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띠 왜 두르고 있는데…오스트리아 와인인 줄 알았잖아 [E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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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편의점에서 와인을 많이 산다.
나는 요즘 오스트리아 와인에 꽂혀 있다.
그래서 가격이 괜찮은 오스트리아 와인은 눈에 띄면 무조건 사는 편이다.
초보자처럼 이렇게 낚인 것은 이 와인 라벨이 오스트리아 국기 색깔과 흡사한 붉은색 띠를 두르고 있는데다 오스트리아 화이트 와인과 같은 모양의 병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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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은중의 생활와인
다렌버그 드라이 댐 리슬링
요즘 편의점에서 와인을 많이 산다. 몇년 전과 비교하면 상상하기 어려운 구색에다 가격도 마트보다 저렴할 때가 있다.
그런데 ‘다렌버그 드라이댐 리슬링’을 내가 편의점에서 고른 건 실수였다. 나는 요즘 오스트리아 와인에 꽂혀 있다. 적당한 가격에 전혀 적당하지 않은 바디감과 향기. 오스트리아 와인은 거의 실패가 없었다. 그래서 가격이 괜찮은 오스트리아 와인은 눈에 띄면 무조건 사는 편이다. 그런데 다렌버그 드라이댐 리슬링은 오스트리아 와인이 아니라 오스트레일리아(호주) 와인이다.
초보자처럼 이렇게 낚인 것은 이 와인 라벨이 오스트리아 국기 색깔과 흡사한 붉은색 띠를 두르고 있는데다 오스트리아 화이트 와인과 같은 모양의 병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1만원대의 저렴한 가격 탓에 라벨을 자세히 살피지 않고 집어 든 나의 성급함이 가장 큰 이유였다.
맛과 향을 보고도 나는 이 와인을 오스트리아산으로 믿었다. 알프스 덕에 오스트리아는 유럽 다른 지역과 달리 토양이 석회암이 아니라 우리나라처럼 화강암이다. 그래서 바디감이 남다르다. 향도 독특함을 넘어선 꿈틀거리는 강렬함이 있다. 거기에 비싼 리슬링 특유의 석유향까지 났다. 1만원대 가격에 이런 맛을 나는 건 당연히 오스트리아의 화강암 토양 덕분일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지인들의 모임에서 이 와인을 가성비 끝판왕인 오스트리아 와인으로 두어번 소개하다가 실수가 드러났다. 한 친구가 라벨을 가리키며 “이거 호주 와인인데요”라고 밝혀준 것이다. ‘동굴의 우상’이라는 말이 생각날 정도로 나는 부끄러웠다. 까막눈도 아닌데 오스트레일리아를 오스트리아로 읽는 내 성급함에 스스로 놀랐다.
이 와인 산지의 토양도 화강암이 아니었다. 서호주 맥라렌 베일에 있는 이 와이너리의 리슬링은 점토와 모래 토양에서 자란다. 점토에서 자란 리슬링이라는 사실에 한방 먹었다. 나는 레드도 점토에서 자라는 메를로를 좋아한다. 향이 자갈에서 자라는 포도에 견줘 뛰어나기 때문이다. 점토 운운하더니 점토에서 자란 리슬링을 몰라본 것이다. 와인 앞에선 늘 겸손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 순간이었다.
이 와이너리의 ‘드라이댐’이라는 독특한 이름은 와이너리의 이웃 농민이 만든 말라붙은 저수지에서 따왔다. 마른 저수지는 농민의 농사에는 별 도움이 안 됐지만 뿌리를 깊게 내리는 포도 농사에는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이 리슬링은 강한 향과 산도 덕에 음식을 가리지 않는다. 나는 화이트 와인을 생햄이나 새우를 올린 빵과 주로 먹는데 이 와인은 편의점 나초 과자나 멸치아몬드 같은 가벼운 안주와도 아주 잘 어울린다. 또 매운 새우요리나 탕수육 같은 중국 요리와도 딱 떨어진다. 시도해보지 않았지만 짜장면과도 찰떡궁합일 것 같다. 저렴한 가격의 편의점 와인 가운데 이렇게 큰 만족을 준 와인은 칠레 카르메네르, 뉴질랜드 소비뇽 블랑 이후 처음이었다.
글·사진 권은중 음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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