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판에서 먹줄 튕기며 얻은 자유,'먹아줌마' 아닌 '먹반장'입니다"

2023. 8. 18.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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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블루칼라 여자] ① 먹매김 노동자 김혜숙 씨

[박정연 기자(daramji@pressian.com)]
'힘' 좀 써야 한다는 노동 현장, 그곳에도 여자가 있습니다. 웬만한 체력으로는 버티기 힘들다는 노동 현장에서 체력적 한계뿐 아니라 차별과 배제마저도 이겨낸 이들이죠. 남성 비율이 압도적으로 큰 블루칼라 노동 현장에서 살아남은 '기술직 여성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남성중심적 문화가 지배적인 현장에서 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차별과 배제를 버텼습니다. 여자 화장실이 없는 현장,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당해야만 했던 무시와 젠더폭력 속에서도 자신만의 기술을 터득해 당당하게 '기술직 여성'으로서 커리어를 이어 나간 이들을 <프레시안>이 만났습니다.

자신이 흘리는 땀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이 여성들은 건설 현장에서도 공장에서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건설 현장에서 도면을 그리는 먹매김 노동자, 건물 뼈대를 이어 거푸집을 만드는 형틀 목수, 자동차 제조 공장에서 부품을 염색하는 도장노동자 등 <프레시안>이 만난 블루칼라 여성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편집자 주

회색 콘크리트 위로 먹물에 잠겨있던 실을 팽팽하게 당긴 후, 실의 중간 부분을 잡고 위아래로 살짝 튕겨내면 납작한 회색 바닥에 길다란 검은 선이 또렷하게 남겨진다. 이 얇고 가는 검은 선 위로 거푸집이 세워지고 콘크리트가 타설되면 빌딩이 솟아오른다.

'먹매김'이라고 불리는 이 일은 콘크리트 바닥에 먹실을 튕겨 도면을 그리는 일로 건설 현장의 기초가 된다. 60살 김혜숙 씨는 7년째 건설 현장에서 먹을 튕긴다. 이 검은 실을 잘못 튕기면 건물이 기울기도 한다. 그렇기에 그는 하루하루 신중하게 먹을 튕긴다. <프레시안>은 지난 7일 경기도의 한 건설현장에서 김혜숙 씨를 만났다.

20년 동안 식당 찬모로 일하던 그가 먹매김을 시작한 건 여고 동창의 소개 때문이었다. 처음 '먹매김'이라는 일을 들었을 때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처럼 느껴지지 않아 한 귀로 듣고 흘려버렸다. 하지만 가정이 어려워지면서 가장이 된 그는 '여자인 내 친구도 하는데 나라고 못할 게 뭐가 있냐'는 생각이 들어 공사 현장에 발을 들였다.

▲건설 현장에서 '먹매김' 노동을 하는 김혜숙 씨를 만났다. '먹매김'은 콘크리트 바닥에 먹실을 튕겨 도면을 그리는 일로 건설 현장의 기초가 되는 일을 말한다. 사진은 동료와 함께 먹줄을 당기고 있는 김혜숙 씨. ⓒ프레시안(박정연)

처음 가본 공사 현장엔 날카로운 못과 건설 자재의 파편뿐 아니라 '외계어'가 난무했다. 먹매김은커녕 공사 용어를 모른 채로 현장에 투입된 그는 처음으로 '쌍욕'을 듣고 "눈물이 핑 돌았지만 삼키고 버텼다"고 회상했다. 쉰 살이 넘어 욕을 먹은 건 처음이었다.

그는 "'사게부리'(다림추라는 뜻으로 수직 잡을 때 쓰는 연장의 일본어), '오야선'(기준이 되는 선의 일본어) 등 건설용어를 하나도 모르니까 말이 안 통해서 멍하게 있으면 답답하다고 욕을 먹었다"며 "처음에는 실에 걸려 넘어지기도 했다. 먹차장(먹매김 하는 노동자들의 관리자)한테 '그것도 못 하냐 XX야'부터 시작해서 정말 욕을 많이 얻어먹었다"고 웃었다.

