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섭의 내로남불] "1원 한푼 사익없다" 이제는 사라져야하는 정치권의 언어

임재섭 2023. 8. 18.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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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박근혜 구속 되기 전 이 대표와 같은 말…지지층 발판삼아 위기 돌파하려는 시도 근절돼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백현동 특혜개발 의혹과 관련해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마치고 18일 오전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을 나서며 차에 타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7일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지지자들을 향해 "위임받은 권한은 오직 국민을 위해서만 사용했고, 단 한 푼의 사익도 취한 바가 없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달변가인 이 대표의 웅변식 어조에 서울중앙지검은 그를 연호하는 지지자들과 반대하는 사람들의 고성으로 뒤덮였다. 검찰 소환조사를 받으러 가는 자리도 순식간에 유세장을 방불케 하는 장소로 변했다. 이 대표의 '팬덤정치'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 대표가 발표한 내용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이 대표가 이날 자신의 혐의에 대해 검찰의 주장을 반박한 부분은 정확히 두 문장이었는데, 하나는 '사익을 챙긴 것 없다'는 주장과 다른 하나는 "티끌만큼의 부정이라도 있었으면 십여 년에 걸친 수백 번의 압수수색과 권력의 탄압으로 이미 가루가 돼 사라졌을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이 중 '사익을 챙긴 것 없다'는 말은 이미 정치권에서 많이 쓰인 단어이고 결과 또한 좋게 끝나지 않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이 대표적 사례다.

이 전 대통령은 지난 2018년 다스 자금 횡령 등으로 기소됐을 당시 15분 분량의 최후 진술에서 "국민들께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면서도 "부당하게 돈을 챙기거나 공직을 이용해 사적 이익을 탐한 일이 없다"고 혐의를 부인했다. 이 전 대통령은 "돈과 권력을 부당하게 얻었다는 이미지가 덧씌워졌다"면서 "특히 뇌물 대가로 삼성 이건희 회장을 사면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분노를 넘어 비애를 느낀다"고 주장했다. 당시 진보진영에서는 "그래서 다스는 누구 겁니까"라는 말을 유행시키며 '실소유주'를 보고 법을 넓게 해석해야 한다고 했고 그 결과 이 전 대통령은 실형을 피하지 못했다.

박 전 대통령 역시 일부 대기업으로부터 최서원씨(개명 전 최순실)의 미르·K스포츠재단을 통해 수백억원의 출연금을 받은 혐의로 유죄가 인정됐다. 보수진영에서는 박 전 대통령은 받은 돈이 없다고 했지만, 법원은 검찰이 제시한 '박씨가 경제적 공동체인 최씨와 공모해 역할을 나눠 뇌물을 받아냈다'는 논리를 받아들였다. 박 전 대통령이 최씨로부터 얼마를 받았는지는 재판에서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았다. 정확하게는 '경제적 공동체'라는 논리만 성립된다면 알 필요가 없었다. 이에 보수층 일각에서는 지금도 '당시 돈 한 푼 받지 않은 박 전 대통령이 처벌된 것은 부당하다'는 주장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전후 사정을 가장 잘고 있을 변호사 출신인 이 대표가 이런 논법을 한 번도 아니고 사실상 검찰에 출석할 때마다 사용하고 있다. 민주당은 이 대표가 올해 초 성남FC와 대장동 사건으로 검찰에 소환조사를 받을 때에도 "이 대표가 1원 한 푼 받지 않았다는 사실은 검찰도 잘 알고 있을 것"이라며 "그런데 검찰은 여전히 제3자 뇌물죄, 배임이란 억지 주장을 멈추지 않고 있다"고 했다. 왜 이런 말이 반복되는 것일까.

일차적으로는 일반인들이 법을 잘 모른다는 사실을 십분 활용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백현동 사건에 적용되는 배임죄는 개인이나 본인이 소속한 단체 등에 손해가 발생하고, 그로 인해 발생되는 이익을 제3자가 받아도 성립된다. 특히 그 이익이 사회복지기관 등을 통해 공익적 목적으로 사용됐다고 해도 판단은 변하지 않는다. 자신이 돈을 받지 않았다는 것은 단순 뇌물죄가 성립하는지 따질 때 중요한 설명이지, 자신은 무죄라는 뜻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이다.

제3자 뇌물죄 또한 당사자가 '1원 한 푼을 받았는지' 여부는 상관이 없다. 예를 들어 이 대표가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는 쌍방울 사건도 검찰은 제3자 뇌물죄는 자신이 이익을 얻기 위해 제3자가 경제적 이익을 얻은 사건에 해당한다. 예를 들어 쌍방울 사건의 경우도 검찰은 이 대표가 북한에 방북하는 정치적 이익을 얻기 위해 쌍방울로 하여금 스마트팜 사업비 등 총 800만 달러를 북한에 내도록 했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 어디에도 이 대표가 직접 경제적 이익을 받았다는 주장은 없다. 여기에 '1원 한 푼 받은 것 없다'고 반론하는 것은 오히려 검찰 측 주장을 하나도 반박하지 못하는 것으로 읽히기 쉽다.

그럼에도 이날 이 대표의 지지자들은 이 대표를 응원하기 위해 결집했다. 무더위를 뚫고 결집한 이 대표의 지지자들은 위기 속의 대한민국을 구원할 유일한 메시야를 맞이하는 듯, 이 대표를 진심으로 걱정했다. 이들은 이 대표가 정부를 강하게 비판 민생을 부르짖을 때면 아낌없이 박수를 보냈다. 임재섭기자 yj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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