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토 학부모가 교사와 면담할 수 있는 세 가지 방법[다른 삶]

기자 2023. 8. 18.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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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우제의 ‘경계인’
토론토 북쪽에 있는 공립중학교. 방학 중이라 학교가 텅 비어 있다. 토론토도 학부모들의 교육열이 높은 편이어서 ‘좋은 학군’에 있는 집은 비싸다.

토론토에 살러 와서 부모로서 학교 선생님한테 야단을 맞은 적이 있었다. 야단을 맞아도 아주 크게 맞았다. 둘째 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이던 어느 해 3월 갑자기 눈이 쏟아진 날이었다. 아내는 가게에서 일을 하고 있었고 나는 오후 3시30분에 하교하는 아이를 데리러 학교로 가던 길이었다. 어디에 들렀다가 여유 있게 고속도로로 접어들었는데 폭설로 인해 도로가 갑자기 주차장처럼 변해버렸다. 고속도로에서 빠져나가는 것조차 거의 불가능했다. 나는 학교 행정실(‘오피스’라고 부른다)에 전화를 걸어 “도로 사정 때문에 내가 늦을 수도 있으니 아이를 데리고 있어 달라”고 부탁했다. 담당자는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시간이 지나도 사정이 나아지지 않아 나는 학교에 여러 번 전화를 걸어 거듭 양해를 구했다. 이미 4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나는 아내에게 연락해 가게 문을 닫고 아이를 데리러 가라고 부탁했다. 내가 학교에 도착하자 지하철을 타고 와서 학교로 뛰어가는 아내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학교에서 아이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온 사람은 뜻밖에도 교장 선생님이었다. 이미 4시30분이 넘었으니 다른 교직원들은 모두 퇴근(교직원 출퇴근 시간은 학생 등하교보다 30분이 이르고 늦다)하고 남은 사람은 교장과 행정실 직원 1명뿐이었다. 그 직원은 학교 문을 닫는 책임자인 듯했다.

우리는 머리를 숙여가며 몇 번이나 죄송하다고 말했다. 교장 선생님은 눈물이 쑥 빠지도록 야단을 쳤다. “모두에게 닥친 비상상황이다. 아이를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한다.” 아침 등교 시간에 언제나 웃는 얼굴로 아이와 학부모를 맞이하던 교장이었다. 그런 분이 딱딱한 표정으로 야단을 치는 것도 놀라운 일이었지만, 학교에서 가장 높은 교장이 학교에 끝까지 남아 있는 것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나는 행정실 직원이나 담임 교사가 아이를 데리고 있을 줄 알았다.

‘아젠다’라 불리는 알림장…교사는 공지·부모는 요청 사항 주고 받아
출결·폭력사건 등 교실 수업 제외한 모든 업무는 행정실 통해 해결
교육청 공개 업무 이메일로 직접 요청…개인 연락처는 철저히 비공개
‘선 넘는’ 부모 여기도 있지만 행정 담당자·노조가 방패 역할 교사 보호

이민살이 생활 초기에는 모든 것이 다 생소했다.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 문화도 낯설기는 마찬가지였다. 학교에서 한국과 가장 다르게 보였던 것은 바로 행정실이었다. 행정실 직원들은 교실 수업을 제외한 학교의 모든 일을 도맡아 처리했다. 학부모가 학교로 직접 연락할 수 있는 통로는 행정실 전화번호 하나뿐이었다(시간이 지나면서 학교 업무 e메일이 추가되었다). 누가 되었든 학교 관계자와 접촉하기를 원하면 반드시 행정실을 거쳐야 했다.

아이가 아파서 지각하거나 결석을 하게 되면 행정실로 전화했고, 아이가 조퇴할 일이 생기면 담임 교사가 아니라 학교 행정실에서 부모에게 연락을 해왔다. 학교에서 아이가 아파도, 아이가 말썽을 부려도 담임 교사는 학생을 행정실로 보내 정해진 절차를 밟도록 했다. 학생이 문제를 일으키면 학교는 부모를 불러 상의하거나 상벌위원회를 열어 처벌 수위를 정하게 되는데, 이런 모든 일을 도맡아 처리하는 곳이 학교 행정실이다. 가령 학교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폭력 사건이라도 벌어지면 행정실은 바로 경찰을 부른다. 담임 교사는 교실에서 이루어지는 수업만 하고, 다른 모든 일은 행정실에서 담당한다고 보면 된다. 학교 시스템이 그렇게 작동되다 보니, 우리처럼 부모가 아이를 데려가지 않으면 학교에 남아 아이를 끝까지 돌보아야 하는 사람은 담임 교사가 아니라 학교 행정의 최고 책임자인 교장이다.