도시 중앙에 가장 높은 브랜드 아파트를 짓지만 아파트에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해 입구를 찾지 못하는 일도 있었다. 그는 "아파트를 만드는 현장에 있지만 내가 아파트를 안 살아봐서 아파트 입구가 어딘지 몰랐다"며 "한 소리 들을 생각에 막막하기도 했었다"고 말했다.

건설노동자의 발목을 잡는 고질적 사안인 화장실도 문제였다. 화장실의 절대수가 적다 보니 여자 화장실은 더 모자랐다. 용변을 참기 위해 물도 먹지 않았다. 그는 "여자 화장실이 한 개여서 항상 줄이 길었다. 지하 6층에서도 일하다가 여자 화장실이 있는 곳으로 올라왔다"며 "지금은 그래도 현장에서 여성들이 많아지니까 화장실 수도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현장에서 김혜숙 씨는 '먹아줌마'로 불린다. 먹을 하는 남성들은 '먹반장', '먹차장' 등 직함 앞에 '먹'을 붙이지만 여자는 그냥 '먹아줌마'다. 그는 "별로 듣기 좋진 않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듣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가 속한 민주노총 산하 건설노조에서는 그를 '먹반장'이라고 부른다. "아줌마보다 훨씬 낫다. 인정 받고 일하는 것 같다. 일하는 세월의 대우를 받는 느낌"이라며 '먹아줌마' 보다는 '먹반장'이 낫다고 말했다.

▲건설 현장에서 '먹매김' 노동을 하는 김혜숙 씨를 만났다. '먹매김'은 콘크리트 바닥에 먹실을 튕겨 도면을 그리는 일로 건설 현장의 기초가 되는 일을 말한다. ⓒ프레시안(박정연)

먹줄을 팽팽히 당겨야 하는 업무 특성상 2인 1조로 일하기 때문에 부당한 요구도 있었다. 특히 남자인 먹차장과 둘이 일할 때다. 그는 "먹은 현장에서 정말 머리를 맞대고 일을 한다"며 "'오늘 끝나고 술 한잔하자'거나 '애인하자'는 요구를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어 "노닥거리려고 온 게 아니라 일을 하러 온 거지 않나"라고 반문하며 "그럴 때 질질 끌려다니면 안 된다. 그래야지 일을 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럼에도 김혜숙 씨가 계속 일을 했던 이유는 노동을 통해 스스로 돈을 번다는 자부심이었다. 쉬는 날이 거의 없이 일하는 그는 한 달에 400만 원 넘는 소득을 얻는다고 말했다. 김 씨는 "형편이 어려워서 시작을 했지만 뿌듯한 마음이 커서 계속할 수 있었다"며 "여자로서 이 나이에 이만큼 벌 수 있다는 것에도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일이 정말로 나를 자유롭게 만들어줬다. 내 아들이 결혼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와줄 수 있고, 신랑한테 용돈 타서 쓰면 치사한 부분도 있는데 그런 점에서 나는 떳떳하고 자유롭다. 나는 내가 자랑스럽다. 그렇기 때문에 더 열심히 일하게 된다." 그의 입가에 뿌듯한 미소가 그려졌다.

어느덧 7년 차로 현장에서 베테랑이 된 그는 막 시작한 여성들에게 노하우를 알려주기도 했다. 현장에서 나만의 기술은 곧 생존 능력이기 때문에 이를 선뜻 알려주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는 "안 그러면 욕 얻어먹으니까"라며 "내가 그 설움을 당했으니까 그 설움을 똑같이 당하지 말라고 알려주는 거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래야 현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잖아요"라고 덧붙였다.

먹줄이 먹물에 담겨있는 통을 일컫는 '먹통'은 먹매김 노동에 필수적인 도구다. 그는 "먹통은 내 밥통이고, 먹줄은 내 밥줄"이라며 "먹통 덕분에 할 줄 아는 일이 있으니까 당당하고 그 일을 통해 돈을 번다. 먹통을 보고 있으면 내가 일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든다"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길다란 검은 실 위에 그의 인생이 걸려있었다.

