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너희’를 ‘우리’로 단일화하려는 것들에게[책과 책 사이]
줄리아노 다 엠플리의 <크렘린의 마법사>(책세상)엔 러시아 작가 예브게니 자먀친(1884~1937)의 소설 <우리들>(열린책들, 비꽃)이 나온다. 푸틴의 전체주의 정권을 비판하려 끌어들인 디스토피아 소설이다. 조지 오웰의 <1984>와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 영향을 준 소설이다. 1924년 미국에서 영역본으로 먼저 나왔다. 오웰은 ‘제대로 된’ <우리들> 영역본도 내려 했다.
고전이건 현대 작품이건 디스토피아 소설은 작가의 살던 시기 체제를 비판하고 풍자한다. 즉 이 소설이 겨냥한 것은 스탈린과 소비에트의 전체주의다. 자먀친은 한 번은 혁명에 참여한 볼셰비키로서, 또 한 번은 스탈린 체제를 비판해 볼셰비키에 의해 투옥된 작가다.
배경은 대략 러시아 혁명 1000년 뒤다. 사람들은 200년간 지속된 전쟁 끝에 들어선 ‘단일 제국’ 치하에 산다. 우주선을 만들 정도로 과학이 발달한 곳에서 사람들은 번호로 불린다. 제국은 사람들에게 ‘수학적으로 오류가 없는 행복’을 강제한다. 사람들의 혈액 성호르몬 성분을 분석한 뒤 섹스 일정표를 내준다. 사람들은 기계처럼 살아야 한다.
독재자 ‘은혜로운 분’이 지상의 신으로 군림한다. 연례행사인 선거일엔 ‘은혜로운 분’이 늘 만장일치로 선출된다. “고대인들은 도둑놈처럼 몰래, 비밀리에 선거를 치렀다고 전해진다.”
소설은 기계와 인공지능이 극단적으로 발달한 ‘기술 낙원’에 대한 경고로 읽을 수도 있다. 전체주의 비판이 돋보인다. 전체주의식으로, 전체주의라 규정한 것들을 비난하는 윤석열 정권의 공격이나 이 정권의 전체주의를 지적하고 진보를 내세우면서도 진영 문제에서 전체주의적 면모를 보이는 야권의 세력이나 팬덤에 부응하는 책은 아니다.
‘우리’를 강조하며 ‘너희들’을 배제·배척하거나 ‘우리’로 묶으려는 모든 세력, 체제, 이념을 비판한다. 자먀친은 소설에서 열정과 창의성, 상상력을 지닌 이가 반항하면 뇌 부위를 제거하는 수술을 당하거나 ‘처형 기계’에 목숨을 잃는 설정으로 전체주의를 풍자한다.
‘자유롭고 독창적인 개인’은 문학의 존재 이유와도 이어진다. 자먀친은 1921년 ‘나는 두렵다’라는 제목의 에세이에 이렇게 썼다. “진정한 문학은 부지런하고 신뢰할 수 있는 관리가 아니라 광인, 은둔자, 이단자, 몽상가, 반란자, 회의론자가 창작하는 곳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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