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권 보장의 상징 ‘헌법’ 민주혁명 아닌 전쟁의 산물[북리뷰]

2023. 8. 18.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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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 선, 펜
린다 콜리 지음·김홍옥 옮김│에코리브르
기원전 法은 신민의 처벌 치중
근대 이후엔 자유와 권리 보호
성문헌법, 권력 선전 수단이자
징병·징세 확보 위한 통치 대가
총 앞세운 강력한 해양 제국들
정치질서 위해 제정 앞장 섰고
인쇄술 발달로 국경 넘어 확산
게티이미지뱅크

인류가 정치 질서와 권력 형태를 하나의 문서에 담아낸 시기는 오래전이다. 기원전 1750년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 황제는 법전을 석판에 새겨서 제국 곳곳에 알렸고, 기원전 7세기에는 그리스 일부 도시국가가 정부 규정을 마련했으며, 기원전 4세기경에는 중국에도 최초의 성문법이 나타났다.

그러나 이들은 대부분 제왕을 위해 마련된 법이었다. 권력에 제한을 가하고 개인 권리를 보장하기는커녕 신민에게 엄격한 행동 수칙을 제시하고 이를 어기면 무거운 처벌을 내리는 데 치중했다. 더욱이 개인이 쉽게 법에 접근하기도 어려웠다. 법 자체가 널리 보급되지 않은 데다, 문맹률도 높았기 때문이다.

문서로 이루어진 헌법은 1750년대 처음 제정되어 20세기 초까지 약 150년 만에 국가와 대륙을 가로지르면서 전 세계에 빠르게 확산됐다. 1908년 오스만제국에서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그들이 요구한 것은 단 하나뿐이었다. “모든 나라에 헌법이 있습니다. 튀르키예만이 헌법을 폐지하는 바람에 국민이 만족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1876년 제정 후 곧장 철회된 제국 헌법의 실질적 발효만이 닥쳐온 영국과 러시아의 위협 앞에서 국가를 지켜내고 국민을 편안하게 하는 길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린다 콜리 미국 프린스턴대 역사학과 교수의 ‘총, 선, 펜’에 따르면, 성문 헌법의 존재는 근대 국가의 핵심이자 근대화의 상징이다. 근대 이후 제정된 헌법은 대부분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고, 사상과 종교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등 근대사회의 근본 질서를 담고 있다. 더 나아가 헌법은 주권이 개인 권력자나 소수 귀족이 아니라 모든 국민에게 주어져 있음을 선연히 선포한다.

일반적으로 성문 헌법은 민족 독립 국가의 매혹적인 증거이자 민주주의 혁명의 선물처럼 상상된다. 그러나 저자는 성문 헌법의 탄생과 확산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 요인은 대규모 전쟁이라고 주장한다. 최초의 성문 헌법은 1755년 코르시카에서 탄생했다. 약 10쪽으로 이루어진 이 선구적 문서의 작성자는 독립 전쟁의 영웅인 파스콸레 파올리였다. 이처럼 성문 헌법의 작성자 중에는 아이티의 투생 루베르튀르, 프랑스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남아메리카의 시몬 볼리바르 등 군인이 많았다.

저자는 성문 헌법의 확산에 영향을 끼친 근원적인 힘을 총, 선(船·배), 펜으로 압축한다. 총은 대량 파괴를 가져온 화약 무기의 발달을, 선은 무장 함선을 보내 세계 곳곳에 식민지를 운영하는 해양 제국의 부상을, 펜은 문맹 퇴치 및 인쇄 문화의 확산을 뜻한다.

유럽에서 총과 대포, 즉 화약이 전쟁에 도입된 시기는 14세기 무렵이다. 화약의 등장은 대규모 인명 및 재산 피해를 초래함으로써 전쟁 양상을 뒤바꿨다. 발달하는 전쟁 기술 탓에 국가권력은 점증하는 국내외 위협과 전쟁 비용에 맞게 정치 질서를 새로 구성할 수밖에 없었다. 승리하든 패배하든, 국가가 심각한 부담을 떠안음으로써 정권이 약해지고 불안정해져 혁명과 내전으로 이어지곤 했기 때문이다.

전쟁으로 위기에 처한 국가권력에 성문 헌법은 정치 질서를 정비하고 국가 경계를 표시하며, 국내외에 자기 위상을 선전하고 피력하기 위한 매력적 수단이었다. 위기를 겪지 않은 국가들도 정당성을 확보해서 국민 동원을 쉽게 하고 징세를 편히 하려고 성문 헌법 제정에 나섰다. 한마디로 성문 헌법은 전쟁의 피로 쓰인 문서였고, 대규모 징병권·징세권을 확보하기 위한 통치술의 대가였다. 20세기까지 성문 헌법을 채택한 많은 국가가 여전히 군주제 국가로 남은 이유다.

강력한 해군에 바탕을 둔 해양 제국의 부상도 성문 헌법 확산에 영향을 주었다. 제국들은 서로 다른 문화와 종교를 지닌 사람들을 하나의 정치질서 아래 모을 수밖에 없었다. 이는 크고 작은 갈등과 분쟁의 폭발을 의미했다. 통치를 원활히 하려고 제국은 다양성을 수용하는 새로운 정치 질서를 고안해 성문 헌법을 통해 시험할 수밖에 없었다. 독립투사들도 헌법을 자유와 해방의 촉진제로 쓰는 데 적극적이었다. 이 때문에 많은 식민지와 독립 국가에서 성문 헌법이 채택되었다.

성문 헌법의 확산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 것은 문맹률 저하와 출판문화 활성화였다. 인쇄술을 통해서 더 많은 국민이 헌법에 접근할 수 있게 되면서 정치적 관심과 참여 욕구가 분출했고, 권력에 대한 견제가 일반화했으며 국내외로 빠르게 복제되면서 널리 퍼져나갔다. 현대 성문 헌법은 독창적이기보다 서로를 참조하면서 갈수록 강하고 다양한 권리를 포괄하는 쪽으로 변화해 왔다.

그러나 헌법이 개인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건 아니다. 권력은 흔히 헌법을 왜곡하고 조작해 국정을 농단해 독재를 휘두르곤 한다. 러시아 예카테리나 여제는 선진 헌법 나카즈를 작성한 후, 이를 자기 지위를 굳히고 제국을 확장하는 데 써먹었다. 히틀러는 바이마르 헌법을 악용해서 집권했고, 스탈린은 헌법을 바탕으로 정적을 제거하고 반체제 인사를 탄압했다. 권력에 대한 꾸준한 경계와 감시를 통해 헌법이 공동선에 어긋나는지 살필 때만 비로소 헌법은 올바로 작동한다. 616쪽, 3만5000원.

장은수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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