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집중] [기억과 기록] "나 보러 올 때 웃어줘" 딸의 생전 문구, 묘비 여백에 새겨
- 마흔에 본 늦둥이, 귀하고 예쁜 딸이었다
- 미술학원 한 번 안 다녔는데.. 의류학과 진학 준비 다 해놔
- 휴학 중 연예인 스타일리스트 활동.. 힘든 일정에도 빨리 적응
- 환갑 맞아 저녁 먹은 게 마지막 식사.. 야간근무만 아니었다면..
- 참사 현장 관리와 정비, 공공기관 감당해야 할 공적 역할
- 함께할 시간 충분하다고 생각해 표현도 못 해.. 보고 싶다
-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함으로서 참사 진실 기억해야
■ 방송 : MBC 라디오 표준FM 95.9MHz <김종배의 시선집중>(07:05~08:30)
■ 진행 : 김종배 시사평론가
■ 대담 : 10.29 참사 희생자 故 안지호 님 아버지
☏ 진행자 > ‘기억과 기록’, 오늘 만나볼 분은 희생자 故 안지호 씨의 아버님입니다. 아버님 나와 계시죠?
☏ 아버지 > 안녕하세요.
☏ 진행자 > 따님이 늦둥이였다면서요.
☏ 아버지 > 예, 맞습니다. 제가 마흔에 본 딸이고요. 위로 오빠가 있는데 이제 6살 터울이고 얼굴도 예쁘고 공부도 잘했고 가족들은 물론 친척들에게도 엄청 귀여움을 받고 자랐죠.
☏ 진행자 > 늦둥이면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정도로 정말 그렇게 이쁘다고 하던데, 늦둥이.
☏ 아버지 > 예, 그렇죠. 그리고 성격도 좋아서 친구들한테도 인기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 진행자 > 아버님한테는 이 따님이 어떤 존재였어요? 그러면.
☏ 아버지 > 너무 귀하고 예쁘고 아주 그런 딸이었죠.
☏ 진행자 > 묘비명이 ‘나 보러 올 땐 웃어줘’라고 하던데 이게 어떤 의미예요?
☏ 아버지 > 같이 이태원에 갔던 친구와 절친이었는데 이 친구는 정신을 잃었다가 외국인들에게 심폐소생술을 받아 살았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제일 먼저 지호를 찾았는데 못 찾고 혼자 살아있어서 많이 힘들어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병원에서 퇴원 후 지호 엄마에게 친구가 알려줬는데 예전에 지호가 생일선물로 준 친구끼리 문답을 쓰는 책이 있었나 봐요. 그중 한 페이지에 좌우명이나 묘비명 이런 거 쓰는 란이 있었는데 거기에 지호가 ‘나 보러 올 땐 웃어줘’ 이렇게 썼습니다.
☏ 진행자 > 그때 묘비명을 이렇게 그럼 따님이 써놓았던 거예요?
☏ 아버지 > 본인이 써놨던 걸 나중에 그걸 알고 묘비 여백에 새겨 넣었습니다.
☏ 진행자 > 그랬구나.
☏ 아버지 > 그래서 묘비명은 본인이 먼저 가더라도 남은 가족들과 친구들은 잘 살고 있으라는 메시지인 것 같습니다.
☏ 진행자 > 따님은 자주 찾으세요? 아버님.
☏ 아버지 > 저희가 지호를 저희 집에서 차로 가까운 거리 한 10분에서 15분 거리에 안치를 해놔서 틈나는 대로 가보고 있습니다.
☏ 진행자 > 친구들도 꾸준히 찾아간다면서요?
☏ 아버지 > 예, 예. 친구들도 자주 찾아오고 저희가 묘 옆에 정리함을 갖다 놨어요. 그럼 친구들이 와서 선물도 사 오고 올 때마다 노트에다가 친구들이 편지도 적어놓고 가고 그렇게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 진행자 > 나중에 수거해서 보관하고 계시고요.
☏ 아버지 > 수거해서 보관은 안 하고 혹시 비가 오거나 눈이 올 때를 하기 위해서 뚜껑 있는 정리함에 모아놓고 놔두고 있죠. 그러면 친구들이 시간이 지나서 차면 정리하는 걸 가져가고 이렇게 하는 것 같습니다.
☏ 진행자 > 친구들이 와서 어떤 메시지를 남겼는지 이런 것도 되게 궁금할 것 같은데 그렇군요. 평소 패션에 그렇게 관심이 많았다면서요?
