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날 몰라, 낯선 곳이었기에 발견할 수 있었던 내 모습 [차트 밖 K문화]

김태언 기자 2023. 8. 18. 10: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음원 TOP 100 차트인, TV 화제성 순위…. 매일 같이 쏟아지는 기사 제목입니다. 시선에서 자유로울 것 같은 예술계도 성공의 기준은 꽤 명확한 편입니다. 그럼 당장 순위권에 없는 이들은 어떨까요? ‘차트 밖 K문화’는 알려졌지만 알려지지 않은 이들의 이야기를 들려드리는 연재물입니다. 유치할지라도 대놓고 진지하게, 이 시대 예술가들의 철학을 소개합니다.
싱어송라이터 우효는 ‘인디신’에 대해 설명하면서 “처음 데뷔했을 때도, 지금도 그저 제가 속할 수 있는 시장이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고 말했다.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카메라 앞에 선 딸이 멋쩍은 듯 미소를 지었다. 카메라 뒤편에 앉은 아버지는 양손을 흔들며 활짝 웃어 보였다. 쭈뼛거리던 딸은 아버지와 시선을 교환하곤 고개를 주억거렸다. 사진 촬영에 나선 딸을 보며 아버지는 기자에게 “스스로 하고 싶은 게 많은 아이”라고 말했다.

14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9년 차 싱어송라이터 우효(우효은·30)와 그의 아버지 우진영 씨(64)의 모습이었다. 이달, 우효의 곡 ‘민들레’(2017년)가 6년 만에 국내 음원 차트에서 역주행했다. “앞으로를 격려해 주시는 의미라고 생각한다”는 우효는 2021년 1인 기획사 ‘이너프 이너프’를 세우고 홀로서기 중이다.

우효의 음악 세계에선 아버지를 빼놓을 수 없다. 우효는 2018년까지 한국과 외국을 오가며 살았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피닉스, 뉴욕, 영국 런던, 스페인 마드리드…. 아버지의 근무처를 따라 주거지를 옮겨왔다. 잦은 환경 변화는 여러 문화를 접할 기회이기도 했지만 쉽게 소속감을 얻지 못한 난점이기도 했다. 낯선 곳에 적응하는 것은 힘들었다. 미래는 불확실해 보였다.

자신감이 없을 때가 많았어요. 늘 원점에서 혼자만 늦게 출발하는 기분이랄까요. 다른 사람들에겐 익숙한 경기인데, 저는 기본기도 없는 채로 혼자 투입된 느낌? 왜인지 발맞춰 따라갈 수 없을 것 같아 무기력할 때도 많았고 반쯤 포기할 때도 있었어요.

2017년 발매된 싱글 ‘민들레’. 마마무의 휘인, 하현상, 더보이즈의 큐 등이 커버했으며 광고와 방송 프로그램에 삽입되면서 점차 이름을 알렸다.
부유하는 일상 속 그때그때 ‘내 편’이 되어주었던 것은 음악이었다. 우효는 “대중문화를 통해 그 사회를 많이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유년기에는 한국 가요와 클래식을 들었다. 미국에서 살 때는 팝과 뮤지컬, 오페라를 접했고 다시 한국에 돌아왔을 때는 인디밴드를, 또다시 해외에 가 살 때는 그 나라의 영화 음악을 들었다.

경계인으로 살며 우효가 택한 삶의 방식은 이랬다. 첫 번째, 낯선 환경에 나를 던져보기. 두 번째, 그 안에서 색다른 나의 모습을 발견하기. 우효는 자신의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해 가며 점차 재미를 느꼈다. “목소리가 좋다”는 오빠의 말에 학급 발표회에 나가 노래를 했다. 어떨 때는 피아노 전공자가 되고자 했고, 또 어떨 때는 글을 쓰는 작가를 꿈꿨다.

취미처럼 노래를 부르고, 낙서처럼 곡을 만들었다. 그러다 대학교 1학년, “음반 하나쯤은 내보고 싶다”는 생각에 휴학했다. 부모님은 “1년만 휴학하고 그때까지 성과가 없으면 복학하자”고 제안했다. 휴학은 길지 않았다. 몇몇 거절을 거쳤지만 곧 러브콜이 왔다. 데뷔 앨범 ‘소녀감성’(2014년)의 탄생 과정이다.

