입구 쪽에, 나머지 5대는 공원 내에서도 큰길 부근에 설치돼 있다. 그러나 공원에서 만난 주민들은 CCTV 수가 그보다 훨씬 적다고 느끼고 있었다. 공원 근처에 산다는 A씨는 “공중화장실 쪽에만 CCTV가 1대 설치돼 있는 것으로 안다. 더 위쪽 둘레길에는 없는 것 같다”고 했다.

둘레길 부근까지 CCTV가 설치되지 않은 데는 비용과 실효성 문제가 있다. 관악구 관계자는 “관악산이 워낙 넓다보니 부지 전체에 관리 인력을 배치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며 “주요 등산로 부분에는 CCTV를 설치해 관리하고 있지만 샛길은 수없이 많아 (설치가) 어렵다”고 했다.

CCTV가 설치되지 않은 공원 둘레길이나 산책로는 이전에도 범죄 취약 장소로 지적됐다. 2016년 5월 경기 의정부시 수락산에서 새벽 등산을 하던 여성이 흉기에 찔려 숨졌다. 열흘 만인 6월 초 의정부시 사패산 등산로 부근에선 여성 등산객을 노려 성폭행을 시도하고 살해한 사건이 벌어졌다. 짧은 간격으로 유사한 장소에서 일어난 강력사건에 사회적 충격이 컸다. 등산로 입구와 달리 산책로과 둘레길에는 CCTV가 적게 설치돼 범죄 예방이 어려우니 CCTV를 더 많이 설치하고 모니터링을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그런데도 7년 만에 신림동에서 비슷한 유형의 범죄가 반복된 것이다. 전문가들은 “CCTV 증설이 능사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웅혁 건국대학교 교수는 “CCTV를 달아둔다고 범죄를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이번처럼 없는 곳을 찾아서 할 수도 있다”면서 “2016년에 살인사건까지 발생했는데, 왜 범죄를 하게 됐는지 원인을 찾으려 하지 않고 외관상 보이는 모습만 바꾸려고 하니 효과가 없는 것”이라고 했다.

이 교수는 “사건 이면에 사회 구조적인 문제점을 치유해야 근본적으로 이런 일이 안 생길 수 있다”고 했다. 이번 사건은 신림역·서현역 사건과 인터넷상에 살인예고글이 이어지자 경찰이 ‘특별 치안 활동’을 시행 중인 가운데 벌어졌다. 보여주기식 치안 활동보다는 범죄의 근본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CCTV가 입구에만 설치돼 있으면 내부에서 어떤 문제행동이 있었는지 파악하기 어렵지만 개인의 사생활 보호와 비용적인 측면 때문에 현실적으로 모든 곳에 CCTV를 설치할 수는 없다”면서 “CCTV를 설치하는 것보다도 문제행동을 빨리 파악하도록 모니터링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송이 기자 songyi@khan.kr

플랫팀 기자 areumlee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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