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의료 소아과 '멸종 위기'…코뿔소 복원에서 배워라[기자수첩]
[서울=뉴시스] 백영미 기자 = 멸종 위기에 놓였다가 개체 수가 다시 늘어난 동물종이 있다. 아프리카의 검은 코뿔소다. 한때 아프리카에만 40만 마리가 있었는데 밀렵이 극성을 부리면서 2000년도 들어 2000 마리로 급감했다. 정부는 밀렵꾼에게 벌금을 세게 부과하거나 징역형을 선고하는가 하면 뿔만 미리 잘라버리거나 가짜 코뿔소 뿔을 싼 가격에 시장에 공급해 뿔 가격을 낮춰 밀렵을 막으려 했지만 다 실패했다. 정부의 강력한 규제와 긴급처방, 시장개입 모두 통하지 않았던 것이다.
검은 코뿔소 복원의 해법은 아프리카 주민들의 코뿔소 보호 의식을 높이는 데 있었다. 경제학자들은 사파리를 만들어 발생한 관광 수입을 아프리카 주민들이 골고루 나눠 갖도록 했다. 그러자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밀렵을 저지하는 등 코뿔소 보호에 적극 나서기 시작했다. 검은 코뿔소 개체 수도 2010년 4000 마리로 늘어났다고 한다.
어쩌면 수 차례 실패를 거듭한 끝에 복원에 성공한 검은 코뿔소 사례에서 생명을 살리는 필수의료 중 하나로 소멸 위기에 직면해 있는 소아청소년과(소아과)를 살릴 수 있는 해법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소아과는 나라의 미래인 아이들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해 꼭 필요하지만 정작 소아 환자를 돌볼 의사가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상반기 소아과 모집정원 확보율은 20%로, 2021년(36%), 2022년(22%)에 이어 하락세를 거듭한 것으로 파악됐다. 소아과 레지던트 모집정원이 있는 50개 대학병원 중 76%(38개)는 레지던트를 단 한 명도 확보하지 못했다. 특히 의사의 부재는 목숨이 경각에 달린 소아응급 환자나 장기간 지속적인 치료가 필수인 중증소아 환자에게 치명적이다. 하지만 의사가 아예 없는 지역이 이미 다수이고, 그나마 있는 의사들도 사직이나 은퇴를 준비 중인 경우가 적지 않다.
사태가 이렇게 치달을 때까지 정부는 위기에 빠진 소아과를 살리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을까. 의료 현장에서는 정부가 근본적인 개선책 없이 환자 수용만을 강제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크다. "소아응급·중증환자를 안 받는 것이 아니라 못 받는 것인데, 의사 부족 현상을 해소할 적극적인 대책 마련 없이 정부가 의료기관에 의무와 책임만 지우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정부는 병원의 소아환자 입원 진료 잠정 중단 등 소아 의료체계에 문제가 생기면 인력 지원책이 아닌 병원 관계자를 문책하거나 병원 평가 때 불이익을 주겠다며 압박하곤 했다. 대부분의 소아의료 지원 대책도 이런 연장선상에 있는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는 시각이 많다. "전공의들이 소아과를 지원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대책이 없다"는 것이다. 일은 고되고 보상은 적은데 의료소송 위험이나 보호자 민원도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서 어느 누가 선뜻 지원하겠느냐는 의미다.
의사의 사명감은 임계점을 넘은 지 오래다. 지방의 한 소아과 의사는 지난달 국회 토론회에서 "전공의가 없다보니 1년 365일 온콜(호출) 대기하면서 과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조마조마하다"며 "최선을 다해 치료하고 싶다는 마음이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까 의문"이라고 토로했다.
법을 위반 했다면 벌을 받는 것은 당연한 법리다. 규제기관인 복지부가 법의 엄정함을 누그러뜨리면 원칙은 파행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잘잘못을 가리는 '법'의 영역에 골몰한 나머지 상황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법철학'을 등한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검은 코뿔소 복원 사례에서 봤듯 정부는 전공의들이 환자를 돌보기 위해 자발적으로 소아과를 지원할 수 있는 의료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얼마 전 A 국회의원의 손자가 아팠지만, 당장 진료 받을 수 있는 소아과를 찾기 힘들어 한참을 헤맸다고 한다. A 의원은 이를 계기로 소아과의 위기가 얼마나 심각한지 새삼 깨달았다고 한다. 앞으로 대정부 질문은 물론 대책도 꼼꼼히 챙기겠다고 했다. 지난달 말 국회에서 소아 응급의료체계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입법과 예산 지원에 나서겠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말 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조만간 ‘옛날에 소아과가 있었다더라’는 말을 하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어느 소아과 의사의 우려가 기우(杞憂)에 그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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