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관치 논란에 ‘그림자 규제’ 칼 댄다… 실효성은 ‘글쎄’
금융사, 옴부즈맨에 고충민원 권리 안내
행정지도 연장 시 사전 심의 강화
금융권 “유의미한 변화 없을 것” 우려
금융 당국이 일명 ‘그림자 규제(보이지 않는 규제)’로 불리는 행정지도에 메스를 댄다. 행정지도는 금융 당국이 금융사에 자발적으로 일정한 행위를 하거나 하지 않을 것을 요구하는 지침이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행정지도를 통해 금융사의 경영활동에 과도하게 개입한다는 ‘관치 금융’ 논란은 끊이지 않자 행정지도의 합리성을 높이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금융위원회는 행정지도를 연장할 때 연장 필요성에 대한 사전 심의를 강화하고 금융사에 행정지도 관련 민원 제기 권리를 안내하는 등 행정지도 운영 규정을 개선할 예정이다. 하지만 금융권에서는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행정지도의 틀만 달라질 뿐 여전히 금융사에 당국의 입김이 작용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18일 금융 당국에 따르면 금융위는 행정지도 운영상의 미흡한 점을 개선하기 위해 금융규제 운영규정 일부개정훈령안의 규정을 변경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금융위는 금융행정지도의 정의부터 명확하게 내릴 예정이다. 행정절차법의 정의에 따라 기존에 규정된 ‘요청’ 행위의 범위를 ‘지도, 권고, 조언 등’으로 명확하게 규정한다. 또, 금융행정지도 시 해당 지도와 관련해 금융사 등이 금융위 옴부즈맨에 고충민원을 제기할 수 있다는 안내를 하도록 할 방침이다.
또한, 금융위는 행정지도 유효기간을 연장하려는 경우 유효기간에 대한 금융행정지도 심의위원회의 심의 시 유효기간 연장의 필요성과 해당 행정지도의 효과에 대한 검토를 포함하도록 할 예정이다. 아울러 금융위·금감원 금융행정지도 심의위원회 민간위원 비중을 기존의 각각 3명에서 5명으로 확대를 추진한다.
아울러 금융위는 금융행정지도 폐지 시 사유도 함께 공개해 금융사와 관계기관 등이 자율규제 정비에 참고할 수 있도록 한다. 금융행정지도 등에 대한 해당연도 실태평가 보고 시점을 이듬해 3월 31일로 조정해 실태평가 시점을 합리화하는 내용도 포함한다.
금융위 관계자는 “행정지도 연장 시 연장 필요성에 대해 심의토록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심의위원회의 민간위원을 확대하는 등 금융 당국의 사전적인 심의절차를 강화하고 실태평가 시점을 합리화하는 등 행정지도 운영상의 미흡한 점을 개선할 것”이라며 “행정지도의 합리성과 투명성을 높이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융 당국의 이런 움직임은 행정지도에 대한 관치 논란 때문으로 보인다. 금융위와 금감원은 금융사의 경영 건전성을 확보하고 금융 소비자를 보호하는 등 금융행정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금융사에 행정지도를 내리고 있다. 행정지도는 금융사의 자발적인 협력에 기초한다. 금융 당국의 입김이 센 금융산업 속에서 강제성이 없다고 해서 금융사가 당국의 행정지도를 따르지 않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금융사에 있어 행정지도는 법적 근거가 없더라도 지켜야 할 또 다른 규제인 셈이다. 법적 근거 없이도 금융사의 자율적인 협조를 끌어낼 수 있는 행정지도는 가계부채 완화 등의 행정목적을 달성하는 데 있어 금융 당국의 유용한 수단이 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행정지도의 강제성은 없다고 하지만, 인가 산업인 금융산업 내에서 금융 당국의 행정지도를 따르지 않을 금융사가 어디 있겠느냐”라며 “행정지도가 관치의 수단 중 하나가 돼버렸다”라고 했다.
그러다 보니 금융 당국의 행정지도도 증가하고 있다. 금감원에서는 올해 상반기까지 13건의 행정지도를 새로 내리거나 연장했다. 금융회사의 채권 매각 프로세스를 규율함으로써 불법·불공정한 채권추심행위를 사전에 예방하기 위한 지도, 퇴직연금시장의 공정 경쟁을 유도하기 위한 퇴직연금 원리금보장상품 제공·운용·금리공시 관련 지도 등이 대표적이다. 올해 하반기 들어서도 새로 시행되거나 연장이 예고된 행정지도가 3건이 더 있다. 앞으로 가계부채 증가세가 지속되거나 금융 불안 요인이 발생한다면 다른 행정지도가 생길 수 있다. 지난해 20건의 행정지도 건수를 넘어설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당국의 개선 노력에도 금융권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하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행정지도의 요청 행위 범위가 명확해진다고 해서 행정지도의 본질이 변하는 것이 아닌 만큼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라며 “금융위 옴부즈맨에 민원을 넣어 금융사의 의견이 정말 반영된다면 건강한 금융 생태계이겠지만, 과연 유의미한 결과가 나올지는 모르겠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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