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작가 신양란의 좌충우돌 해외여행 1] 볼로냐에서 무임승차 누명을 쓰다
[여행작가 신양란] 베네치아역을 출발한 기차가 볼로냐역에 도착한 것은 정오를 막 지난 때였다. 12월 25일, 크리스마스였다.
이날 정오 무렵에 도착한 볼로냐역. 우리는 역 앞 광장에서 출발하는 시내버스를 타고 예약한 호텔로 가려 했다.
크리스마스는 기독교 신자에게 더없이 흥겹고 성스러운 축일일 테지만, 낯선 도시에 막 도착한 여행자에게는 좋은 날이 못 되었다. 버스 승차권을 살 수 있는 가게가 모두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택시를 타자니 가난한 여행자의 얇은 지갑이 질겁을 하는 통에 버스를 타긴 타야겠는데, 기차역 주변 가게가 모두 문을 닫았으니 참으로 낭패였다.
그러나 사람이 작정을 하면 무슨 일이든 못하겠는가. 역 주변을 샅샅이 뒤진 끝에 드디어 원데이 티켓(24시간 동안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는 승차권)을 구입할 수 있었다. 오, 인간 승리!
예약해 둔 호텔로 가는 버스를 찾아 탑승한 다음, 남편은 승차권 펀칭부터 했다. 유럽 대중교통 수단은 대부분 승차시 표 검사를 따로 하지 않는 대신 승객 스스로 펀칭(기계에 승차권을 넣어 탑승 시각이 기록되게 하는 일)을 하게 하는 시스템이다. 만약 펀칭을 하지 않았다면 승차권을 소지하고 있더라도 무임승차로 간주된다. 펀칭하지 않은 승차권은 미사용 상태이므로, 다음에 다시 쓸 수 있으니 말이다.
어쨌든 남편이 두 장의 원데이 패스를 펀칭 기계에 넣었다가 회수하는 것을 나는 똑똑히 보았고, 어쩌면 버스에 타고 있던 사람들 중 몇 명도 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기차역에서 버스가 출발할 때 든 감정은, ‘드디어 볼로냐에 무사히 도착했어. 볼로냐에서는 또 어떤 멋진 경험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설렘이었다. ‘오늘은 피곤하니까 호텔에서 푹 쉬고, 내일은 볼로냐 시내를 구석구석 헤집고 다녀야지.’ 하는 생각도 했다.
기차역에서 두어 정거장이나 갔을까, 검표원 둘이 버스에 올라와 승객들의 표를 검사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신기한 구경하듯 바라볼 때만 해도 볼로냐에 대한 기대감으로 흥겨운 상태였는데, 곧 청천벽력같은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우리 승차권이 펀칭이 안 되었다며, 벌금을 내라는 것이었다. 두 장 다 미사용 상태였다.
이탈리아어는 고사하고 영어도 안 되는 우리 부부는 “무슨 소리냐? 아까 차에 올라서 분명히 두 장 다 펀칭을 했다. 펀칭이 안 되었다면 그것은 기계의 문제이지, 우리 잘못은 아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할 수가 없었다. 당황한 나머지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한국말에 손짓발짓을 뒤섞어 분명히 펀칭을 했노라고 주장할 뿐이었다.
하지만 냉정하기 그지없는 이탈리아의 검표원들은 우리의 주장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빨리 벌금을 내라고 으르딱딱댈 뿐이었다. 남편이 펀칭하는 걸 본 사람이 한두 명은 있을 것도 같았지만, 누구도 그 상황에서 우리 편을 들어주지는 않았다.
나는 억울해서 죽어도 못 낸다고 버티는데, 심약한 남편이 지갑을 열었다. 우리가 예약한 호텔이 가까워오는데, 거길 지나치면 더 곤란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이탈리아의 무임승차 벌금은 1회 승차 요금의 50배이다. 볼로냐 시내버스의 1회 요금이 1.2유로이니까, 50배면 60유로. 두 장 다 펀칭이 안 되었으니 120유로를 벌금으로 낸 것이다. 우리 돈으로 약 17만 원이었으니 아까워서 피눈물이 나는 것 같았다.
기차역 주변을 다 뒤져서 기어이 원데이 패스를 샀는데, 버스에 타자마자 원칙대로 펀칭부터 했는데, 17만 원을 벌금으로 뜯기는 게 말이 되는가 말이다. 기대감 충만했던 볼로냐가 오만 정이 다 떨어지는 도시로 전락하는 순간이었다.
그 뒤로 볼로냐에서 버스든 기차든 탈 때마다 펀칭이 안 될까 봐 신경을 곤두세우고 살펴보니, 문제 있는 기계가 종종 있었다. 볼로냐의 펀칭 기계는 티켓의 일부를 기계 안으로 넣어 탑승 시각이 기록되도록 하는 일반적인 방식(동영상)과는 달리, 티켓 전체가 기계 안으로 들어갔다가 튀어나오는 방식이었다.
볼로냐를 난생 처음 방문했던 우리 부부는 티켓이 기계 안으로 들어갔다가 튀어나왔으니 당연히 펀칭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기계 문제(고장이라기보다는 일시적인 시스템 오류)로 기록이 안 된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런 경우를 볼로냐에 있는 동안 서너 번 더 겪었는데, 그럴 때는 다른 기계를 이용해 펀칭을 하여 벌금 폭탄을 또 맞지는 않았다.
어쩌면 우리 부부와 같은 일을 겪은 여행자가 더 있을 것 같고, 검표원도 분명히 펀칭을 했노라는 우리의 주장이 옳다는 걸 알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그들은 가차없이 우리에게서 120유로의 '삥'을 뜯었다. 다시금 생각해도 열불이 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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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양란, 여행작가. 시조시인. 하고 싶은 일, 즐겁고 행복한 일만 하면서 살고 있다. 저서로 <꽃샘바람 부는 지옥><가고 싶다, 바르셀로나><이야기 따라 로마 여행>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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