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부터 넓혀놓자’ 개발 속셈이 빚은 파행
어정쩡한 높이로 두 배 넓힌 매립도 문제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가 파국으로 치달은 근본적인 이유는 폭염도 아니고, 폭우도 아니다. 폭염과 폭우는 잼버리의 상수이다. 단 일반적인 자연조건의 부지일 경우에 그렇다. 틀에서 막 꺼낸 두부 같은 새만금 매립지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새만금 잼버리 부지는 갯벌이었다. 동진강 하구에서 퍼올린 작고 가는 펄 모래를 매립토로 썼다. 이 과정에서 준설토 미세먼지가 모래 폭풍처럼 날리면서 인근 주민들을 괴롭혔다. 비가 내리지 않고 돌개바람이 불었다면 이번 잼버리의 또 다른 악재였을 것이다. 물이 섞인 준설토를 쌓아 올린 무른 땅은 적은 비에도 무릎까지 빠질 정도였다. 자연적으로 지반이 안정될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바둑판처럼 경지정리가 된 농지는 기울기가 거의 없어 자연 배수 기능이 떨어진다. 면적이 넓다 보니 배수 시간도 오래 걸린다. 여기저기 생겨난 물웅덩이에는 갈매기가 무리 지어 쉴 정도다.
임시로 배수지 100곳을 만들고, 추가로 수로를 냈지만, 그마저도 막히면서 물 빠짐 효과는 거의 없었다. 뙤약볕이 내리쬐면 습기를 머금은 땅에서 전라도 말로 ‘훈짐’이 올라온다. 습식 찜질방과 다름없다. 그늘막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숲세권 아파트 분양사기 조감도라는 비판까지 받았던 나무 그늘은 애당초 불가능했다. 여기저기 붉은 칠면초가 자랄 정도로 염분 농도가 높다. 그늘 쉼터용 덩굴식물 터널은 앙상하기 그지없었다. 폭염보다 더 큰 고통을 준 것은 모기떼와 화상벌레였다. 진원지는 곳곳에 흩어져 있는 물웅덩이와 습한 초지였다.
개발 논리에서 비롯된 재앙
2020년 봄, 매립 공사가 본격화되면서 환경단체의 우려가 커졌다. 자연과 공존하는 세계잼버리의 가이드라인에 맞게 마지막 남은 해창갯벌을 파괴하지 않는 방법을 선택해 달라고 여성가족부에 공문을 보내고, 스카우트연맹 관계자를 만나고, 세계스카우트연맹 총재에게 호소문을 보냈다. 하지만 전라북도는 문제의 해창갯벌 일원을 잼버리 부지로 고집했다. 도의 속셈은 따로 있었다. 새만금 내부 공공 매립을 확대하고 기반시설 조기 건설을 통해 새만금의 개발 속도를 높여보자는 것이었다.
새만금 세계잼버리 유치를 검토하던 2012년 당시, 새만금은 최악의 상황이었다. 호의 물은 썩어 가고, 물고기는 떼죽음을 당하고, 노출지에는 먼지만 날렸다. 새만금특별법을 제정하고 새만금 기본계획을 세웠지만 농생명용지를 제외한 개발은 지지부진했다. 신재생에너지에 7조6000억원을 쏟아붓겠다던 삼성도 손을 털고 나갔다. 호텔, 골프장, 타워, 케이블카 등은 모두 말 잔치로 끝이 났다. 이런 사정을 감안해보면, 세계잼버리 유치전은 한계에 직면한 새만금 사업의 활로 찾기였다.
2017년 8월 17일, 세계스카우트 총회에서 새만금을 잼버리 개최지로 최종 결정하자 전북도는 잼버리 유치에 따른 기대효과로 새만금 사회간접자본(SOC) 등 기반시설 조기 구축을 내세웠다. 경제적 파급효과는 현재가치로 환산할 경우 6조4656억원의 생산과 2조855억원의 부가가치가 발생한다고 예상했다. 국제행사를 지렛대 삼아 관련 SOC 사업을 추진하는 지자체를 비난할 생각은 없다. 새만금 사업도 마찬가지다. 진짜 문제는 국제행사를 빌미로 실제 필요하지도 않고 효과도 없는 토목공사 예산을 확보하는 데 있다.