☏ 아버지 > 네, 네. 중학교 때부터 미술을 좋아했고 고등학교 때는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패션 쪽으로 정하고 교내 활동 중에도 관련 학과를 갈 수 있는 방법을 찾고 활동하고 있었나 봐요. 미술학원 한번 안 다니고 의류학과를 갔으니까요.
☏ 진행자 > 과도 그런 쪽으로 갔군요. 그러면.
☏ 아버지 > 의류학과로 진학을 했습니다. 그래서 원서 쓰려 할 때 준비되어 있는 딸의 학교생활을 보고 다시 한 번 놀랐죠.
☏ 진행자 > 시종일관 패션 쪽이군요. 그러면 따님 같은 경우.
☏ 아버지 > 패션이나 드라마나 영화 노래 이쪽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 진행자 > 휴학을 했었고, 휴학 중에 연예인 스타일리스트도 한 적이 있다면서요?
☏ 아버지 > 예, 예. 코로나로 학교를 못 가고 집에서 온라인 수업을 계속 했는데 계속하고 싶지 않아서 2학년을 마치고 휴학을 했어요. 그리고 코로나 시기를 자신의 인생의 효율적인 시간으로 많이 쓰고 싶어 했나 봐요. 그래서 패션을 전공하니까 조금 더 패션에 가까이 할 수 있는 데를 찾았고 그 일이 본인이 관심 있는 스타일리스트였었나 봐요. 그래서 저희들이 저하고 지호 엄마가 생각하기에 많은 사람들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분야라 저희는 딸을 험한 일터에 미리 내보내고 싶지 않아서 좀 망설였는데 본인이 강력하게 원해서 허락을 했죠. 그리고 처음에는 한 달도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새벽에 나가서 한밤중에 들어오는 힘든 스케줄도 소화도 잘하고 일에 빨리 적응하면서 인정을 많이 받았나 봐요.
☏ 진행자 > 그 연예인이 배우 문소리씨라면서요.
☏ 아버지 > 문소리 배우님만 한 건 아니고 다른 분들도 같이 스타일리스트를 스케줄에 맞게 했는데 그 중에 문소리 배우님이 창원에서 미치지 않고서야 라는 드라마를 촬영하고 계셨나 봐요. 그때요. 그래서 실장님이 지호한테 부탁도 하고 지호도 하고 싶어 해서 저희는 멀리 오랫동안 다니는 것이 안 내켰지만 허락해서 몇 개월 동안 창원에서 문 배우님과 다른 스태프들과 같이 생활하면서 일한 것 같습니다.
☏ 진행자 > 참사가 일어난 지 한 달 뒤에 열렸던 청룡영화제 시상식 이때 문소리 씨가 따님을 추모하는 메시지를 남겼다고 하던데, 들으셨을 때 기분이 어떠셨어요?
☏ 아버지 > 그래도 고맙게 저희 지호를 사랑한다고 말씀해주시고 그런 TV에 나왔을 때 그런 말씀을 해주셔서 많이 고맙게 생각을 했죠.
☏ 진행자 > 따님이 변을 당한 시점이 아버님 환갑 직전이었다고 들었는데 맞아요?
☏ 아버지 > 예, 예. 그날 저희 아들이 대전에서 근무하는데 주말마다 집에 와요. 그래서 그날 오후 3~4시쯤 애들이 아빠 환갑 선물 사준다고 해서 집 근처에 아울렛에서 쇼핑을 했습니다. 근데 그날 제가 야간근무가 있어서 쇼핑을 조금 서둘러서 했던 것 같아요. 제가.
☏ 진행자 > 따님이 환갑 선물로 뭐 사주셨었어요?
☏ 아버지 > 외투하고 트레킹화를 골라줬죠. 같이. 그래서 서둘렀는데 지호가 그날 그렇게 얘기했어요. 아빠 왜 이렇게 급하게 서두르냐고 했던 것 같고, 외식을 할까하다 시간이 부족해 못하게 돼서 아들은 친구랑 약속을 만들어서 가고. 저와 지호 엄마, 지호 셋이서 집에 와서 저녁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저녁식사 후에 지호가 예쁘게 차려입고 지호방에서 나오길래 어디 가냐고 했더니 핼러윈 축제에 친구랑 간다고 해서 제가 현관까지 쫓아나가서 사람 많은데 가니까 조심해서 놀다 오라고 한 게 마지막 인사였습니다.