캐나다 학부모도 학부모인 만큼 자녀의 성적이나 학교생활에 지대한 관심을 갖게 마련이다. 학부모가 학교에서 아이들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담임 선생님을 만나 대화하고 싶어하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이다.

토론토 초·중·고교에서 학부모가 교사와의 개별 면담을 신청할 수 있는 방법은 세 가지쯤 된다. 첫째는 ‘어젠다’라 불리는 알림장을 이용하는 것. 담임 교사는 학생의 알림장에 숙제뿐 아니라 공지 사항을 적어 학부모에게 전달한다. 부모 또한 거기에 요청 사항을 적어 보낼 수 있다.

두 번째는 담임 교사와의 면담을 학교 행정실을 통해 신청하는 것. 세 번째는 교사의 업무용 e메일 주소로 학부모가 요청 사항을 직접 전하는 것이다. 교사의 e메일은 ‘토론토 지구 교육청(Toronto District School Board)’의 업무용 주소만 공개되어 있다. 교사 개인의 일반 e메일이 공개되는 일은 없다. 개인 e메일이 그러하니, 교사의 휴대전화 번호 또한 당연히 알려주지 않는다(캐나다에는 개인 휴대전화 번호를 웬만해서는 공개하지 않는 문화가 있다. 오랫동안 내 일을 맡아보는 은행 직원이나 변호사, 치과의사 같은 사람들도 사무실 전화번호만 알려줄 뿐이다. 개인 e메일 주소도 마찬가지이다).

교사가 학부모에게 연락할 적에도 업무 시간에 학교 전화를 이용하고, 개인 휴대전화를 사용한다 해도 개인 번호는 철저하게 가린다. 교사와 학부모가 서로 연락을 취하는 방법과 시간이 이렇게 정해져 있으니, 방과 후 학부모나 학생이 교사와 직접 소통할 방법은 없다. 기껏해야 학교 행정실에 전화 메시지를 남기거나 업무용 주소로 e메일을 보내거나, 아이의 알림장에 메모를 적어 보내고 연락이 오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더불어 학교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학생들과 소통하지 말라고 교사들에게 권고한다. 학교 울타리 밖에서 이루어지는 소통이 ‘교육’에 하등 도움될 것이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개별적으로 연락해서 선생님을 만나는 것 외에, 교사와 학부모가 공식적으로 만나는 날이 한 학기에 한 번씩은 정해져 있다. 성적표가 나오고 학교가 홈페이지를 통해 교사와 학부모 면담 날짜를 공지하면, 학부모는 시간을 선택해 담임 교사를 만날 수 있다. 담임 선생님을 만나고 싶어하는 대다수 부모들은 바로 이 시간을 이용한다. 자녀가 학교 생활을 잘하고 있다고 판단하면 굳이 교사를 만나지 않아도 된다.

담임 교사가 없는 고등학교에서는 똑같은 방식으로 과목별 선생님을 만날 수 있다. 역시 학교에서 홈페이지에 날짜를 공지하면, 자녀가 가져온 성적표를 보고 학부모는 담당 과목 선생님과의 면담을 신청할 수 있다. 고교만 하더라도 대학처럼 학과목 수강신청을 하고 학점을 취득하는 시스템이어서, 별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한 자녀의 학교생활과 관련해 따로 만날 선생님이 없다. 학과목 수강 신청과 진학 상담 등은 ‘가디언스’ 교사 등이 전담해 따로 지도한다.

학부모가 학교 혹은 담임 교사와의 소통 방법이 ‘알림장’ ‘행정실 전화’ ‘교사 e메일’로 제한되어 있다 해도, 이곳 또한 사람 사는 세상이라 부적절한 언행이나 요구로 교사들을 괴롭게 하는 부모가 간혹 등장한다. 반대로 학생에게 물건을 집어던지거나 언어폭력을 저지르는 교사가 더러 있다는 소리도 심심찮게 들린다. 학생(자녀)을 사이에 두고 교사와 학부모 사이에 갈등이 빚어지기도 하는데, 이런 일이 벌어져도 교사와 학부모가 ‘당사자’ 혹은 ‘개인’끼리 부딪히는 일은 거의 없다.

