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오래 자라 더 맛있는 토종닭
토종닭은 재래종과 토착종으로 구분된다. 재래종은 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서 키워온 것으로, 다른 품종과 섞이지 않고 순수 혈통을 유지한 재래 품종이다. 외국에서 들여왔지만 오랜 시간 우리나라의 기후와 풍토에 완전히 적응한 품종은 토착종이라 부른다.
토종닭은 반가운 손님이 왔거나 계절이 바뀔 때 보양식으로 내놓을 만큼 귀한 식재료다. 가격이 비싸기도 하지만, 시중에 많이 유통되지 않은 점이 그 이유일 듯. 과거에도 이렇게 접근성이 떨어졌을지 궁금하다.
그 이유를 찾기 위해서는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이전까지는 흔히 토종닭이라 부르는 우리나라 고유의 재래종이 많았다. 하지만 양계업의 활성화를 위해 일본 개량종을 들여온 것을 시작으로 6·25전쟁을 겪으며 토종닭의 개체수가 매우 줄어들었고, 전쟁 후 적게 먹어도 빨리 자라는 효율성 중심의 육계 전용 서양 닭 품종이 수입되면서 토종닭을 만나기가 어려워졌다.
프라이드치킨이나 닭강정을 만들 때는 주로 코니시 크로스(Cornish cross)라는 품종을 사용한다. 이는 1960년대에 닭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코니시 품종과 다른 품종들을 교배하여 만든 교배종이다. 생산성이 높다는 것은 알을 많이 낳고 사료를 적게 먹어도 살이 빨리 찐다는 의미. 한마디로 성장이 빠르다는 것이다. 흰색 몸통에 빨간색 볏을 가진 코니시 크로스 품종은 한 달이면 1.5kg이 훌쩍 넘을 정도로 빠르게 자라는 특성이 있다. 이러한 경제적 이점에 따라 코니시 크로스는 육계 생산을 위한 가장 일반적인 품종으로 자리 잡았다. 우리나라 역시 모든 닭이 빠르게 이 품종으로 교체되면서 토종닭은 점차 사라져갔다. 현재 마트에서 판매하는 식용 닭의 85~90% 정도가 코니시 크로스 품종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는 고유의 토종닭 종자 주권을 확보하고,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우리의 닭을 되찾기 위해 민화 속에서 토종닭의 외형적 특징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민화 속에 등장하는 한국의 토종닭 대부분은 갈색 또는 검은색 깃털에 가슴이 길고 얇으며 다리는 쭉 뻗어 있다. 민화 속 토종닭과 외형적으로 비슷한 특징을 가진 닭은 주로 제주도처럼 외부로부터 고립된 도서, 산간 지역에서 발견됐다. 이에 국가 차원에서 전국 산간지방에 흩어져 사육되던 토종닭을 수집한 뒤 각고의 노력 끝에 멸종위기에 처한 한국 고유의 토종닭 품종을 복원하게 됐다.
현재 한국토종닭협회에서 인정하는 식용 토종닭은 3종류다. 한협 토종닭, 우리맛 토종닭, 소래 토종닭. 공통적인 특징은 천천히 오래 자란다는 것이다. 한 달가량 키우는 일반 육계와 비교했을 때 토종닭은 그 2배인 70~75일가량 사육해야 한다. 농가에 따라 90일 정도 걸리기도 한다. 70일의 사육 기간을 기준으로 한협 토종닭은 2.3kg, 우리맛 토종닭은 2.1kg, 소래 토종닭은 2.4kg이 될 정도로 천천히 자란다는 것이 바로 토종닭의 특징이자 매력이다.
한협 토종닭은 시중에서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토종닭이다. 마트에 가면 특별한 품종 표시 없이 '토종닭’이라고 쓰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대부분 한협 토종닭이라고 보면 된다. 한협 토종닭은 황금색 몸통에 검게 빛나는 긴 꽁지가 위로 솟아 있으며, 일반 육계에 비해 큰 키와 날렵한 몸집 그리고 얇고 긴 가슴살이 특징이다. 우리맛 토종닭은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에서 15년간 공들여 복원한 토종닭이다. 외형적으로는 갈색과 흑색 계열의 몸통과 황갈색 또는 검푸른 색의 다리가 특징이며, 한협 토종닭보다 상대적으로 짧은 꽁지를 가지고 있다. 소래 토종닭은 외국에서 들여온 품종이지만 한반도에 머물면서 우리나라의 기후와 풍토에 적응한 토착종으로, 초기에 들여온 품종과는 다른 특성을 지녔다. 소래 토종닭은 대체로 황금빛 몸통에 짙은 암갈색 꽁지와 황색 다리를 가지고 있다.
백숙 말고도 숯불 구이, 샤부샤부로 인기인 토종닭
토종닭과 일반 육계의 맛은 어떻게 다를까? 일반 육계는 생산량을 높이기 위해 품종을 개량해서 살코기가 많다. 또 사육 기간이 짧아 조직이 촘촘하지 않으므로 식감이 부드럽다는 특징이 있다. 토종닭은 일반 육계에 비해 사육 기간이 2배가량 길기 때문에 육질이 조밀하여 식감이 쫄깃하며, 복합적인 육향과 풍미를 가지고 있다. 쫀득한 껍질도 토종닭을 찾게 되는 포인트 중 하나다.
토종닭은 질기다는 편견 때문에 오래 푹 삶는 백숙, 삼계탕 등의 요리에 주로 사용된다. 하지만 광양, 여수 등의 전라도 지역에서는 토종닭을 부분육으로 발라내어 숯불에 구워 먹기도 한다. 제주 조천 교래리에서는 토종닭을 얇게 포 뜨고 이를 채소와 함께 육수에 살짝 익혀 샤부샤부로 즐긴다고 한다. 특히 토종닭 구이는 토종닭의 매력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요리법 중 하나다. 일반 육계는 근섬유가 가늘고 식감이 부드러워 프라이드치킨, 닭강정처럼 튀겼을 때 더욱 맛있게 즐길 수 있다. 반면 토종닭은 근섬유가 치밀하고 식감이 쫄깃해 구웠을 때 그 진가를 발휘한다.
현재 획일화된 육계 품종이 특정 환경이나 질병에 의해 멸종된다면 다시는 닭을 볼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이러한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품종, 즉 생물다양성을 보존해야 한다. 모순적이게도 토종닭의 종다양성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토종닭을 소비해야 한다. 토종닭의 소비가 육계의 효율적 생산을 가장 중시하는 닭 농가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토종닭에 대한 소비자의 수요가 있어야 생산이 계속될 환경이 구축된다는 것이다.
토종닭을 보존하기 위해 일반 육계와 토종닭의 '다름’을 인식하고 나와 가족의 취향, 요리의 용도 등 상황에 어울리는 닭을 적극적으로 활용해보면 어떨까. 하루는 근사한 토종닭 스테이크로, 또 다른 날은 일반 육계를 활용한 겉바속촉 프라이드치킨으로 매번 새로운 닭 요리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사진출처 공유마당 푸드비즈니스랩
김나영 서울대학교 푸드비즈니스랩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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