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진 짐꾼 논란에 인종차별 주장 어떻게 보셨나요?
한국언론학회 등 3개 학회 문화연구회 공동주최 문화연구캠프
"백인-황인-흑인 위계 정당화, 인종차별 아니란 주장하면서 또 다른 차별"
[미디어오늘 장슬기 기자]
지난해 5월 tvN 예능 프로그램 '뜻밖의 여정'에서 윤여정씨와 이서진씨가 미국에서 열린 제9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참여한 모습이 공개됐다. 현장에서 이씨는 검은색 핸드백을 들고 있었는데 이씨는 “제이미 리 커티스가 가방을 잠시 가지고 있어 달라고 (했다)”라며 “그런데 누군 줄 알고 나한테 저렇게 맡기고 (간 건가)”라고 말했다. 이후 누리꾼들 사이에선 인종차별이란 비판이 나왔다. 동양 남성은 스태프일 거란 짐작으로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짐을 맡겼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16일 한국언론학회 문화젠더연구회 등 3개 연구회가 주최한 제21회 문화연구캠프에서 김정은씨(서울대 석사과정)는 남초 커뮤니티(FM코리아, 디시인사이드)와 여초 커뮤니티(더쿠, 여성시대) 댓글 분석 결과 발표했다. 여초 커뮤니티에선 인종차별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는데 남초 커뮤니티에서는 인종차별로 볼 수 없다는 의견도 꽤 발견됐다. 김씨는 그 이유로 '한국식 인종주의'로 꼽았다. 또 다른 차별의식 탓에 이씨가 겪은 일을 차별로 볼 수 없다는 분석이다.
일단 이씨가 겪은 일은 마이크로어그레션(microaggression), 즉 일상에서 이뤄지는 미묘한 차별인데 이 중에서도 마이크로인설트(microinsult)에 해당한다. 마이크로인설트는 예를 들어 백인 곁으로 흑인들이 지나갈 때 지갑이 잘 있는지 체크하는 행위와 같이 자각 없이 무의식적으로 행하지만 소수자에 대한 모욕의 메시지가 담겨있는 '미묘한 모욕'을 뜻한다.
김씨는 '식민지 남성성', '한국식 인종주의' 등 개념을 통해 왜 남성 누리꾼들이 서양인과 동양인간 사건에서 서양인 쪽에 이입하는지 해석했다. 식민지 남성성은 식민 지배국과 관계에서 피해자가 된 남성이 자국 여성을 차별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남성성을 회복하려는 의식으로, 한국 남성이 서구사회를 표방한 일본 제국주의를 욕망하는 현상을 말한다. 서양 배우가 이서진씨를 짐꾼 취급한 것에 대해 상대적으로 여성들은 인종차별로 느끼지만 한국 남성들은 서양 백인에 감정이입해 차별이 아니라는 입장을 취한 것을 이런 논리로 해석할 수 있다. 이는 서구 백인-황인-흑인의 위계를 만들어 황인보다 피부색이 까만 경우 차별을 정당화하는 '한국식 인종주의'로 이어진다.
김씨는 남초 커뮤니티에서 '인종차별이 아니다'라는 주장 속에 또 다른 차별·위계의식이 있다고 해석했는데 첫째는 제국 남성과 동일시하는 욕망 때문이었다. 댓글 중에는 “동양인의 피해의식”이라는 내용과 함께 “페미들 하는 말과 비슷하다. 여자가 성희롱이라고 느꼈으면 성희롱이다” 등의 내용이 있다. 최근 온라인 공간에서 유행하는 '흑미니스트(흑인+페미니스트)'라는 말도 이런 맥락에서 한국식 인종주의에서 가장 열등한 위치에 놓은 흑인을 페미니스트로 비유하는 말이다. 페미니스트들을 '남성에 대해 피해의식이 있는 여성'으로 조롱하듯 흑인을 차별하는 표현이다.
김씨는 둘째로 위악적 자기 비하가 댓글에서 발견됐다고 했다. 댓글에서는 “똥양”, “똥송” 등 표현이 등장하는데 똥양은 동양을 비하하는 말이고, 똥송은 '동양인이라 죄송하다'는 말이다. 김씨는 “근대의학이 서양에서 시작하면서 백인 남성의 몸이 신체적 기준과 규범이 됐고 한국에서는 박정희 정권 초 국가 재건을 목적으로 '이상적 신체'를 가진 '군인 남성성'을 육성했는데 서양 신체로 대표되는 '전사적 남성성'을 근대적 남성성으로 인식했다”며 “황인종 신체에 대한 열등의식과 연결된다”고 했다.
세 번째로 '신뢰할 수 있는 남성이라 짐을 맡겼다'는 주장도 발견됐다. “인종차별 아닌 것 같다. 조선족, 똥남아, 외노자면 내 가방 안 맡길 듯” 등 댓글을 보면 신뢰할 수 없는 남성으로 조선족이나 동남아시아인, 흑인 등을 거론하고 있다. 저개발국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하는 발전주의를 통해 한국식 인종주의를 정당화하는 논리다. “학창시절 일진들 가방들어주는 찐따(절름발이를 뜻하는 일본어에서 비롯한 차별 표현)”에 비유하는 댓글에 대해 김씨는 “소수자가 인종차별 당하는 상황을 지적하는 과정에서 남성 집단 내 약자에 대한 혐오 담론을 생산한다”고 지적했다.
김씨는 이번 연구를 시작한 계기에 대해 “해외 축구를 자주 보는데 동양인에 대해 눈을 찢는 등 명백한 차별행위에선 이견이 없었는데 좀 모호한 차별 행위에 대해 여초 커뮤니티에선 인종차별이란 주장이 강했지만 남초 커뮤니티에선 미묘하게 분위기가 달라서 마이크로어그레션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번 연구의 한계로 “하나의 사례(이서진 짐꾼 논란)를 가지고 커뮤니티의 특성 연구해서 한국의 전반적 남성성으로 확장해 이해해도 될 것인지에 대한 의문은 남는다”라며 두 커뮤니티의 특성을 언급했다. 디시인사이드의 경우 커뮤니티 자체 특성상 서로 극렬히 '까고, 까이며' 사회적 유대 관계를 혐오하는 다소 과격한 분위기가 형성돼있고 FM코리아의 경우 20대 남성들이 주로 이용한다는 점을 들었다. 김씨는 “이에 연구 사례와 대상을 늘리고 보다 많은 데이터를 이용해 보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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