잼버리 부지 주변 주민들이 모래바람을 맞는 동안 새만금 인프라 구축 사업에는 훈풍이 불었다. 전북도의 바람대로 새만금 조기 개발을 위한 SOC 예산 확충에도 탄력이 붙었다. 2018년 11월 ‘세계잼버리지원특별법’이 만들어지고 행사에 대한 행정적·재정적 지원이 가능해졌다. 새만금 신공항 예비타당성 면제, 새만금~전주 고속도로 조기 착공, 동서 2축 남북 2축 도로 개통, 새만금 신항만, 수변도시 공공 매립 등 중앙정부의 집중적인 예산 투자를 끌어내는 명분이 됐다.
그러나 새만금 잼버리 부지 조성 공사는 시작도 늦고 속도도 더뎠다. 국내 유치 결정 이후 5년이 지난 2020년에야 매립 공사를 시작했다. 농어촌공사는 2022년 3월까지 부지 매립과 내부 도로, 단지별 배수로 설치를 마치기로 계획했다. 부지 조성이 끝난 후 이뤄지는 야영장 조성과 수도, 전기 공사는 전북도에 넘겼다. 차질없이 준비되고 있다는 조직위원회의 호언장담과 달리 공사는 더디기만 했다. 결국 세계잼버리 개최국이 의무적으로 개최해야 하는 프레잼버리 대회도 열지 못했다. 부지 조성 공사는 2022년 12월에야 마무리됐다. 수도와 전기, 간이 하수도 등은 대회 직전에 가서야 연결이 됐다.
잼버리 부지 매립의 실체
잼버리 부지 매립 공사비 2150억원은 농지관리기금을 가져왔다. 2017년 12월 제19차 새만금위원회는 속도감 있는 사업 추진을 위해 관광레저용지를 임시 농업용지로 변경했다. 농어촌공사법은 기금의 사용처를 법으로 정하고 있다. 따라서 농지조성 기준에 따라야 한다. 매립고를 높이고 기층 보조재를 깔고 육상토를 덮는 등 지반을 안정화하는 공사는 할 수 없었다. 야영장 조성 사업을 조직위와 전북도에 넘긴 것도 이 때문이다.
잼버리 부지의 평균 매립고(E.L)는 1공구가 2.59m, 2공구는 2.28m이다. 일반적으로 1.15m 이하인 농업용지보다 높고, 인근 도시용지 매립고인 2.65m보다 낮다. 관광레저용지로 사용될 가능성을 염두에 둔 어정쩡한 높이로 매립됐다. 농지도 아니고 관광용지도 아닌, 죽도 밥도 아닌 땅이 되고 말았다. 어디에도 쓸모없는 땅, 그것이 잼버리 매립의 실체였다.
잼버리 부지 매립 면적을 당초 계획보다 두 배 이상 늘린 것도 치명적인 잘못이었다. 2016년 새만금개발청이 발주한 ‘2023 세계잼버리 유치 실천방안 연구 용역’에 따르면 숙영지, 전시장, 대집회장 등을 위한 매립 필요 면적을 약 389㏊로 계산했다. 그런데 2017년 12월 새만금위원회가 임시 농지로 변경한 후 설계 단계에서 매립 면적이 884㏊로 늘어났다. 잼버리가 끝나면 다시 관광레저 용지로 사용하는 것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선택과 집중으로 매립 면적을 최소화해야 했다. ‘제사보다는 젯밥에만 눈이 어두웠다’는 비난을 피해가기 어렵게 됐다.
결론적으로 새만금 잼버리는 새만금 간척사업이 낳은 무정란이었다. 단군 이래 최대의 간척사업이자, 동시에 최대의 환경파괴 사업인 새만금 간척사업은 새로운 희망을 잉태하지 못하는 낡은 시대의 유산이었다. 첫 삽을 뜬 지 32년, 대통령이 8번 바뀌었다. 그 넓은 땅을 어떻게 쓸 계획도 분명하지 않은 상태에서 일단 땅부터 넓히고 보자는 식으로 밀어붙인 개발 속도전의 산물이 바로 새만금 잼버리였다.
이정현 전북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Copyright © 주간경향.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