우효의 데뷔 앨범 ‘소녀감성’(2014년). 타이틀 곡 ‘소녀감성 100퍼센트’에는 가장 친한 친구이자 롤모델이라는 자신의 오빠 이야기가 나온다.
당시를 떠올리며 우효는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나만의 길이 생기는 것을 경험했다”고 말한다. 물론 그 후로 방황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스스로 음악적 지식이 부족하다 느껴질 때마다 힘들었다고 했다. 그때 본래 목적과는 다른 분야에 몸담고 살아가는 이들의 인터뷰 기사를 자주 봤다. “역량은 부족해도 이전보다는 내가 추구하는 음악에 다가갈 수 있다는 희망을 붙잡았다”는 순간들이었다.

실제 그가 해온 음악들을 보면 방향성이 뚜렷하진 않다. 밝으면서도 아련한 느낌의 ‘민들레’(2017년), 유럽 감성 충만한 ‘마드리드’(2019년), 미국 밴드 느낌이 강한 ‘돌아온 테디베어’(2023년) 등 그 장르가 다양하다. 여전히 우효는 이쪽저쪽의 길 사이에서 자신을 찾아나가는 여정 위에 있는 것이다.

우효는 “공연장에는 가족이 없었으면 좋겠다. 아무래도 나도 모르는 나의 새로운 모습을 꺼내고 싶은데 가족이 있으면 왜인지 부끄럽다”며 웃었다. 이너프 이너프 제공.
그런 딸을 쭉 지켜보던 아버지는 말한다. “이제는 더 이상 ‘너를 안다’고 이야기하지 않겠다”고.

“처음에는 딸의 아픔과 딸의 고민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조금 다른 성장 과정을 같이 경험한 돈독한 가족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최근에는 잘 모르겠더라고요. 이해해 보려 하겠지만 한계가 있을 수도 있지, 이런 생각을 합니다.”

아버지는 곡 ‘고슴도치의 기도’(2015년)를 듣던 날을 떠올린다. 혼자 있고 싶지만 외로운 이들의 마음을 담은 이 노래가 끝이 났을 때, 아버지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우효는 이 곡에서 “오늘도 내 하루는 왜 이리 힘이 드는 걸까요”하며 한탄한다. 하지만 마지막에 다다르면 “사랑할래요, 너를”하며 마음의 문을 연다.

곡 하나하나가 우리 딸이 내린 마음의 결론일 수 있잖아요. 밝지 않은 곡을 들으면 심각해지죠. 그래도 마지막이 희망적이면 ‘휴우’하며 한시름 내려놓습니다. 갈수록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상대를 모르면서 가장 아는 것처럼 대하는 게 가족이에요. 뭘 모르는지 아는 것이 상대방을 편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우효의 ‘고슴도치의 기도’의 뮤직비디오. 네덜란드 작가 톤 텔레헨의 동화 소설 ‘고슴도치의 소원’과 콜라보했다.
곡 ‘고슴도치의 기도’ 중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좋든 싫든 직면하는 법을 모르는 고슴도치죠/누가 가르쳐 줬는지 피해가는 법만 배웠죠/그래서 아빤 말했죠/좋을 땐 기분을 조금만 묻어두자고/눈물이 떨어질 때 조금은 담아두자고/필요할 때 꺼내 쓰자고/하지만 한참 어린 고슴도치/묻어 두는 것도 담아 두는 것도 몰라.’

자기 길을 마주하는 법을 알게 된 딸과 딸의 새로운 모습을 함께 발견해 나가는 아버지. 우효는 인터뷰 내내 “스스로 자신감을 가져본 적이 없다”고 했지만, 그 곁엔 “본인은 힘이 없다지만 어려움을 극복하고 일어난 것 또한 자신”이라고 말해주는 아버지가 있었다. 매사 자신감이 넘치진 못해도 “부족함을 특별함으로 바꿀 수 있다”는 우효의 자기 확신은 그렇게 만들어져 갔을 테다.

가만가만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던 부녀는 두 시간 남짓의 대화를 마치며 ‘우효가 하고자 하는 음악’에 대한 답을 찾았다. “오랫동안 내가 만족할 수 있는 노래를 만들고 싶다”고 말하는 우효는 어느새 편안한 웃음을 띠고 있었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Copyright © 동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