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욕망 채워넣은 인조인간에게 내 여자를 빼앗기다[북리뷰]
이언 매큐언 지음│민승남 옮김│문학동네
현대 英 문학 대표 이언 매큐언
인공지능시대의 윤리 파고들어
1982년 최초의 인조인간 아담
찰리와 미란다가 ‘성격 디자인’
아담, 미란다와 잠자리 갖게돼
인공지능(AI) 기술을 둘러싼 논쟁과 논의가 계속되는 가운데, 블랙홀처럼 모든 걸 집어삼키는 말이 있으니 ‘공존’ 그리고 ‘공진화’라는 구호다. 막연한 낙관이자 당위적 결론이다. 이미 AI 시대는 시작됐으며, 우리는 우리가 만들고, 분명 우리를 닮을, 동시에 우리를 뛰어넘을 ‘그것’들과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 함께 ‘더’ ‘잘’ 살아야 한다는 것. 그런데, 어떻게? 그 질문 앞에선 모두 조용하다. 사회적·법적 제도 정비가 시급하다거나 하는 말은 ‘기계적으로’ 내뱉으면서, 다가올 그 ‘풍경’을 제대로 그리진 못하는 듯 보인다.
이언 매큐언의 ‘나 같은 기계들’을 만나기 전에는. 부커상 최종 후보에 여섯 차례 오르고, 이제 남은 건 노벨문학상뿐이라는, 현대 영국 문학을 대표하는 이 소설가는 자신의 유일한 과학소설(SF)에서 우리를 그 ‘풍경’ 앞에 데려다 놓는다. 아니, 그 풍경 안에 밀어 넣고 묻는 것이다. 자, 너도 상상했지, 두려웠지, 그래서 모른 척했지 하고.
매큐언이 열어 준 문으로 들어가면, 그곳은 과학 기술이 획기적으로 발전한 가상의 ‘과거’다. 1982년 런던의 허름한 아파트에서 주식과 외환 거래로 생계를 유지하던 청년 ‘찰리’. 어느 날 어머니의 유산을 물려받게 되고, 마침 시장에 출시된 인류 최초의 인조인간 ‘아담’을 구매해 함께 살기 시작하며 벌어지는 사건이 골자다. 아담은 인간과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정교하다. 피부와 눈빛, 표정뿐만 아니라 체온은 따뜻하고, 호흡도 할 줄 안다. 스피커가 아니라 혀, 치아, 입천장을 이용해 ‘사람의 소리’를 내며, 결정적으로 섹스도 가능하다. 또한, 아담은 ‘선하게’ 설계됐다. 언제나 윤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하도록 말이다. 다만, 성격은 구매자가 설정할 수 있는데, 찰리는 위층에 사는 연인 미란다와 함께 아담의 성격을 디자인한다. 이것이 불행의 싹이 될 줄 모르고, 두려움과 호기심을 동시에 느끼며, 이들은 “창조신화의 실현을 위해”, 그리고 “기괴한 자기애적 행위를 향해” 나아간다. 찰리의 말대로 “실현 가능”하다면 “결과야 어떻든 욕망에 따를 수밖에” 없다고 항변하는, 줄곧 어리석었고, 아마 앞으로도 그러할 ‘우리’ 처럼.
찰리와 미란다의 바람과 욕망, 이상향이 입력된 아담의 ‘마음’엔 사랑이 싹튼다. 그 대상이 기묘하다. 바로, 찰리의 연인인 미란다.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최적의 결과를 도출해 낼 줄 아는 아담은, 찰리에게 종종 미란다를 믿지 말라고, 그녀가 “체계적이고 악의적인 거짓말쟁이”일 수 있다고 경고해 왔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의 가장 흥미로운 특성 중 하나인 ‘사랑’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문제의 그것. 아담이 미란다와 잠자리를 갖게 되는 것이다. 찰리는 미친 듯한 질투심과 동시에 거대한 모순을 느껴 괴롭다. “인공물에 여자를 빼앗기는 첫 사례”이자 “최신식 바람을 피운 여자”의 남자. 그의 분노는 정당한가. 그렇다면 ‘기계’의 자발성, 주관적 감정, 자의식을 인정해야 한다. 아담의 미란다를 향한 ‘사랑’을 인간의 ‘사랑’과 같다고 받아들여야 한다. 찰리의 딜레마가 ‘남 일’ 같지 않은 건,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너무나 ‘있을 법한’ 일상으로 비쳐서다. 그렇게 소설은 AI 시대 가장 첨예하고 집요한 윤리 문제를 에두르지 않고, 발가벗긴다. 무엇이 우리를 기계와 구별되게 하는가 물으며. 나와 나를 닮은 기계와, 나의 연인의 기묘한 삼각관계. 기괴하지만 빠져들고 만다. 위층에서 벌어진 ‘그날 밤’을 배신감과 치욕 속에서도 “너무 흥미진진해서”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던 찰리처럼. 그리고 늘 ‘도덕적인’ 아담이, 왜 결함 많은 두 인간(찰리와 미란다)에게 ‘악당’으로 여겨지는지, 기이한 인간의 욕망에 회의와 동질감을 동시에 느끼며 독자들은 책장을 끝까지 넘기게 된다.
매큐언은 최고작이라고 일컬어지는 ‘속죄’(2001)를 비롯해 ‘체실 비치에서’ ‘칠드런 액트’ 등 영상화된 작품이 11편이나 된다. 그만큼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겸비한 작가인데, 이는 그가 꾸준히 현실사회에 관심을 갖고 현대인의 딜레마를 고민하기 때문이다. 전작 ‘바퀴벌레’에서는 영국 정치인들을 바퀴벌레로 변신시켜 풍자했다. 브렉시트를 꼬집기 위해서다. ‘나 같은 기계들’ 역시 40년 전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지금 화두인 AI를 가져와 가장 ‘현재적’ 이야기로 만들어 냈다.
그는 한때 ‘엽기 이언’이라 불릴 정도로 기발하고 충격적인 설정의 귀재이기도 한데, 이번 작품도 흥미로운 상상력과 리얼리즘이 절묘하게 결합한다. 1950년대 동성애를 고발당해 자살한 것으로 알려진 ‘컴퓨터의 아버지’ 앨런 튜링이 오래오래 살아 최고의 업적을 남기고, 존 레넌은 암살당하지 않고 비틀스는 재결합한다.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질 뻔하지만, 결국 떨어지지 않았다. 역사를 비틀어‘∼할 뻔했다’는 ‘대체 현실’을 창조해 낸 매큐언은 한 인터뷰에서 “과학이 지금보다 더 발전된 차원에 있다면 정치사와 사회사도 조금 다르게 쓸 수 있겠다 생각했다”고 밝혔다. 따라서 이 소설은 “디스토피아가 아니라 현실보다 약간 나은 세계”가 되는 것이다. 460쪽, 1만6800원.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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