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더스게이트3가 한국 게임 업계에 던진 화두

문원빈 기자 2023. 8. 18.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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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연출 등 부가적 재미보다 근본적 재미를 담아낸 다양한 게임 절실

"메타크리틱 97점 받을 만한 게임이네"

라리안 스튜디오 신작 '발더스 게이트3'를 즐기면서 자연스럽게 든 생각이다. 최근 국내 게이머 사이에 발더스 게이트3 열풍이 뜨겁다.

기자도 흠뻑 빠져있다. 오전에 게임을 시작해서 시계를 보면 어느새 저녁이다. 문명 이후 이 정도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즐겼던 게임이 있었을까. 6만 6000원이 전혀 아깝지 않을 만큼, 오히려 더 돈을 내고 싶을 만큼 재밌다.

최근 유명 게임사 관계자들의 발더스 게이트3 평가가 눈길을 끈다. 요약하면 "발더스 게이트3는 이례적인 환경에서 탄생한 비정상 게임이다. 이를 기준으로 게임들을 평가하는 것은 가혹하다"는 의미다. 

기자는 '이례적인 환경'이란 표현에 의구심이 들었다. 라리안 스튜디오는 게임 개발에 진심인 회사다. '디비니티: 오리지널 신' 이전까지 라리안 스튜디오는 무명에 가까운 개발사였다.

라리안 스튜디오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보유 자금에 투자금까지 끌어모아 디비니티: 오리지널 신을 개발했다. 간절한 마음이 빛을 발한 것일까. 디비니티: 오리지널 신은 얼리 액세스부터 찬사를 받았고 걸작으로 거듭났다.

라리안 스튜디오의 기세는 꺾이지 않았다. 재정적 안정화를 이뤄낸 라리안 스튜디오는 곧장 후속작인 '디비니티: 오리지널 신2' 제작에 돌입했다. 이번에는 그동안 쌓인 경험과 노하우가 빛을 발했다. 디비니티: 오리지널 신2 역시 메타크리틱 93점, 유저 평가 8.8점을 받아내며 RPG에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했다.

라리안 게임즈의 다음 도전작은 발더스 게이트3였다. 스포일러는 하지 않겠다. 기사로 스포일러하는 게 용납될 수 없는 수준의 게임이다. 발더스 게이트3 플레이 방식은 디비니티 시리즈와 비슷하다.

수차례 쌓아온 경험이 던전&드래곤 세계관과 융합되면서 역대급 시너지 효과를 이끌어냈다. 그 결과 발더스 게이트3는 2023년 8월 18일 기준 메타크리틱 96점, 유저 평가 9.2점으로 극찬을 받고 있다.

이것이 기존 유명 게임 개발사들이 말하는 이례적인 환경이다. 그들에겐 주가, 사업 구조, 특정 사상 등 수많은 조건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게이머 입장에선 왜 이례적이라고 말하는지 의문이다. 게임사도 곧 하나의 회사다.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건 소비자인 게이머가 고려할 필요가 없는 영역이다.

게임사가 게임 개발에 진심을 쏟아내는 것은 당연하다. 재미있는 게임을 제공하는 것은 그들의 최우선 과제이자 의무다. 이를 못하면 게임사로서의 자격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라리안 스튜디오는 단지 그 의무를 충실하게 수행한 것이다.

발더스 게이트3 평가를 보면서 한국 게임업계의 위기가 더 빠르게 오지 않을까 걱정이 들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종식된 2023년 상반기 글로벌 게임 시장에는 호그와트 레거시, 와룡: 폴른 다이너스티, 바이오하자드RE:4, 젤다의 전설 티어스 오브 더 킹덤, 디아블로4, 파이널판타지16 등 수많은 대작들이 출시됐다. 하반기에도 이름만 들어도 기대감이 물씬 솟아오르는 신작이 줄줄이 등장할 예정이다.

올 상반기 한국 게임 시장은 어땠는가. 늘 봤던 장르와 과금 모델 등 2022년과 다를 바 없는 신작들이 쏟아져 나왔다. 최근 주요 게임 업체 2분기 실적 발표 컨퍼런스 콜에서 "동일한 장르와 게임성으로 개발한 신작들이 대거 출시되면서 매출에 영향을 미쳤다"는 말을 들었다. 냉정하게 말하면 이는 한국 게임업계 개성이 사라졌다는 의미다. 그나마 넥슨 민트로켓 '데이브 더 데이브'가 전 세계 게이머들의 호응을 얻으며 체면은 살렸다.

발더스 게이트3를 즐기면서 "한국 게임업계도 근본적 재미에 대해 성찰해야 할 시기"라고 느꼈다. 발더스 게이트3를 보며 그래픽이 좋다고 말하는 게이머는 없다. 편의성이 뛰어난 게임도 아니다.

한국 게임업계는 신작을 출시할 때마다 그래픽과 편의성을 강조한다. 발더스 게이트3는 그 요소들이 결여됐는데도 역대 최고의 게임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부가적 재미보다 근본적 재미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분량은 논외로 두겠다. 거의 치트키 수준으로 방대하다.

근본적 재미의 중요성은 최근 화제의 게임들에서도 알 수 있다. 대표적으로 폴가이즈, 어몽어스, 온리 업이 있다. 각 게임들의 규칙은 각종 장애물을 극복하고 최후의 1인까지 생존하라, 자신의 정체를 들키지 마라, 여러 발판을 타고 위로 올라가라 등 정말 단순하다. 거창한 규칙과 스케일로 만든 MMORPG가 아니라도 게이머들의 열렬한 호응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6만 6000원만으로 게임의 모든 걸 제공하면 돈을 벌 수 없다"고 반박할 수 있다. 지금까지 6만 6000원에 게임을 제공하라는 말은 단 한 번도 꺼내지 않았다. 수많은 게임을 즐기고 다양한 게임 행사를 취재하면서 알게 된 것이 있다. 게이머들의 지갑은 생각보다 관대하다. 만족할 만한 콘텐츠와 운영을 선보이면 게이머들은 선뜻 게임사에게 지갑을 열어준다. 

한국에서 게임은 수출액 최고 비중을 자랑하는 콘텐츠다. 하지만 돈을 버는 방식은 수출 1위 콘텐츠 위상에 어울리지 않는다. 자랑스러워야 할 콘텐츠에 오히려 불신이 가득하다.

여전히 확률형 아이템에 수백, 수천 만 원을 썼는데도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해 분노하는 게이머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이 굴레에서 탈피하지 않는다면 그토록 염원하던 글로벌 시장 속에서 계속 도태될 것이다.

발더스 게이트3는 한국 게임 산업에 큰 화두를 던졌다. 방향성을 제시한 훌륭한 교보재이기도 하다. 재밌는 게임은 늘 칭찬과 호응 그리고 돈이 뒤따른다. 한참 멀었겠지만 매년 기대한다. 올해는 한국에서도 GOTY 도전작이 나올까. 발더스 게이트3를 교훈 삼아 그 미래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워지길 바란다. 

moon@gameto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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