아래는 김혜숙 씨와 나눈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건설 현장에서 '먹매김' 노동을 하는 김혜숙 씨를 만났다. 먹줄을 당기고 있는 김혜숙 씨. ⓒ프레시안(박정연)

"힘든 현장 일을 여자가 할 수 있겠냐고 했다… 남들도 하는데 나야 못하겠냐고 말했다"

프레시안 : 본인과 하는 일, 먹매김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린다.

김혜숙 : 이름은 김혜숙. 나이는 60살이다. 건설현장에서 먹매김 일을 한다. 먹매김은 건설의 기초가 되는 일이다. 먹을 한 뒤에 철근이 와서 뼈대가 생기고 형틀 목수가 오면서 거푸집이 생긴다. 그 뒤 이것저것 하다보면 집이 완성된다. 내가 맨 처음 먹을 놓는 일을 한다. 건설현장에서 그림을 그리는 첫 번째 일이다.

프레시안 : 도면대로 건물이 올라갈 수 있게 기준이 되는 그림을 그리는 일이 먹매김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하루 일과가 어떻게 되나.

김혜숙 : 아침 4시 50분 일어나서 현장에 5시 40분쯤 도착한다. 아침밥을 현장에서 먹고 6시 50분부터 차장으로부터 일과를 받고 7시부터 일을 시작한다. 2인 1조로 함께 먹을 친다. 평균적으로 하루에 6명이 2개 동의 먹을 친다. 그리고 철근 설하부에 레벨을 치고 실을 묶는다. 그 선까지만 콘크리트를 채우라는 의미다. 먹을 치고, 레벨로 타설 높이를 조정한다고 보면 된다.

프레시안 : 건설 현장과 떨어진 사람이 먹매김이라는 일을 접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이 일은 어떻게 처음 시작하게 되었나.

김혜숙 : 먹고 살아야 하니까. 신랑의 일이 어려워져 내가 가장이 되었다. 먹매김을 처음 시작한 건 2017년이었다. 그 전까지는 20년 넘게 식당일을 했다. 처음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친구의 소개였다. 식당일을 하면서 쉬고 싶거나 내 일정대로 시간을 사용하고 싶어도 '쉬려면 그만두라'는 압박이 있었다.

그런 어려움을 이야기 하자 친구가 처음으로 현장일을 설명해줬다. 당시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처럼 느껴지지 않아서 한 귀로 듣고 흘려버렸다. 그러다 여고 동창 모임을 갔는데 그 친구가 다시 구체적으로 일을 설명해줬다. 먹실을 튕겨서 하는 일이라는 것 정도를 들었고, 안전교육 이수를 받고 일단 현장으로 오라더라. 왠지 모르게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도 들고 그래서 현장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체로 현장에 갔다.

프레시안 : 20년동안 식당일을 하시다가 바로 현장에 투입된거나 다름 없겠다. 실제로 먹매김을 해본적이 없는 상태에서 처음으로 현장에 갔다는 건가.

김혜숙 : 먹 자체를 몰랐다. 처음에는 실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먹차장('먹매김'을 하는 노동자들의 관리자. 편집자주)한테 '그것도 못하냐 XX야'부터 시작해서 정말 욕을 많이 얻어 먹었다. 자간을 맞추라는 지시를 받아도 자간이 뭔지 몰랐다. '사게부리', '오야선'(기준이 되는 선.) 등 건설용어를 하나도 모르니까 말이 안 통해서 멍하게 있었다. 그러니 답답하다고 또 욕했다. 눈물이 핑 돌았지만 삼키고 버텼다.

아파트를 만드는 현장에 있지만 내가 아파트에 안 살아봐서 아파트 입구가 어딘지를 몰랐다. 현장 입구도 찾지 못해 한참을 헤맨 적도 있다. 당시는 한 소리 들을 생각에 막막하기도 했었다. 20층이 넘는 현장에서는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화장실도 참고 물도 먹지 않았다. 시작하기로 마음을 먹고 왔으니 죽을 힘을 다해 일을 배웠다. 세월이 약이다. 7년이란 세월이 지나니까 이제 현장일은 모르는 게 없을 정도가 되었다. 나는 그렇게 욕을 먹으면서 배웠기 때문에 현장에 오는 여자애들한테 내가 다 알려준다. 기준선을 제대로 잡는 방법부터 줄을 튕기면서 머리를 너무 숙이면 안된다는 노하우도 가르쳐 준다.

