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컴퓨터 질과 양 모두 밀리는 한국… GPU 가격 급등에 6호기 도입도 난항

이종현 기자 2023. 8. 18.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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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10위권의 슈퍼컴퓨터 구축을 목표로 추진해온 국가 슈퍼컴퓨터 6호기 도입이 난항을 겪고 있다.

이식 KISTI 국가슈퍼컴퓨팅본부장은 "슈퍼컴퓨터 6호기 도입을 위한 공모 사업에 아무도 입찰하지 않아 지난 8일 유찰이 됐다"며 "올해 초에 챗GPT 열풍이 불면서 GPU 수요가 폭증했고 가격 협상력이 약화된 게 원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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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TI, 600PF급 국가 슈퍼컴 6호기 도입 추진
GPU 가격 급등에 사업 공모 유찰돼
기술 선도국과 슈퍼컴퓨터 성능 격차 갈수록 벌어져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이식 국가슈퍼컴퓨팅본부장이 18일 서울 광화문 HJ 비즈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국가슈퍼컴퓨팅본부(국가초고성능컴퓨팅센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연합뉴스

세계 10위권의 슈퍼컴퓨터 구축을 목표로 추진해온 국가 슈퍼컴퓨터 6호기 도입이 난항을 겪고 있다. 챗GPT 열풍 속에 슈퍼컴퓨터에 필요한 그래픽처리장치(GPU) 가격이 급등한 탓이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은 18일 서울 중구 HJ비즈니스센터에서 ‘슈퍼컴퓨터 도입·서비스 35주년’을 기념하는 기자간담회를 개최했다. 명목상 다음주 국가 슈퍼컴퓨터 1호기 도입 35주년을 기념해 열리는 한국슈퍼컴퓨팅컨퍼런스2023(KSC2023)에 대해 소개하는 자리였지만, 언론의 관심사는 슈퍼컴퓨터 6호기가 언제, 어떻게 도입될 지 여부였다.

KISTI는 이달 중에 슈퍼컴퓨터 6호기 도입 계획을 확정하고 내년 말에는 실제 작동에 돌입할 계획이었다. 슈퍼컴퓨터 6호기는 GPU 기반으로 연산 능력이 600페타플롭스(PetaFLOPS·PF)를 목표로 한다. 초당 1000조번의 연산을 하면 1PF라고 표시한다. 올해 5월 기준으로 600PF는 세계 2위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다른 국가나 기관들도 슈퍼컴퓨터 성능을 높이는데 힘을 쏟는 걸 감안해도 실제 6호기가 가동될 내년 말 기준으로도 세계 10위권에 무난히 들어갈 수 있다.

한국의 슈퍼컴퓨터는 미국이나 중국, 독일, 일본, 이탈리아 같은 기술 선도국에 비해 수준이 낮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국가별 슈퍼컴퓨터 역량을 비교한 자료를 보면 한국은 성능으로 보면 전 세계에서 8위, 규모 면에서는 9위를 기록하고 있다. 개별 슈퍼컴퓨터로만 따지면 순위가 더 떨어진다.

올해 5월 기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슈퍼컴퓨터는 미국 오크리지 국립연구소의 프론티어다. 프론티어는 실측성능에서 1194PF를 기록하며 슈퍼컴퓨터 가운데 유일하게 1000PF(1엑사플롭스)를 넘겼다. 2위와 3위는 일본 이화학연구소(RIKEN)와 후지쯔(Fujitsu)가 공동 개발한 ‘후가쿠(Fugaku)’, 핀란드 과학IT센터(CSC)의 ‘루미(LUMI)’가 각각 차지했다.

한국의 슈퍼컴퓨터 중에서는 삼성종합기술원의 ‘SSC-21′이 25.2PF로 20위를 차지했고, 기상청의 ‘Guru’는 18PF로 37위에 그쳤다. KISTI의 국가 슈퍼컴퓨터 5호기 누리온(Nurion)은 13.9PF로 49위를 기록했다. 중국이 미국의 프론티어에 상응하는 수준의 슈퍼컴퓨터를 만들어놓고도 제재를 피하기 위해 공개하지 않는다는 게 업계에서는 공공연하게 이야기가 돌고 있다. 이런 걸 감안하면 한국의 슈퍼컴퓨터는 순위가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픽=정서희

슈퍼컴퓨터는 첨단 산업의 핵심 인프라로 자리잡았다. 첨단 기술의 개발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쓰이고 있고, 재난 상황을 재현할 때에도 쓰인다. 최근에는 인공지능(AI) 산업에서 슈퍼컴퓨터를 이용해 AI를 학습시키는 수요도 늘고 있다. 슈퍼컴퓨터의 성능이 그 나라의 첨단 산업의 수준을 결정지을 수 있는 상황이다.

KISTI가 도입을 준비한 슈퍼컴퓨터 6호기는 이런 상황을 바꿀 수 있는 비장의 카드였다. 하지만 GPU 가격 급등으로 슈퍼컴퓨터 6호기 도입이 장담하기 힘든 상황이 됐다.

이식 KISTI 국가슈퍼컴퓨팅본부장은 “슈퍼컴퓨터 6호기 도입을 위한 공모 사업에 아무도 입찰하지 않아 지난 8일 유찰이 됐다”며 “올해 초에 챗GPT 열풍이 불면서 GPU 수요가 폭증했고 가격 협상력이 약화된 게 원인”이라고 말했다.

KISTI가 계획하는 600PF 수준의 슈퍼컴퓨터를 만들려면 GPU가 수천 개는 필요하다. 엔비디아의 핵심 GPU인 ‘H100′으로 예를 들면 대략 9000개 정도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H100은 작년까지만 해도 3만6000달러 수준이었는데 올해는 가격이 4만6000달러까지 치솟았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슈퍼컴퓨터 6호기 도입을 위해 KISTI가 정부에서 받은 예산은 2929억원인데, 이 예산으로는 급등한 GPU 가격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KISTI가 제시한 예산으로는 사업을 진행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본 업체들이 공모에 참여 자체를 안 한 것이다.

홍태영 KISTI 슈퍼컴퓨팅인프라센터장은 “예산당국의 예비타당성조사를 거쳐서 확정된 예산을 늘리는 건 불가능하고, 성능을 낮출 수도 없기 때문에 핵심 성능 지표는 건드리지 않고 주변 장비 위주로 군살을 빼려고 한다”며 “앞서 5호기를 도입할 때도 비슷한 문제가 있었는데 결국 해결했다”고 말했다.

김재수 KISTI 원장은 “지금이 최악의 도입 환경인 건 맞지만 상황에 맞춰서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며 “2024년 말에는 슈퍼컴퓨터 6호기를 서비스한다는 원래 목표에 맞출 수 있게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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