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출석 이재명 ‘시지프스 되겠다’ 발언 두고···여야 공방
민주 “부조리에 맞서겠다는 비장한 선전포고” 해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17일 검찰에 출석하면서 “기꺼이 시지프스가 되겠다”고 한 발언을 두고 정치권이 공방을 벌이고 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시지프스는 신들로부터 바위를 산꼭대기로 밀어올리는 일을 무한 반복하는 형벌을 받은 인물이다. 이 대표의 시지프스 발언에 국민의힘은 “끝없는 죗값을 받았던 그 결말도 같을 것”이라고 논평했고 민주당은 “논평 수준이 낯부끄럽다”고 맞섰다.
이 대표는 지난 17일 ‘백현동 개발 특혜’ 의혹으로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면서 “비틀어진 세상을 바로 펴는 것이 이번 생의 소명이라 믿는다. 기꺼이 시지프스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없는 죄를 조작해서 뒤집어씌우고 자신들의 치부를 가리겠다는 정치검찰의 조작 수사 아니겠나”라며 “정권의 이 무도한 폭력과 억압은 반드시 심판받고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코린토스의 왕 시지프스는 신들로부터 끊임없이 바위를 산꼭대기에 올려놓아야 하는 형벌을 받는 인물이다. 시지푸스는 제우스가 독수리로 변해 강의 신 아소포스의 딸 아이기나를 납치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강의 신과 거래를 한다. 코린토스의 가뭄을 해결하기 위해 아소포스에게 마르지 않는 샘을 얻는 대가로 아이기나의 위치를 알린다. 이에 격노한 제우스는 죽음의 신 타나토스를 보내 시지프스를 죽이려 하나 시지프스는 타나토스를 가두고 저승의 신 하데스를 속인다.
강민국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지난 17일 “그릇된 욕심으로 남을 속인 시지프스를 자처한 이재명 대표, 끝없는 죗값을 치르는 그 결말도 같을 것”이라는 제목의 논평을 냈다. 강 대변인은 “이 대표는 그리스 신화의 시지프스를 언급하며 마치 자신에 대한 수사가 부조리인 듯 항변했다”며 “이 대표는 알고 있는가. 시지프스는 애초에 욕심이 많았고, 속이기를 좋아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이 대표와 참으로 닮은 시지프스, 끝없는 죗값을 받았던 그 결말도 같을 것”이라고 했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이 대표가 진정으로 떳떳하다면 그리스 신화의 시지프스를 소환할 이유도 없다”며 “검찰 수사에 적극적으로 반박하며 혐의 없음을 입증하면 될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김남준 이재명 대표 정무조정부실장은 18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너는 시지프 꼴이 될 거야’라고 원색적 비난을 하는 국민의힘 논평의 수준이 참으로 낯부끄럽다”며 “원색적 비난 말고 문학을 문학으로, 철학을 철학으로 반격하는 품격 높은 논평을 기대한다”고 반박했다.
김 부실장은 “이 대표가 말한 시지프스는 알베르 카뮈를 통해 바라보아야 온전한 해석이 가능하다”고 반박했다. 그는 “알베르 카뮈는 굴러떨어지는 바위를 무한히 끌어 올려야 하는 시지프의 숙명에 주목한다”며 “비극 그 자체이나 불가항력의 고통을 기꺼이 감내한 순간 시지프는 비로소 자유로워지고 부조리한 운명도 극복 가능해진다”고 설명했다.
김 부실장은 “이 대표의 ‘기꺼이 시지프스가 되겠다’는 선언은 △부조리에 맞서야 할 자신의 숙명을 온전히 인식했고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릴 각오가 되었으며 △마침내 무도한 정권의 부조리에 맞서 싸울 준비가 되었다는 비장한 선전포고”라고 했다. 김 부실장은 “그(이 대표)는 적진의 소굴로 한 걸음 더 과감히 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자산을 모두 소진할 각오로 싸울 것이다. 이상이나 망상이 아닌 철저히 현실의 링에서 혁신 의지를 굽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친이재명계 좌장 정성호 민주당 의원은 이날 SBS 라디오에서 “(국민의힘이) ‘시지프스가 왕이었는데 굉장히 욕심 많은 왕이었다, 그래서 처벌을 받았다’고 얘기를 하는데, 저도 젊었을 때 알베르 카뮈의 <시지프의 신화>를 읽어봤다”며 “(이 대표가) 결국 형벌을 받아서 끊임없이 올라가지만 내려오면서 자기 의지를 갖고 희망을 만들어가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고민정 민주당 최고위원은 이날 BBS 라디오에서 “이재명이라는 정치인이 시지프스에 비유한 의도와 맥락이 있는데, 그것을 어떻게든 평가절하하기 위해 말꼬리를 잡고 있는 것”이라며 “국회가 너무 말장난의 장소가 돼 버린 것 같다”고 말했다.
김윤나영 기자 nayo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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