프레시안 : 현장에서는 자신만의 기술이 자원이라 다른 이들에게 잘 알려주지 않는다고 알고 있다. 왜 다른 여성 노동자들에게 노하우를 가르쳐주나.

김혜숙 : 그래야 현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잖아. 안 그러면 욕 얻어먹으니까. 내가 그 설움을 당했으니까 그 설움을 똑같이 당하지 말라고 알려주는 거다.

▲건설 현장에서 '먹매김' 노동을 하는 김혜숙 씨를 만났다. '먹매김'은 콘크리트 바닥에 먹실을 튕겨 도면을 그리는 일로 건설 현장의 기초가 되는 일을 말한다. 건물의 기둥을 그늘 삼아 쉬고 있는 동료와 김혜숙 씨(오른쪽) ⓒ프레시안(박정연)

프레시안 : 하루 일당은 얼마인가.

김혜숙 : 2017년도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에 하루 일당으로 13만 원을 받았다. 3~4년 동안은 계속 13만 원을 받았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다음현장에서는 5년차일 때 1만 원이 올라서 14만 원을 받았고 지금은 19만 원 정도를 받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사람이 줄어서 그 뒤로 단가가 많이 올랐다. 나는 현장에서 나오라고 하면 백퍼센트 나간다. 그리고 공사가 끝날때까지 살아남는다. 내가 스스로 일을 찾아서 쓰레기도 줍고 했다. 아들이 하나 있는데, 내가 벌어서 애 공부를 가르쳤다. 애가 집 사는데 도와주기도 했다.

프레시안 : 먹매김을 한다고 했을 때 가족들의 반응은 어땠나.

김혜숙 : 힘든 현장 일을 여자가 할 수 있겠냐고 했다. 남들도 하는데 나라고 못하겠냐고 말했다. 애로사항도 있었지만 일하다보니 일을 할 수 있는 것 자체가 좋았다.

프레시안 : 보통 건설 현장에서 여성 노동자 수는 얼마나 되는가. 비율이 궁금하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건설노동자 열 명 중 한 명은 여성이라는 통계가 있다.

김혜숙 : 옛날에는 남자만 일을 줬는데 이제는 여자도 배워서 일을 하니까 여자도 일을 잡는다. 그 여자가 자기 친구도 데려오면서 늘어나는 것 같다. 일이 손에 익으면 생각보다 할 만하니까 의욕이 있는 사람은 살아남는다.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하는 게 아니라 자기 일만 하니까 편하다. 다른 곳보다 몸은 힘들지만 돈도 많이 주고 자유도 있다.

"'먹매김' 여자는 그냥 '먹아줌마'다"

프레시안 : 건설노동 현장에서는 화장실 문제가 논란이 된다. 이는 특히 여성 노동자에게는 고질적인 문제일 것 같다. 화장실 절대 수가 적은데 여자 화장실은 충분한가.

김혜숙 : 일을 처음 시작할 당시에는 많지 않았다. 여자 화장실이 한 개여서 지하 6층에서도 일하다가 여자 화장실이 있는 곳으로 올라왔다. 줄도 많이 섰다. 그에 비해 남자 화장실은 기본적으로 많았다. 남자 인원이 많으니까. 지금은 그래도 현장에서 여성들이 많아지니까 화장실 수도 늘어났다.

▲건설 현장에서 '먹매김' 노동을 하는 김혜숙 씨를 만났다. '먹매김'은 콘크리트 바닥에 먹실을 튕겨 도면을 그리는 일로 건설 현장의 기초가 되는 일을 말한다. 얼굴에 난 땀을 닦고 있는 김혜숙 씨. ⓒ프레시안(박정연)

프레시안 : 먹매김 노동자의 관리자를 '먹차장'이라고 부른다고 했는데, 김혜숙 씨는 뭐라고 불려왔나.

