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는 진실과 다를 수 있어… 역사, 현재로 끄집어내 끝없이 다시 써라[출판평론가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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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서 배우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고들 이야기하지만, 제각각 다른 '해석' 때문에 역사적 사실은 종종 왜곡되곤 한다.
왜곡된 역사는 하나의 신념 체계로 굳어질 때가 많다는 점에서 역사를 읽는 옳은 방식, 즉 '역사 문해력'도 지극히 필요한 시대다.
최호근 고려대 사학과 교수의 '역사 문해력 수업'은 해묵은 질문처럼 보이는 "역사란 무엇인가"를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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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서 배우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고들 이야기하지만, 제각각 다른 ‘해석’ 때문에 역사적 사실은 종종 왜곡되곤 한다. 왜곡된 역사는 하나의 신념 체계로 굳어질 때가 많다는 점에서 역사를 읽는 옳은 방식, 즉 ‘역사 문해력’도 지극히 필요한 시대다. 최호근 고려대 사학과 교수의 ‘역사 문해력 수업’은 해묵은 질문처럼 보이는 “역사란 무엇인가”를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저자는 역사가 “물건 가득한 초대형 창고”가 아니라면서 “약간의 완성품, 단순 가공이 필요한 중간재들, 장인의 손길을 기다리는 소재와 원료들이 질서 없이 뒤섞여 있는 끝없는 대지”라고 강조한다. 그 모든 것을 읽어내기 위해서는 공교(工巧)한 눈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역사 문해력이란 결국, 저자의 말마따나 “무궁무진한 소재들이 어떻게 채굴되고 가공되는지, 역사가들이 어떤 자세와 도구로 이 소재들을 역사로 탈바꿈시키는지” 읽어내는 일이다.
종종 충돌하는 것은 역사적 사실과 진실의 상관관계다. 문서자료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근거지만, 그것이 사실의 전부, 즉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 “진실 중에는 물처럼 유동적이거나 공기처럼 흩어지기 쉬워서 규격화된 용기에 담기지 않는 것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제주 4·3사건은 오랫동안 진실은 고사하고 사실조차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었다. 물꼬를 튼 것은 ‘심방’이라 불리는 제주 무당들이 풀어주는 “억울하게 죽은 영혼들”의 ‘영게울림’이었다. 살해당한 사람의 영이 심방에게 빙의해 가족을 만나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4·3사건의 실마리가 하나씩 풀렸다. 저자는 “심방의 접신과 초혼(招魂), 죽은 자와 살아남은 자의 해후, 원혼의 해원을 통한 유가족의 치유와 안녕”에 관한 이야기마저 역사의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세계사를 읽는 키워드로 순환·진보·발전·문명을 제시한다. 순환의 세계관에는 “현대 문명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지만 “미래에 대한 기대마저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던” 사람들의 염원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직선적 발전에 대한 인간의 기대를 함축”한 진보, “정체와 퇴보, 일탈과 우회의 모든 계기를 포함하는 과정”인 발전, “탄생-성장-쇠퇴-해체-소멸”이라는 운명을 지고 태어난 문명 역시 그 자체로 세계사를 조망하는 중요한 키워드다.
책 말미에 저자는 “다시, 역사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 역사는 “인간의 삶과 관련된 과거의 무수한 사건들 가운데 기억된 것, 그 가운데서도 반복적인 선별과정을 거치며 거듭 기록된 것”이라는 점에서, 역사서술은 “패자부활전”일 수밖에 없다. 결국 “기억된 과거”이자 “기록된 과거”인 역사를 현재로 끄집어내어, 카의 지적처럼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끝없는 대화”를 주선하며, “거듭 다시 써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그래야만 학문으로서의 역사 또한 발전하기 때문이다. 저자의 바람처럼 ‘역사 문해력 수업’은 “어렵지 않게, 하지만 공허하지도 않게, 무엇 때문에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지 묻는 사람에게 친절하게 말해주는 책”임에 틀림없다.
장동석 출판도시문화재단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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