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300원 인상요? 다른 대안이 없잖아요"…새벽 4시 첫차에는

유민주 기자 2023. 8. 18.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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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객 중 미화원·경비원 많아…'유일한 교통수단' 승객수 변동 없어
"요금보다 정시 도착이 더 중요"…'조조 할인' 위해 서둘러 나온 승객도

(서울=뉴스1) 유민주 기자 = "출퇴근 시간 두번 합해서 1년에 14만원 정도를 더 내는 셈이죠. 물가가 오른 와중에 교통비까지 올라서 부담은 되는데 그렇다고 다른 선택지가 있는 것도 아니니까, 사실 답답해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인거죠."

18일 오전 4시15분쯤 서대문구의 한 정류장에서 탑승한 환경미화원 김모씨(57·여)는 서울시내버스 470번에 몸을 싣었다. 매일 아침 하는 동료들과의 인사에 환하게 웃어보였지만 일주일 전 인상된 버스 요금에 대해 묻자 한숨을 쉬며 말했다.

새벽 첫차는 직원들이 출근하기 전 건물을 청소하는 환경미화원, 밤새워 일한 대리운전 기사, 경비원 등이 단골이다.

첫차 버스를 타는 사람들은 대부분 정해져 있는 탓에 요금이 올랐지만 승객수는 큰 변화가 없었다. 다만 전기·가스 등 다른 물가가 많이 올라 출퇴근 비용이 더 부담스러워졌다고 토로했다.

이날 회차 지점을 돌아 다시 차고지로 가는 길에 조조할인을 위해 이른 시간 정류장에 나온 승객도 있었다.

오전 6시쯤 신분당선 강남역 정거장에서 탑승한 A씨는 "광화문으로 출근하는데 요금 오르고 조금 일찍 버스를 타보려고 시도해 보고 있지만 쉽지 않은 것 같다"며 "이 시간이면 차도 안 막히고 돈도 절약되고, 일찍 가서 간단히 아침도 챙기면 조금 더 건강해질 것 같아서 노력 중이다"고 말했다.

서울 시내버스 기본요금은 12일 오전 3시 첫차부터 300원 올랐다. 간선(파랑색)·지선(녹색)버스는 1200원에서 1500원으로, 순환·차등버스(노랑색)는 1100원에서 1400원으로 인상됐다. 단 오전 6시30분 전 첫번째 대중교통 수단에 대해 기본요금의 20%를 할인하는 '조조할인' 정책은 유지된다.

◇ "아침 시간 2분이 우리에게는 20분 같다"

같은 시간대에 다른 대체 수단이 없는 시민들에게 버스 요금 인상보다 제때 도착하는 게 더 중요하다. 그러다보니 새벽 시간 매분 매초 쫓기고 있었다.

서울 마포구 상암차고지에서 출발하는 470번 버스는 이른 아침 강남으로 출근하는 승객들에게 인기가 많다. 서대문구 연세대 앞을 지나 종로1·2가를 거쳐 남산1호터널을 지나면 바로 한남오거리역으로 향한다. 새벽부터 논현역·강남역·양재꽃시장 등 지역으로 출근하는 승객들에게 안성맞춤인 노선이다.

차고지에 나온지 15분이 지나자 버스 안에 앉을 자리가 없을 만큼 사람이 찼다. 오전 4시40분쯤 종로2가역 정류장으로 뛰어온 정모씨(64·여)는 "연휴가 끝나고 다들 돌아와서 그런가 오늘 왜 이렇게 사람이 많은지 모르겠다"며 "오늘 2분은 빨리 탄 것 같은데 자리가 없는 게 신기하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한 승객은 이날 은평차고지에서 나오는 다른 버스 시간이 늦춰지면서 종로에서 환승하는 사람이 몰렸다고 거들었다.

이들의 출근길 대화에 시간 단위는 모두 '분'이었다. 누구보다 이른 새벽 시간에 나섰지만 다른 대안도 없기에 1분1초가 소중했다. 서대문구 모래내시장 정류장에서 탑승한 이모씨(63)는 "오늘도 차가 1~2분 늦게 출발한 것 같다"며 "출발이 늦으면 뒤로 갈수록 시간이 벌어지기 때문에 우리한테 아침 시간 2분은 20분이나 다름없는 거라고 보면 된다"고 인상을 찌푸렸다.

이씨는 10년 넘게 강남역 인근 빌딩에서 근무한 청소노동자다. 출근 시간은 오전 6시로 정해져 있지만 출근한 직장인들과 부딪히지 않기 위해 일부러 5시까지 간다고 했다. 근무시간으로 인정해주는 시간은 아니지만 그 시간에 시작하지 않으면 할 일을 시간 안에 끝내기 힘들다.

오랜시간이 이 버스와 출근을 함께한 이씨는 이제 버스 애플리케이션(앱)을 확인하고 집을 나온다. 오전 4시 정각에 1분이라도 차 위치가 늦게 뜨면 출근길 마음이 조급해질 수밖에 없다.

오전 4시36분쯤 광화문 인근 빌딩 청소노동자들이 대거 내렸다. 동시에 같은 정류장에서 470번으로 환승하는 승객들이 물밀듯이 또 올라왔다.

youm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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