김혜숙 : '먹아줌마'라고 부른다. 별로 듣기 좋진 않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듣는다.

프레시안 : 그럼 먹하는 남성들도 차장이 아니면 '먹아저씨'라고 불리나.

김혜숙 : 아니다. 남자들은 대부분 '먹차장'으로 불린다. 다른 노동자들이 깔보지 말라고 반장, 차장이라고 직함이 정해져있다. 하지만 여자는 그냥 '먹아줌마'다. 그래도 건설노조에서는 나를 '반장님'이라고 불러준다.

프레시안 : '먹아줌마'대신 반장님이라는 호칭을 들으면 어떤가.

김혜숙 : 기분이 좋다. 아줌마 보다 훨씬 낫다. 인정받고 일하는 것 같다. 일하는 세월의 대우를 받는 느낌이다.

프레시안 : 일도 힘들지만 남성이 대다수인 노동 문화에 적응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김혜숙 : 울면서 남한테 하소연하며 버텼다. 한 번은 남자 차장이 날 많이 괴롭혔다. 내가 그만두지 않는 한 그 사람이 상급자고 지시를 받는 관계이기 때문에 말을 들어야 한다. 높은데 가서 일을 하다가도 내려오라고 하면 내려와야 했다. 예를 들어 20층에서 5분이면 끝나는 일이 남았는데 갑자기 1층 일을 하라고 했다. '20층 일이 5분이면 끝나니까 끝내고 갈게요' 하면 '뭔 말이 많아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지 웬 말대꾸를 해'라고 소리를 치며 욕했다. 그 사람 말을 안 들으면 안 됐다. 마치 독재자처럼 행동했다. 일을 잘 해도 꼬투리를 잡았다. 자기가 데려온 먹아줌마가 아니라는 이유에서였다. 내일은 그만둬야지 하고 하루 하루 버티듯이 1년을 일했다. 그 사람이 나보다 먼저 그만 뒀다. 나가면서 '아줌마 내가 괴롭혀서 미안하다'고 했다. 나는 1년 동안 일하고 퇴직금도 다 받고 그만 뒀다.

프레시안 : 건설 현장의 고용구조가 뚜렷하지 않기 때문에 차장이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경우도 있고, 그러면 부당한 지시여도 거부하기 어려웠겠다. 차장과 2인 1조로 일을 하게 되면 겪는 어려움도 있을 것 같다.

김혜숙 : 먹은 현장에서 정말 머리를 맞대고 일한다. 한 사람은 실을 잡아주고 튕기고 하면서 둘이 일을 하니까 일 시작하고 초기에는 짜증나는 요구도 많이 있었다. '오늘 끝나고 술 한잔 하자'거나 '애인하자'고도 한다. 노닥거리려고 온 게 아니라 일을 하러 온 거지 않나. 그럴 때 질질 끌려다니면 안 된다. 그래야지 일을 한다.

프레시안 : 현장 일도 힘든데 추근덕 거리는 사람들을 '잘' 거절하는 것도 스트레스였을 것 같다.

김혜숙 : 농담으로 그 상황을 넘기거나. 일단 그 상황에서는 '예.예.' 대답만 하고 집에 가버린다. 한두 번 그렇게 시도를 하다가 칼같이 행동하면 그렇게 대하지 않는다.

프레시안 : 또 다른 어려운 점은 없었나.

김혜숙 : 먹아줌마가 사무실 청소를 담당해야 했다. 공사 현장을 관리하는 소장과 먹차장이 쓰는 사무실이 있다. 거기를 먹매김 노동자들이 청소해야 했다. 건설 노동자들은 아침마다 체조를 한다. 부상을 방지하기 위해 몸을 풀어주려고 하는데, 우리는 체조 시간에 체조를 안 하고 사무실 청소를 했다. 먹매김의 업무가 아닌데도 시키니까 했다. 건설노조에 들어오고 나서는 더이상 청소 업무를 하지 않는다.

