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량판, WHY]①정부·건설사도 내세웠던 공법인데

나원식 2023. 8. 18.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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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활용·층간 소음 완화 등 장점…비용 절감 효과도
국내선 압구정현대·미국 원월드트레이드센터 등 적용
2010년대 이후 아파트 주차장 활용…주거동 주로 혼합 방식

지난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와 2023년 인천 검단 아파트 주차장 붕괴 사고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두 곳 모두 무량판 구조로 지어졌다는 건데요. 이에 따라 이 공법 자체에 대한 공포심이 확산하는 분위기입니다. '우리 아파트도 무량판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곳곳에서 쏟아졌습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무량판에는 죄가 없다'고 한목소리를 냅니다. 설계나 시공이 다소 까다로울 수 있지만 원칙대로 설계하고 시공한다면 튼튼하게 지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장점이 많은 공법이라는 설명인데요. 실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부는 무량판 공법을 장려하기도 했습니다. 건설사들의 경우 자사의 아파트가 이 공법을 적용했다는 점을 내세우기도 했고요.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미국 원월드 트레이드 센터도 '무량판 공법'

국내 아파트 건축 공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뉩니다. △벽식 구조 △기둥식(라멘) 구조 △무량판 구조인데요. 쉽게 말해 벽식은 벽이 천장을 받치는 구조로 볼 수 있고요. 기둥식은 수평으로 설치한 보가 천장을 받치도록 한 구조입니다.

무량판 구조의 경우 '없을 무(無), 대들보 량(梁)'이라는 말 그대로 '대들보가 없는' 구조로 이해하면 쉽습니다. 보 없이 기둥 위에 슬래브(콘크리트 천장)를 얹는 건설 공법입니다.

무량판 구조는 층고를 더욱 확보할 수 있고 내부 공간 활용이 비교적 용이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또 층간 소음을 완화할 수 있다는 점, 공사비를 절감할 수 있다는 점 등이 장점으로 꼽힙니다.

이 공법은 긴 역사를 갖고 있는 데다가 이미 전 세계적으로 적용하는 검증된 공법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인데요.

무량판구조는 미국 엔지니어인 클라우드 엘렌 포터 터너가 디자인해 지난 1905년 미국 미네소타주의 '존슨-보비 빌딩'에 처음 적용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래픽=비즈워치.

국내에서는 지난 1970년대에 지어진 압구정 현대아파트가 무량판 구조를 적용했는데요. 최초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대건설이 제작한 '현대건설 70년사'에는 무량판 구조가 당대 최고의 신공법으로 소개돼 있습니다. 현대건설은 "1960년대 초반 이래로 철근콘크리트 라멘 구조가 아파트 건설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었지만, 현대건설은 무량판 구조와 조립식 구조 등의 선진 공법을 적용해 건축적 완성도를 끌어올렸다"고 소개했습니다.

또 국내에서 서울 강남구 삼성동 아이파크 삼성이 무량판 구조를 택했다는 점도 자주 거론되는데요. 이 아파트는 지난 2013년 헬기 추락사고로 외벽이 무너졌지만 건물 구조에 손상이 없었다는 점에서 무량판 구조 자체가 부실한 것은 아니라는 사례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해외에서는 지난 2001년 9.11 테러로 무너진 월드 트레이드 센터 자리에 세워진 '원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바로 이 무량판으로 지어졌다고 합니다.

삼풍백화점 사고로 오명…2010년대 재부각

하지만 무량판 공법은 국내에서 오명을 얻게 됩니다. 지난 1995년 우리나라를 충격에 빠뜨렸던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당시 이 건물이 무량판 공법으로 지어졌다는 게 알려진 건데요.

당시 보도에는 무량판 구조 '대들보가 없는 공법' 등으로 소개되며 삼풍백화점 붕괴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됐습니다. 이 공법 자체가 위험하다는 지적이 잇따르면서 이후 한동안 국내 건설 현장에서 기피 대상이 되기도 했고요.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무량판 구조의 장점들이 다시 부각하며 현장에 적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삼풍백화점 붕괴 역시 무량판 공법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설계와 시공, 감리, 자재 누락 등 총체적 부실로 인한 인재였던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고요.

이에 따라 2010년대 중반부터 지하주차장을 중심으로 아파트 단지에도 무량판 공법이 적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최근 문제가 된 한국토지주택공사(LH) 발주 단지들에 무량판이 적용된 것도 2017년 이후입니다.

/사진=이명근 기자 qwe123@

이 시기 건설사들은 주거동에도 무량판 구조를 적용하기 시작했는데요. 대신 주거동에는 벽식과 무량판을 혼합한 방식으로 엄밀한 의미의 무량판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무량판 구조는 정부는 물론 건설사들도 장점을 내세워 장려한 공법이었습니다. 실제 국토교통부는 분양가상한제를 적용하는 주택을 지을 때 건축가산비에 완전 무량판 구조는 5%, 무량복합구조는 3% 가산점을 부여했고요. 용적률 상향 인센티브도 줬습니다. 또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 때 무량판 구조를 적용하면 용적률의 10%를 올려주기도 했습니다.

건설사들도 무량판 공법이 적용됐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수년 전 분양한 일부 아파트 단지의 경우 당시에는 주거동에 무량판 공법을 적용했다는 점을 내세웠는데요.

하지만 최근 무량판 공법에 대한 공포심이 확산하자 '우리 아파트는 무량판 공법이 아니다'라고 공지를 했다가 번복하기도 했습니다. 무량판과 벽식을 혼합한 방식이라는 점에서 내놓은 공지이지만 오해를 사기에는 충분했습니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무량판 공법만 적용하는 주차장과 달리 주거동의 경우 벽식과 무량판 혼합 방식이라 벽과 기둥이 천장의 하중을 충분히 받게 하고 있다"며 "이렇게 하면 안전에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나원식 (setisoul@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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