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카페] 치명적 화학무기 사린가스, 바이오 전자 코로 잡는다
10억분의 1 농도도 감지, 군사용으로 활용 기대
치명적인 화학무기인 사린 가스를 감지할 수 있는 ‘바이오 전자 코’가 국내에서 개발됐다. 사람의 후각 단백질을 이용해 극미량의 독가스도 가려낼 수 있어 전쟁이나 재난 상황에서 인명을 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박태현 이화여대 식품영양학과 특임교수와 장정식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교수 연구진은 18일 “탄소 원자로 이뤄진 그래핀 기판에 사람의 후각 수용체 단백질을 결합시켜 사린 가스 대체 물질을 안정적으로 감지했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 결과는 ‘미화학회(ACS) 센서’지에 실렸다.
◇10분 내 사람 죽이는 치명적 독가스 검출
사린 가스는 66ppb(1ppb는 10억 분의 1) 농도 이상이면 10분 안에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치명적인 신경가스이다. 1995년 3월 20일 일본에서 옴진리교 광신도들이 도쿄 지하철에서 무차별 살포한 독가스로 유명하다. 이 사건으로 14명이 사망하고 6300여명이 부상했다. 이번에 개발한 전자 코 센서는 0.037ppb 농도의 가스까지 감지할 수 있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전자 코는 냄새를 구성하는 화학물질을 정량적으로 분석하는 장치다. 기체의 화학성분을 분석하는 장치를 응용해 만든다. 박 교수의 전자 코에는 ‘바이오’란 단어가 앞에 붙었다. 사람의 후각 수용체 단백질을 썼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사린 가스와 결합하는 후각 수용체 단백질인 hOR2T7을 그래핀 판에 끼워 넣었다.
그래핀은 탄소 원자가 육각형 벌집 모양으로 연결된 판형 물질이다. 구리보다 전류를 1000배나 잘 흘린다. 후각 수용체에 독가스 분자가 결합하면 그래핀에 흐르는 전류가 바뀌어 감지할 수 있다. 이번 연구에서는 실험실에서 다루기 위험한 사린 가스 대신 구조가 유사하지만 독성이 적은 ‘디메틸 메틸포스포네이트(DMMP)’로 센서 성능을 측정했다.
박태현 교수는 “바이오 전자코는 방독면에 결합해 군인이 사린 가스 피해를 입지 않게 할 수 있다”며 “드론에 탑재하면 오염지역을 탐색하고 실시간으로 군 지휘소에 전송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전에도 후각 수용체로 DMMP를 검출했지만, 액체 상태로만 가능했다. 연구진은 이번에 그래핀과 후각 수용체를 결합시켜 공기 중의 DMMP도 감지할 수 있었다. 특히 전투 현장처럼 연기가 있어도 센서가 독가스를 검출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바이오 전자코는 인체 단백질을 사용하지만 내구성이 강하다. 연구진은 대장균에 후각 단백질 유전자를 넣고 배양했다. 정제한 단백질은 1차로 세포막 성분으로 감싸고 다시 고무밴드 같은 막 지지체 단백질로 묶었다. 이중 보호 장치를 만든 것이다. 수용체 단백질 끝부분은 그래핀 표면에 코팅한 니켈과 결합한다. 덕분에 후각 수용체가 늘 똑바로 서서 독가스와 결합할 수 있다.
◇사람 혀보다 1만배 민감한 바이오 전자 혀도 개발
박태현 교수는 올해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에서 정년 퇴임하고 이대로 자리를 옮겼다. 박 교수가 그동안 개발한 바이오 전자 코는 재난 현장과 일상에서 모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부패 냄새를 맡는 전자 코가 대표적인 예이다. 바이오 전자 코는 냉장고에서 상한 음식이 있는지 알아내며, 육류 신선도 검사도 가능하다. 동시에 사고 현장에서는 숨진 희생자를 수색하는 데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음식이 부패할 때 나는 냄새는 ‘카다베린(cadaverine)’이라는 물질 때문이다. 시체(cadaver)에서 나는 냄새라고 해서 이 같은 이름이 붙었다. 박 교수는 2017년 카다베린을 잡아내는 바이오 전자 코를 개발했다.
먼저 민물고기인 제브라피시에서 카다베린과 결합하는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를 추출했다. 이것을 대장균 유전자에 끼워 넣어 배양했다. 정제한 수용체 단백질을 그래핀처럼 전류가 잘 흐르는 탄소 다발에 결합했더니 카다베린을 100조분의 1 정도의 아주 낮은 농도까지 감지했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박 교수는 지난해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권오석 박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송현석 박사와 함께 육류가 부패할 때 나오는 유해 인자들을 실시간으로 감지하는 바이오 전자 코를 개발했다. 이 전자 코는 카다베린을 포함해 네 가지 부패 냄새 분자를 동시에 감지했다.
박 교수는 지난 2016년 바이오 전자 코와 같은 방식으로 미각 단백질을 이용해 바이오 전자 혀도 개발했다. 사람은 혀에 있는 20여종의 맛 수용체 단백질이 맛을 내는 성분과 결합하면 세포 안으로 (+)전기를 띤 칼슘 이온이 들어온다. 이때 뇌가 전류의 변화를 감지해 맛을 인식한다. 박 교수는 이를 모방해 전자 혀를 개발했다.
연구진은 단맛과 감칠맛 수용체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를 사람 신장 세포에 집어넣었다. 이러면 세포 표면에 단맛과 감칠맛 수용체 단백질들이 자란다. 맛 수용체 단백질이 포함된 세포를 전기가 잘 통하는 그래핀에 연결해 전자 혀를 만들었다. 바이오 전자 혀는 인간의 혀보다 1만배 민감해 식품이나 주류회사에서 사람을 대신해 맛을 분석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참고 자료
ACS Sensors(2023), DOI: https://doi.org/10.1021/acssensors.3c00744
Biosensors and Bioelectronics(2022), DOI: https://doi.org/10.1016/j.bios.2022.114551
ACS Nano(2017), DOI: https://doi.org/10.1021/acsnano.7b04992
ACS Nano(2016), DOI: https://doi.org/10.1021/acsnano.6b02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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