프레시안 : 건설노조에 가입하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그리고 정부의 건설노조 탄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김혜숙 : 친구가 건설노조 가입을 권유해서 가입했다. 들어와보니 더 안전하게 일하게 되어서 좋다. 여자에게 커피심부름을 시키지도 않고 먹아줌마가 담당하는 소장 사무실 청소도 하지 않는다. 정부가 건설노조를 탄압하는 건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일하는 사람들일 뿐이다. 왜 일하는 사람을 때려잡는지 모르겠다. 여름이면 땡볕에서 일하고 겨울이면 눈 맞고 일하는 한 사람일 뿐이다. 건설노조라고 하지만 다 일하는 서민이다. 현장에서는 애꿎은 사람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

"신랑한테 용돈 타서 쓰면 치사하지 않나…일이 날 자유롭게 만들어줬다"

프레시안 : 일도 힘들지만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많았을 것 같다. 일을 그만두고 싶지는 않았나.

김혜숙 : 지옥같은 차장을 만나면 매일같이 그만두고 싶었다. 술 먹고 동료들하고 이야기 욕하면서 풀었다. 그리고 일부러 더 긍정적으로 일했다. 오늘 지나면 내일은 아무 일도 없던 듯이 행동했다. 어쨌든 일을 해야 하니까. 다른 현장에서도 그런 차장을 만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으니까. 더 이상한 사람을 만날 수 있기 때문에 일단 주어진 현장에서 내 방식대로 일하면서 버텼다. 간 쓸개를 다 빼놓고 일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이젠 경력이 쌓이고 베테랑으로 자리 잡으면서 할 말은 할 수 있게 되었다.

▲건설 현장에서 '먹매김' 노동을 하는 김혜숙 씨를 만났다. '먹매김'은 콘크리트 바닥에 먹실을 튕겨 도면을 그리는 일로 건설 현장의 기초가 되는 일을 말한다. 안전모를 고쳐쓰는 김혜숙 씨. ⓒ프레시안(박정연)

프레시안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을 계속 할 수 있었던 이유가 있나.

김혜숙 : 형편이 어려워서 이 일을 시작했지만 뿌듯한 마음이 커서 계속할 수 있었다. 지금은 한 달에 400만 원 넘게 번다. 내가 죽을 힘을 다한 노력이 인정받는 것 같아 뿌듯하고 더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여자로서 이 나이에 이만큼 벌 수 있다는 것에도 자부심을 느낀다. 일터에서 아침밥, 점심밥도 주고 급여도 준다. 나는 내가 자랑스럽다. 내 아들이 결혼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와줄 수 있었으니까. 신랑한테 용돈 타서 쓰면 치사한 부분도 있는데 그런 점에서 나는 떳떳하고 자유롭다. 그렇기 때문에 더 열심히 일하게 된다. 일이 정말로 나를 자유롭게 만들어줬다.

프레시안 : 먹매김 경력이 7년차니 일하면서 이것만큼은 자신있다 하는 지점이 있나.

김혜숙 : 먹줄 튕기는 것과 레벨 붙이는 건 자신 있다. 기준점을 직접 따서 하기 때문에 오차 없이 깔끔하게 튕길 수 있다. 먹은 자신이 있다.

프레시안 : 먹은 김혜숙 씨에게 어떤 존재인가.

김혜숙 : 먹통은 내 밥통이고 먹줄은 내 밥줄이다. 그래서 내 먹통에 누군가 함부로 손을 대면 기분이 나쁘다. 남에게 빌려주지도 않는다. 먹통 덕분에 할 줄 아는 일이 있으니까 당당하고 그 일을 통해 돈을 번다. 먹통을 보고 있으면 내가 일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든다.

프레시안 : 일터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나 꿈이 있나.

김혜숙 : 힘닿는 데까지 일하고 싶다. 현장에서 날 받아줄때까지 일하는 게 목표다.

프레시안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나.

김혜숙 : 모두가 자부심을 가지고 일을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현장일은 누구나 할 수 있으니까 혹시나 관심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일단 부딪혀봤으면 좋겠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은 참 자랑스럽다.

[박정연 기자(daramji@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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