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낮 신림동 성폭행 사건…전문가들 "묻지마 범죄 아닌 표적 범죄"
"먹잇감 노리듯 범행…성적 열등감과 사회적 불만 가능성도"
(서울=뉴스1) 한병찬 기자 = "성폭행하고 싶어서 범행했다."
대낮에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공원 둘레길에서 일면식도 없는 한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를 받는 최모씨(30)가 경찰 조사에서 던진 말이다. 최씨의 범행동기가 드러난 대목이다.
최근 서울 신림역, 분당 서현역 등 이른바 '묻지마 범죄'가 발생한 데 이어 신림동 성폭행 사건까지 발생하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이번 범행도 묻지마 범죄가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에 대해 "묻지마 범죄가 아닌 성적 욕구 만족을 목적으로 한 표적·계획범죄"라며 "성별과 나이대 등을 고려해 범행을 실행했기 때문에 묻지마 범죄로 판단하면 사건의 주요 논점이 흐려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 전문가 "범행 장소·여성 피해자 물색해 범행"
18일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전문가들은 최씨의 범행을 "범행 장소와 여성 피해자를 물색해 범행을 저질렀단 점에서 묻지마 범죄가 아닌 표적·계획 범죄"라고 입을 모았다.
이윤호 고려사이버대학교 경찰학과 석좌교수는 "묻지마 범죄를 규정하는 중요한 조건은 경제적 이득이나 성적 만족과 같은 '구체적 이득'이 아닌 특정할 수 없는 '이상 동기'"라며 "범행동기는 성적 욕구 충족으로 이상 동기가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이 교수는 "인적이 드문 장소를 고르고 약자인 여성을 물색해 범행을 저지른 점에서 묻지마 범죄의 또 다른 조건인 공공장소와 불특정 다수 대상 등도 충족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번 사건이 발생한 공원은 산 중턱 인적이 드문 곳이었다. 최씨는 범행 장소와 관련해 "그곳을 자주 다녀 폐쇄회로(CC)TV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 정한 것"이라는 취지로 진술하며 범죄를 치밀하게 계획했다는 데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이웅혁 건국대학교 경찰학과 교수도 "이번 범행은 성범죄 유형 중 '급습형'으로 보인다"며 "이런 유형의 성범죄자들은 선호하는 피해자를 물색하고 기다렸다가 범행을 저지르기 때문에 묻지마 범죄와는 다르다"고 설명했다.
최씨는 경찰에 "등산로를 걷다가 피해자를 발견했다"고 진술한 바 있다.
한국공안행정학회가 발간한 '무차별 범죄의 개념과 특징: 불특정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는 묻지마 범죄와 성폭력 범죄를 비교했다.
논문에 따르면 묻지마 범죄의 특징은 ▲감정 표출 ▲비면식 관계 ▲피해자 추상적 선택 ▲추상적 개인 또는 집단이다. 이에 반해 성폭력 범죄의 특징은 ▲성적 이득추구 ▲면식·비면식 관계 ▲피해자 도구적 선택 ▲구체적 개인으로 정리된다.
대검찰청 '범죄 분석'에 따르면 묻지마 범죄는 불특정 피해자에 대해 일방적 의사로 흉기 등 위험한 물건을 사용해 폭행 등 유형력을 행사해 생명, 신체 등을 침해하는 범죄로 규정된다. 다만 금품 갈취나 성적 만족 등 특정한 목적과 이득이 있는 범죄는 제외된다.
◇"피해자 심하게 폭행…성적 열등감과 사회 불만 가능성도"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최씨가 현재 받는 혐의다.
최씨는 전날(17일) 오전 신림동 한 공원 둘레길에서 30대 여성을 폭행하고 성폭행한 혐의(강간상해)를 받는다.
강간상해 혐의는 범행에 앞서 상해를 가한 뒤 성폭행한 경우를 말한다. 상해의 의도가 없었으나 성폭행 과정에서 상해가 발생하는 강간치상 혐의와는 다르다.
최씨는 경찰 조사 과정에서 "너클을 양손에 착용 후 폭행했다"며 "성폭행할 목적으로 지난 4월 인터넷에서 구매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장에선 손가락에 끼우는 금속 재질의 너클 2개가 발견됐다. 피해자는 병원에 이송됐으며 현재 위독한 상태다.
김상균 백석대 경찰학부 교수는 "성폭행범의 범죄 심리는 첫 번째로 성충동을 억제하지 못하는 경우, 두 번째로 성적 열등감과 소외를 범죄로 만족하려는 경우 두 가지로 볼 수 있다"며 "흉기를 준비하고 피해자를 심하게 폭행한 이번 경우 사회 불만의 유형일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성충동 장애가 있는 경우 경찰 기록에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고 성적 열등감이 있는 경우엔 여성 혐오 범죄로도 볼 수 있다"며 "앞으로의 경찰 조사 과정에서 밝혀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경찰에 따르면 최씨는 일정한 직업이 없다. 최씨의 가족은 최씨가 우울증 등으로 병원 진료를 받은 적은 있지만 치료받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윤김지영 창원대 철학과 교수는 "다른 남성에게는 이런 일을 저지를 수 없지만 여성은 저항하거나 반격할 수 없는 신체라는 심리적 우월감이 바탕이 됐을 것이다"며 "피해자를 먹잇감으로 보고 자신을 포식자로 인식하는 여성 대상 성범죄고 여성 혐오적 범죄로 정의할 수 있다"고 밝혔다.
bcha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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