☏ 진행자 > 바로 그날이었던 거예요? 그러면.
☏ 아버지 > 그렇죠. 그날. 그날 제가 야간근무가 없었더라면 가족끼리 같이 식사라도 하면 시간이 더 지났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있고.
☏ 진행자 > 그럼 그게 따님의 마지막 선물이었네요. 결국은.
☏ 아버지 > 그렇죠.
☏ 진행자 > 그러면 사고 소식은 친구를 통해서 들으셨던 거예요?
☏ 아버지 > 소식은 아들이 저녁 약속 중에 젊은 애들이 인스타를 하니까 아마 인스타에서 사고를 같이 당한 친구 언니가, 제가 전해 듣기로는 언니가 인스타에 올린 내용을 보고 아마 아들이 미리 알았나봐요. 그래서 아들이 친구랑 있다가 아들은 먼저 이태원에 가서 지호를 찾아다니고 지호 엄마 말로는 1시 반쯤에 자기가 찾다가 사태가 심각하니까 엄마한테 전화를 해서 이태원에서 참사가 났는데 사태가 심각하다 엄마한테 얘기하고 지호 엄마는 저한테 새벽 3시쯤, 저는 근무하다 잠깐 눈을 붙이고 있었는데 3시쯤 연락을 받고 정신없이 집에 와서 지호 엄마를 태우고 원효로 다목적 체육관으로 갔죠. 그랬더니 아들이 주저앉아 있더라고요.
☏ 진행자 > 알겠습니다. 10.29 참사가 발생했던 이태원 골목길 있잖아요. 유족분들이 지난주부터 이 골목길을 기억과 안전의 길이라는 이름의 정식 추모 공간으로 만들어 달라 요구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맞습니까? 아버님.
☏ 아버지 > 예.
☏ 진행자 > 답변은 들으셨어요?
☏ 아버지 > 답변을 못 들었고요. 저희가 유가족협의회나 유가족들이 생각하는 건 참사 현장을 정비하고 관리하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 유가족과 시민의 참여를 보장 지원하는 건 공공기관이 마땅히 감당해야 할 공적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곧 다가오는 참사 1주기 전에 우리는 참사 현장 골목을 기억과 안전의 길로 선언하고 이를 위해 적극적인 용산구청의 자세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죠.
☏ 진행자 > 알겠습니다. 이 방송을 통해서 따님한테 꼭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뭘까요. 아버님.
☏ 아버지 > 지호야. 아빠는 너하고 함께할 충분한 시간이 있다고 생각해서 너를 무척 자랑스러워하면서도 너에게 표현도 못하고 사랑한다는 말도 자주 못 해준 것 같아 많이 미안하다. 그곳에서 친구들과 편안하게 잘 지내고 있어. 아빠가 너 만나게 되면 엄마하고 오빠하고 잘 잘 지낸 재미난 얘기 해줄게. 사랑한다. 우리 딸. 보고 싶다.
☏ 진행자 > 알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짧게 우리 사회가 이 참사를 오래오래 기억을 해야 되는 이유가 뭘까요? 아버님.
☏ 아버지 > 10.29 참사 이후에 300일이 다 돼 가는데 아직도 공직자 누구도 제대로 사과한 사람도 없고 누구 하나 책임지고 사퇴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래서 특별법 제정을 통해 진상규명을 철저히 하여 참사 원인, 대비 책임, 구조 책임 등을 철저히 밝혀 책임자 처벌을 함으로써 이번 참사에 대한 정확한 진실을 우리 사회가 기억하여 두 번 다시 이런 참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 진행자 > 알겠습니다. 오늘 말씀 여기까지 들어야 될 것 같네요. 아버님 외투는 잘 보관하고 계시죠?
☏ 아버지 > 예.
☏ 진행자 > 좀 이따 외투 입고 또 따님을 찾으셔야 될 것 같네요.
☏ 아버지 > 예, 맞습니다.
☏ 진행자 > 알겠습니다.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아버님.
☏ 아버지 > 고맙습니다.
☏ 진행자 > 희생자 故 안지호 씨의 아버님 만나봤습니다.
[내용 인용 시 MBC <김종배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 내용임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Copyright © MBC&iMBC 무단 전재, 재배포 및 이용(AI학습 포함)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