이 글을 준비하려고 토론토의 어느 고교 A교사와 인터뷰를 했다. 그는 극소수 학부모의 지나친 행동에 대해 교사들이 일반적으로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본인이 겪은 일을 예로 들며 이야기해주었다. A교사에게 면담을 신청해온 학부모 B는 “실력이 뛰어난 튜터(과외교사)를 우리 아이에게 붙여주고 있는데 왜 아이 성적이 60점밖에 안 나오느냐”하고 항의했다. 문제는 그 부모가 중년의 튜터를 데리고 A교사를 만나러 왔다는 사실이다. 30대 초반 젊은 교사가 어떻게 가르치는지 들어보고 평가를 하겠다는 의사를 그렇게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A교사는 당당하게 대처했다고 했다. “설사 내가 잘못 가르쳤다 해도 튜터가 잘 가르쳤다면 시험 성적이 그렇게 나올 리가 없다. 도대체 학교 바깥에서 어떻게 가르치길래 아이가 수업시간에 제대로 듣지도 않고, 적지도 않는가.” 튜터는 말없이 어깨만 으쓱했고 부모 또한 더 이상 말이 없었다. “이런 식으로 또 찾아오면 다음 미팅 때는 교감 선생님을 배석시키겠다”는 말로 A교사는 마무리했다고 한다. 이후 그 부모가 A교사를 찾아오는 일은 없었다.

학부모는 공식 경로를 통해 면담을 신청하고 방과 후가 아니라면 언제든 교사를 만날 수 있지만 선을 넘어가며 개별적으로 교사에게 무엇을 요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학부모의 요구나 태도가 과하다 싶으면 교사는 교장과 교감 같은 학교 행정 담당자들에게 배석을 요청해 학부모를 함께 만난다. 사안에 따라서는 교사 혼자 감당할 수도 없고, 혼자 감당해서도 안 되는 일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A교사는 “학부모와의 갈등 같은 문제가 불거질 상황이면 교장과 교감 선생님이 나서서 방패 역할을 해준다”고 말했다.

학부모의 요구나 민원 관철 방식이 극단으로 치달을 경우, 교사는 ‘학부모 면담 매뉴얼’에 따라 만남을 진행하고 그 자료를 가지고 ‘온타리오주 교사노조’에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요청한다. 이런 일이 접수되면 교사노조가 전면에 나서서 학부모를 상대한다. 교사노조는 2000년대 초반 북미하키리그(NHL)에서 가장 부자 구단인 ‘토론토 메이플리프스’를 소유했을 정도로 자금력이 풍부하고 그 힘도 막강하다(때로는 이런 힘을 가지고 문제 교사를 감싸고 도는 바람에 학생과 학부모들로부터 원성을 듣기도 한다). 캐나다 온타리오주에서는 교사로 임용되면 교사노조에 자동적으로 가입되고 월급에서 노동조합비가 빠져나간다.

그러나 학부모와의 갈등을 두고 교사노조가 전면에 나서는 일은 극히 드물다. 교사와 상담하기를 원하는 학부모 대부분은 이미 자기 자녀가 가진 문제점을 잘 파악하고 있는 편이어서, 교사와 학교를 ‘원팀’으로 여긴다. 교사와 학부모가 서로 협력자가 된다면 갈등이 생겨날 여지는 별로 없다.

이곳 교사들도 극성스러운 학부모를 만나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했다. 그래도 캐나다 교사는 방과 후 학부모로부터 개별적으로 연락받을 일(길)이 없고, 이른바 ‘카톡(방)’ 같은 것으로 업무 외 시간이 침해받는 일도 없다. 간혹 학부모와 갈등이 생겨난다 해도 행정 담당자들이 참여하는 문제 해결 시스템이 작동한다. 교사들로 하여금 ‘나홀로’ 전면에 나서게 하는 환경이 아닌 것이다.

▶성우제

캐나다사회문화연구소 소장. ‘원(原)시사저널’ 문화부 기자로 일하다 2002년 캐나다 토론토로 이주했다. 17년째 자영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한국의 여러 매체에 기고해왔다. 재외동포문학상을 두 차례(소설 및 산문 부문) 수상했고 <느리게 가는 버스> <딸깍 열어주다> <캐나다에 살아보니 한국이 잘 보이네> 등 단행본 6권을 냈다.

성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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