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공정사회'의 쇠락

2023. 8. 18.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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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공정사회에 살고 있다는 불만과 푸념을 달고 사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다. 이때 공정사회는 공정한 사회가 아니고, '공무원이 (모든 것을) 정하는 사회'의 준말이다. 민간의 창의성과 순발력을 덮어버리는 공공의 힘이 여기저기에 막강하다 보니, 그냥 아재개그로 지나치기에는 현실이 무겁다. 공정사회의 삐걱거림이 여기저기에서 보이기 때문이다.

잼버리 대회가 막을 내리고 일주일이 지났지만, 아직도 대회 실패에 대한 책임 공방이 진행 중이다. 언론과 정치권에서 연일 터지는 말대포들은 대부분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느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대회 실패를 겸허히 반성하고, 거기서 교훈을 얻으려는 징비(懲毖)의 자세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대회 유치, 준비와 운영 단계,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구분하고, 각각의 문제점을 분석한 뒤 잘했고(잘했던 것들도 당연히 있다) 못했던 점을 추려서 다음 국제행사에 교훈으로 삼으려는 시도도 전혀 안 보인다.

포괄적 책임만 탓하는 소모적인 공방이 이어지다가 다른 이슈가 나오면 또 다른 난투극으로 넘어가는 게 다이내믹 코리아의 현주소다. 괜한 가정이지만, 이번 잼버리가 역대급으로 잘 진행됐다면 주최 기관 중에서는 누가 가장 칭찬을 받았을지 혹은 누가 가장 셀프 홍보를 심하게 했을지가 그려진다.

이번 잼버리가 초반에 파투가 났던 것은 화장실이나 샤워장 등 위생 점검을 소홀히 했던 탓이 크지만, 보다 근본적인 것은 지반, 배수 등 기본적인 인프라와 컨트롤타워 문제로 보인다. 위생 문제는 더 많은 인원과 장비 투입으로 정리되지만, 지반 불안정이나 침수가 초래한 문제는 며칠 만에 해결이 불가능했다. 제대로 된 컨트롤타워 부재도 같은 문제를 안고 있었다. 수십 년간 스카우트 활동을 해왔던 베테랑 지도자들이 이를 간과할 리 없었다. 위생과 폭염은 그들에게 철수를 결정할 명분을 준 것에 불과하다. 2016년 일본 야마구치현 잼버리도 매립지에서 열렸었다. 당시에도 폭염 피난처가 될 그늘, 지열을 식혀줄 공원녹지, 지반, 배수 등 매립지가 갖는 약점 등이 이슈가 되었고, 당시 주최 측이 이를 해결했던 방법들도 이미 충분히 나와 있다. 그럼에도 이번 대회장 인근에 공원녹지는 전무했고, 행사 직전까지도 지반공사를 했다고 한다. 통상 1~2년 전에 본행사 점검 차원에서 하는 프레잼버리는 코로나를 이유로 하지 않았지만, 대회장을 테스트할 시간과 기회는 많았다고 보인다.

152개국에서 온 잼버리 대원들은 귀국 후에 어떤 추억을 간직할까. 원래 목적과는 다르게 되었지만 K팝과 한국 관광을 평생 즐거운 추억으로 갖고 갈 대원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잼버리가 한국 체험으로 바뀌자마자, 일사불란하게 달려든 기업과 지자체에 의문을 품을지도 모른다. 여기저기서 의병처럼 달려들어 한국의 평판을 유지해준 기업들을 이해하려면 그들이 한국을 더 공부해야 할 것이다. 군대에 간 BTS 멤버를 동원하자는 의견이 아무렇지도 않게 공공 쪽에서 나온 것이나, 국가가 필요하면 팝스타 일정까지도 바꿔서 공연에 참여하게 하는 것을 이해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다.

공정사회가 시대착오적임을 이번 잼버리가 다시 일깨워주었다. 공공이 큰 사업이나 행사를 주도하는 시간은 이제 지나간 것이 아닐까.

[김세용 경기주택도시공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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