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진칼럼]알래스카와 앵커리지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2023. 8. 18.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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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진 /사진=김화진

알래스카가 미국이 러시아로부터 돈을 주고 사서 미국 영토가 되었다는 정도는 다 안다. 1867년에 요즘 가치로 약 15억 달러에 매입했다. 그 가격이면 일론 머스크는 알래스카의 2천 배 되는 땅을 살 수 있다. 러시아는 바보였나. 석유를 포함해 엄청난 천연자원을 보유하고 있고 위치도 베링해협을 관장하는 북미대륙 맨 위에 있어서 군사적 의미가 지대한 큰 땅인데 그 땅을 그 돈을 받고 팔았다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별 가치 없는 작은 섬을 두고 전쟁까지 불사하는 세상이다. 결론은, 러시아는 물론 바보가 아니었다.

첫째, 당시까지 러시아의 불구대천 원수는 영국이었다. 이른바 '그레이트 게임' 중이었다. 그런데 알래스카는 영국령인 캐나다와 붙어있는 지역이다. 모스크바와는 7,000km로 너무나 멀고 시베리아라는 장애물을 넘어 베링해를 건너야 근근히 닿는 곳이다. 영국에게 빼앗기기 십상으로 예상되었는데 영국의 적이고 당시 가까운 사이였던 미국에 넘기면 괜찮을 것으로 생각되었고 거기다가 많지는 않지만 돈도 생긴다. 사실 무상으로 넘길 수도 없다.

둘째, 미국은 남북전쟁 때 북부가 러시아의 지지와 지원을 받았다. 미국은 러시아에 빚을 지고 있었다. 러시아가 알래스카라는 짐을 덜고 싶어 한다면 협조해 줄 수 있었다. 매매가격이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재정이 어려웠던 러시아에게 작은 돈도 아니었다.

셋째, 미국은 알래스카를 전략적으로 활용할 용도가 있었다. 지금 북미 서해안의 지도를 보면 알래스카가 태평양을 따라 좁고 길게 내려와 캐나다 해안의 절반을 차지하고 막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프라이팬 손잡이 같다고 해서 '팬 핸들'이라고 부른다. 지금 알래스카의 주도인 주노도 거기에 있다. 미국은 캐나다, 즉 영국을 태평양으로부터 차단시킬 수도 있었다. 그 상황은 1903년에야 정리되어서 지금의 모습으로 굳어졌다.

당시의 매입 이유는 정치적, 외교적인 것이었다. 후일 엄청난 석유와 천연가스, 광물자원이 나오기 시작했지만 석탄의 시대였던 1867년 당시에는 아직 큰 의미도 기술도 없는 변수였다. 그래서 여론은 나빴다고 한다. 정부가 쓸데없는 짓을 했다는 비난이 들끓었다. 세월이 지나 지정학적 상황이 바뀌고 미국과 소련의 냉전 시대가 되어서 돌이켜보니 미국으로서는 운이 좋았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알래스카가 미국 영토가 되었는데 재미있는 일이 생겼다. 알래스카와 시베리아 사이의 82km 폭 베링해협에는 해협 중간에 섬이 두 개 있다. 이 두 섬이 각각 러시아와 미국 영토로 정해진 것이다. 양측의 중간에 선을 긋다보니 그렇게 되었다. 러시아령 대 다이오메드와 미국령 소 다이오메드다. 두 섬 사이의 거리는 3.8km이고 그 사이로 날짜변경선이 지난다. 1987년 양국 관계가 좋았을 때 한 수영 선수가 그 사이를 헤엄쳐 건넜고 레이건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축하를 받았다.

재미없는 일은 두 섬이 나누어지면서 인도적 문제가 생긴 것이다. 두 섬의 주민들은 하나의 공동체로 살고 있었다. 심지어 친인척이 양쪽으로 살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작은 섬의 주민들이 하루 아침에 미국 시민이 되어 버렸다. 시베리아 쪽 큰 섬은 1948년에 소련이 군사기지를 건설하면서 주민들을 본토로 이주시켰다. 이제 민간인은 거주하지 않는다. 미국 쪽 작은 섬에는 약 100명의 주민이 거주한다. 학교와 우체국이 있다.

알래스카의 최대도시는 앵커리지다. 많은 한국인들이 알래스카 땅을 밟아 본 적이 있는 이유는 앵커리지가 있어서다. 앵커리지는 약 73만의 알래스카 주민 중 40%가 거주하는 곳이다. 러시아 영공을 통과할 수 없던 시절 유럽에 가려면 북극항로의 앵커리지를 경유했다. 앵커리지 공항은 시카고나 LA에 맞먹었었다. 냉전이 끝나고 비행기들의 항속거리도 길어지면서 그 전성기는 끝났다.

앵커리지는 글로벌 교통의 허브 기능을 상실했지만 아직도 세계에서 네 번째, 미국에서 두 번째로 바쁜 공항이다. 화물운송의 글로벌 허브여서다. 앵커리지의 위치는 세계 모든 주요 대도시와 9시간 30분 이내의 거리에 있다. 화물운송 기업들은 연료보다 화물을 더 많이 싣는 것이 이익이기 때문에 앵커리지를 거쳐 가면서 재급유를 하는 전략을 쓴다. 코로나 시기에 여객 운송이 감소했을 때 앵커리지는 세계에서 가장 바쁜 공항이었다.

나아가 지금 정도의 진도로 기후변화, 즉 온난화가 진행되면 머지않아 최소한 여름 한 철 북극해가 완전한 가항수로가 된다. 예컨대 로테르담에서 뱅쿠버까지 비싸고 오래 걸리는 파나마운하 루트로 돌아가지 않고 바로 북극해 루트를 통해 컨테이너선이 오갈 수 있는 것이다. 로테르담에서 일본 요코하마까지는 수에즈운하와 말라카해협을 거쳐 12,730해리다. 북극해 항로는 5,750해리에 불과하다. 20일 정도가 단축된다. 연료비가 절약되고 연료를 적게 싣는 만큼 화물을 더 실을 수 있다. 항공화물운송의 허브 앵커리지의 인기가 복합운송 차원에서 더 올라갈 수 있다.

북극의 얼음이 녹으면 또 한 가지 이점이 생긴다. 북극해에 연한 육지에 풍부하게 매장되어 있는 석유와 가스 등의 자원 개발이 쉬워진다는 것이다. 그 대신 안보상의 문제도 많아질 것이다. 미국은 알래스카에 전략자산을 증강해야 한다. 북한이 미국의 서해안을 향해 미사일을 발사한다면 알래스카 부근을 지나게 된다. 앵커리지가 더 바빠질 이유다.

트럼프행정부가 그린란드를 매입하고 싶어 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군사적 목적과 교역로 보호다. 미국이 활용할 북극해 항로는 캐나다 연안과 섬들을 지나게 되어 있는데 선박은 가급적 해안에 가깝게 항행하는 것이 좋기 때문에 캐나다 내해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린란드가 미국 땅이면 그 문제가 쉬워진다.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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