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우의 밀레니얼 시각] 악성 민원인과 불멸의 갑질

2023. 8. 18.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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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은 좀비 바이러스같아서
피해자가 가해자 되는 구조
'내 선'에서 끊고 멈춰야 한다

얼마 전 전입신고를 하러 주민센터에 갔다. 주민센터에 들어서니 한 중년 남자가 고성으로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하면서 한참 동안 창구 앞에 서 있었다. 주민센터 직원들이 이 경우는 업무를 처리해드릴 수 없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소용없었다. 그는 온갖 상욕을 퍼부으면서 몇 십 분째 그러고 있었다. 뒤에는 스마트폰에 코를 박고 기다리는 사람만 스무 명 정도가 있었다.

직원들 여럿이 응대하느라 주민센터 업무는 마비될 지경이었다. 나는 보다 못해서 경찰에 신고를 했다. 그러나 경찰이 올 때쯤에 그 사람은 돌아가고 없었다. 이것은 명백한 범죄행위였고, 주민센터 직원에게 가서 참지 말고 고소하라고 권유라도 하고 싶었다. 우리 사회는 어쩌다 이런 범죄행위, 소위 '갑질'이 만연한 사회가 되었을까?

하나 생각해보게 되는 것은 사회에 '갑질'을 하지 않으면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사람들이 일정 비율로 존재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 갑질이라는 것은 굉장히 전염성이 강해서, 그 폭력적인 경험을 한 번 당한 사람은 좀비에게 물린 사람처럼 다른 사람을 물어뜯으려 한다.

'갑질'이라는 것은 상당히 순화된 표현인데, 정확히 말하면 인간을 인간 취급하지 않는 것이다. 인간을 기계나 도구, 노예, 물건으로 취급하면서 인간으로 대우하지 않는 것이 갑질이다. 갑질의 현장에서 갑질을 당하는 사람은 하나의 인격을 가진 인간이 아니다. 마치 악플을 달 때 악플의 대상이 죽어도 상관없다고 믿는 것처럼, 성폭행을 할 때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도 상관없다고 믿는 것처럼, 갑질 또한 내 안에서 타인의 인격을 살해한 이후 하는 행위이다.

이렇게 '인간 아닌 경험'을 당하고 나면, 경우에 따라서는 우리 안의 무언가가 무너진다. 결코 해서는 안 된다고 믿었던 공고한 윤리 체계의 한 구석에 균열이 간다. 그리고 그 틈으로 인간으로서는 해선 안 되는 충동이 비집고 나온다. 피해자가 다시 가해자가 되는 것이다.

즉, 갑질을 당한 사람은 다시 공무원에게 가서 갑질을 하든, 돈을 낸 서비스 제공자에게 갑질을 하든, 부하직원에게 갑질을 하든, 하다못해 악플을 달고 다니거나 가정폭력을 행사하든 또 다른 피해자를 양산해야 하는 것이다. 마치 인간에서 인간을 타고 내려가며 불멸하는 DNA처럼 인간에서 인간을 타고 다니며 '갑질'은 불멸한다.

좀비 바이러스가 한 명에서 시작해도 인류 전체로 확산될 수 있는 것처럼, 갑질 바이러스 또한 다르지 않은 셈이다. 이것을 일종의 '좀비' 문제와 같은 구조라고 본다면,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좀비와 전선을 형성하여 바리케이드를 치고 좀비들을 격리한 뒤 치료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좀비에 감염되지 않는 백신을 개발하여 일종의 면역력을 기르는 것이다.

전자가 갑질을 불가능하게 하는 시스템을 계속 갖추어가는 것이라면, 후자는 갑질을 어떻게든 '내 선'에서는 끊고 그 확산을 멈추는 일이다. 갑질하는 사람을 명료하게 처벌하고, 나아가 애초에 갑질을 당하지 않도록 보호해주는 게 '시스템'의 길이다. 반면, 나에게 꽂힌 '갑질'을 내 안에서 소화시켜 버리고 더 이상 뱉어내지 않는 면역력의 힘은 인간성에 대한 문화적 각성과 연대에서 나온다.

교사든, 민원 대응인이든, 도서관 사서든, 사회 복지사든, 재난 현장의 공무원이든 공공을 책임지는 최전선의 이들이 범죄를 당하며 묵묵히 견디는 게 일반적인 일이 되어버렸다. 나아가 이 갑질은 각종 서비스 현장에서, 직장 내에서, 거래 관계에서 바이러스처럼 퍼져나간다. 시스템적으로 그리고 문화적 연대로 이를 막지 못한다면 우리 사회는 곧 만인의 만인에 대한 갑질 사회로 완성되어 버릴 것이다. 불멸의 갑질로 오염되어 가는 사회를 치료해야만 하는 때가 되었다.

[정지우 문화평론가·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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