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감 고조되는 중국 경제, 헝다 파산보호 신청… 반시진핑 시위 우려 반발 차단
현실 반영 못하는 주택 통계… 상하이 15%, 항저우 25% 하락에도 통계는 2.4% 하락
디폴트 위기 중룽국제신탁 앞 시위대… 공안 찾아와 중단 요청
중국 부동산업계가 채무불이행(디폴트) 위기에 빠진 상황에서 부동산 개발업체 헝다(恒大·에버그란데)가 17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 파산법원에 파산보호 신청을 했다. 대형 부동산 개발업체 비구이위안(碧桂園·컨트리가든)의 디폴트 위기가 금융권으로 확산하고 있는 가운데 부동산업계 위기의 ‘진앙’이었던 헝다의 파산 보호 신청 사실이 알려지면서 중국 경제에 대한 경고음이 더 커지고 있다. 하지만 당국은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어 현실 파악조차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헝다 측은 청원서에서 파산보호법 15조(챕터 15)에 따라 홍콩과 케이맨 제도,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에서 진행 중인 구조조정 협상을 인정해 달라고 요청했다. ‘챕터 15’는 외국계 기업이 다른 나라에서 구조조정을 하는 동안 미국 내 자산을 보호하기 위해 진행하는, 국제적인 지급 불능상태를 다루는 파산 절차다.
지난해 3월 이후 홍콩 증시에서 거래가 정지된 헝다 측은 채권자들이 이번 달 중으로 구조조정 협상과 관련해 승인 여부를 놓고 투표할 예정이며, 다음 달 첫주에 홍콩과 버진아일랜드 법원의 승인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법원의 헝다에 대한 심리는 다음 달 20일 열릴 예정이다.
중국 증권 당국은 헝다그룹이 주식시장에서 정보 공개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는 혐의를 적용해 조사에 착수했다. 중국신문망에 따르면 헝다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헝다부동산은 16일 오후 늦게 중국 증권감독관리위원회의 조사를 받게 됐다는 사실을 상하이·선전거래소에 공고했다.
헝다부동산은 “회사에 정보 공개 위법 혐의가 있어 중국 증권법과 행정처벌법 등에 따라 증권감독관리위원회가 조사를 시작했다”며 “향후 당국의 조사에 적극 협조하고 관련 요구를 엄격히 준수해 정보 공개 의무를 이행하겠다”고 밝혔다.
헝다그룹은 2021년 12월 227억 달러(약 30조4000억원) 규모의 역외 채권을 갚지 못해 공식 디폴트를 낸 이후 경영난에 빠진 상태로, 이후 다른 부동산 기업들의 디폴트가 잇따르면서 중국 부동산 업계 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다. 지난달 17일 헝다가 공개한 실적 자료에 따르면 헝다그룹은 2021∼2022년 2년 간 8120억3000만 위안(약 149조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2022년 말 기준 부채는 2조4000억위안(약 440조원), 자산총액은 1조8000억위안(약 330조원)으로 채무 초과 상태였다.
디폴트 위기가 커진 비구이위안은 처음으로 만기 연장을 모색하고 있다. 비구이위안은 지난 7일 액면가 10억 달러(약 1조3300억원) 회사채 2종의 이자2250만 달러(약 300억원)를 내지 못한 상태로, 30일간의 유예기간에도 채무 의무를 다하지 못하면 디폴트에 빠지게 된다.
블룸버그 인텔리전스의 애널리스트인 크리스트 헝은 비구이위안의 디폴트는 2021년 말 도산 위기에 처했던 헝다의 붕괴보다 중국 주택시장에 더큰 영향을 줄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국의 공식 통계상으로 신규 주택 가격은 2021년 8월 최고치에서 단지 2.4% 하락했고, 기존 주택은 6% 떨어졌다. 통계대로면 현재 주택시장이 더딘 경제 성장과 개발업체들의 디폴트에도 큰 충격을 받지 않는 모습이다.
그러나 부동산 중개인과 민간 데이터 자료를 보면 사정은 끔찍하다. 이들이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2급 및 3급 도시의 절반 이상뿐만 아니라 상하이 및 선전과 같은 주요 대도시에서 기존 주택 가격이 최소 15% 내렸다. 항저우에 있는 알리바바그룹 본사 근처의 기존 주택은 2021년 말 최고치에서 약 25% 떨어졌다는 게 현지 부동산 중개업자의 전언이다.
대부분 나라의 부동산 가격 데이터가 전체 시장 거래를 기반으로 하지만 중국은 선별된 표본을 이용하는 만큼 가격 산출에서 현실을 반영 못하는 문제가 있다.
결국 부양책 마련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중국 당국은 통계에 의존해 공식적인 주택 가격 지수가 침체 상황을 과소평가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중국 대표적 부동산신탁회사인 중룽(中融)국제신탁의 베이징 소재 건물 앞에서 지난 15일 20여명의 투자자들이 시위를 벌인 뒤 공안이 이들에게 방문 또는 전화 통화로 “시위하지 말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쑤성에 거주하는 한 시위 참여 투자자의 경우 집에 공안이 찾아와 시위에 참여하지 말라고 요청했다. 그러면서 이 공안은 중룽국제신탁에 대한 투자 세부 사항을 기록해간 뒤 당국이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블룸버그는 공안이 회사 측으로부터 해당 투자자들의 명단을 넘겨받았으며, 중룽국제신탁의 주요 주주인 중즈(中植)그룹의 고객 명단도 확보해 수십 명의 투자자들에게 시위를 자제하고 인내심을 가지라고 촉구했다고 전했다.
중룽국제신탁은 대주주인 자산관리기업 중즈그룹이 유동성 위기를 맞아 투자자들에게 지난 8일 만기가 된 여러 상품에 대해 현금 지급을 하지 못했고 지난 달 하순 이후 10개 이상의 상품에 대한 지급도 이미 연기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1995년 설립된 중즈그룹이 관리하는 자산은 1조 위안(약 182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돼 중즈그룹 위기 상황을 방치하면 중국에 금융위기가 현실화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베이징=이귀전 특파원 frei5922@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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