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자’에게 듣는 최강우주망원경 제임스웹 1년

김연희 기자 2023. 8. 18. 0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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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상모 박사는 우주망원경과학연구소 제임스웹 팀에서 일하는 유일한 한인 과학자이다. 지난 1년간 제임스웹은 135억 년 전 은하를 발견하고, 별이 태어나는 생생한 순간을 포착했다. 지구인들은 ‘더 멀리, 더 선명하게’ 우주를 보게 됐다.
우주망원경과학연구소 수석연구원인 손상모 박사가 지난해 7월 제임스웹이 첫 번째로 공개한 ‘용골자리 성운’ 사진 옆에 서 있다.ⓒ시사IN 이명익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 있는 우주망원경과학연구소(STScI). “인류가 만든 가장 강력한 망원경”인 제임스웹 우주망원경을 이곳에서 운영한다. 손상모 박사는 우주망원경과학연구소의 제임스웹 운영 파트에서 일하는 유일한 한인 과학자이다. 광학팀 수석연구원으로 제임스웹 우주망원경이 계획된 지점을 정확히 관측하도록 위치와 오차를 계산하는 일을 맡고 있다. 보통은 연구소로 출근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차로 50분 정도 거리에 있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나사) 고더드 우주센터를 오가며 일한다.

지난해 7월12일, 제임스웹은 황금빛으로 빛나는 ‘용골자리 성운’ 사진 등으로 단번에 지구인의 시선을 사로잡으며 본격적인 관측 시작을 알렸다(〈시사IN〉 제776호 ‘제임스웹 우주망원경이 건넨 선물’ 기사 참조). 지난 1년 동안 제임스웹이 기대를 뛰어넘는 성능으로 인류의 지평을 성큼성큼 넓혀가는 사이 손상모 박사의 시계도 빠르게 돌아갔다. 제임스웹 운영업무와 천문학자로서 연구를 병행하면서 틈틈이 SNS를 통해 제임스웹 우주망원경의 새로운 발견을 알리고 대중과 지식을 나누어왔다.

“제임스웹 운영에 참여하는 사람 중에서 한국어로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 저밖에 없잖아요. 보안상 제약이 있긴 하지만 제가 입을 꽉 다물고 있으면 한국에서는 내부의 생생한 이야기를 모두 번역으로만 접하게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걸 깨닫고 나니까 사명감이 생기더라고요.” 손 박사는 제임스웹 1주년을 맞아 강연 등을 위해 짧은 일정으로 한국을 찾았다. 출국을 하루 앞둔 7월24일, 인천 송도에서 그를 만났다.

허블 우주망원경보다 성능 100배 뛰어나

손상모 박사는 제임스웹 우주망원경 강연을 할 때면 본격적인 내용에 들어가기에 앞서 허블 우주망원경 얘기로 문을 연다. 1990년 발사된 허블은 우주망원경의 대명사 같은 존재이다. 지구로부터 535㎞ 상공을 돌며 우주를 관측한다. 우주가 점점 더 빠르게 팽창(가속 팽창)하고 있으며 우주의 나이가 138억 년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허블 전까지 과학계는 우주의 나이를 대략 100억 년 내외로 알고 있었다. 우주망원경과학연구소의 첫출발도 허블이었다. 이 연구소는 나사가 허블 우주망원경을 계획하면서 이를 운영하기 위한 협력기관으로 1981년 설립됐다.

허블이 지구로 보낸 수많은 관측 데이터 중에서도 1995년 찍은 ‘허블 딥 필드’ 사진은 천문학계를 발칵 뒤집어놓았다고 할 만한 충격을 안겼다. ‘딥 필드(Deep Field)'는 말 그대로 ‘깊은 우주’, 즉 먼 거리에서 온 빛을 뜻한다. 당시 허블 망원경 책임자였던 로버트 윌리엄은 아무것도 없는 우주공간을 허블 망원경으로 찍어보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비싼 망원경으로 쓸데없는 짓을 한다는 비난을 무릅쓰고 강행한 모험이었다. 허블은 모래알 하나를 집어 하늘로 손을 쭉 뻗으면 가려질 만한 면적을 240시간(열흘) 동안 관측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텅 비어 있을 줄 알았던 공간에 3000여 개에 달하는 은하들이 타원형과 점 모양으로 빛나고 있었던 것이다. 손상모 박사는 “현대 우주론의 서막을 여는 사건”이었다고 설명했다.

그 뒤로 “더 멀리, 더 선명하게” 보는 것은 천문학자들의 꿈이 되었다. 더 멀리서 온 빛은 더 오래된 빛이고, 오래된 빛을 더 선명하게 본다면 우리의 시작점인 우주의 태초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허블에서 시작된 이 꿈과 노력을 이어받은 후계자가 바로 2021년 12월 발사된 제임스웹 우주망원경이다.

허블은 지구 근처(535㎞)에 떠 있지만 제임스웹은 달보다도 더 멀리 떨어진 지구로부터 150만㎞ 거리에서 우주를 관측한다. 직경은 허블이 2.5m인 데 비해 제임스웹은 6.5m이다. 성능은 최소 100배 더 강력하다고 얘기된다. 손 박사는 물 양동이에 빗대서 설명했다. “비 오는 날 큰 양동이를 밖에 내놓으면 더 많은 빗물을 받을 수 있잖아요. 망원경도 비슷한 원리예요. 구경이 클수록 더 많은 별빛을 모을 수 있어요.”

제임스웹은 성능이 너무 탁월해서 “어디를 찍어도 딥 필드”라는 얘기가 천문학자들 사이에서 나올 정도이다. 망원경이 빛을 감지하는 능력이 워낙 뛰어나 별이나 성운처럼 다른 천체를 찍어도 그 뒤의 머나먼 곳에 있는 은하까지 “의도치 않게” 사진에 같이 찍히는 것이다. 허블은 240시간을 촬영해 ‘딥 필드’ 사진을 완성했지만 제임스웹은 훨씬 짧은 시간 동안 관측을 하더라도 은하로 가득한 사진들을 찍어내고 있다. ‘판도라 은하단’을 찍은 〈사진 1〉은 제임스웹이 30시간 만에 얻어낸 관측 결과이다.

<사진 1> 제임스웹 우주망원경이 찍은 판도라 은하단. ⓒNASA

천문학자들은 제임스웹의 성능이 예상했던 것의 두 배라고 말한다. 손상모 박사는 “반사경의 거울 정렬이 완벽하게 된 덕분”이라고 말했다. 제임스웹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원통형 망원경과 생김새가 판이하게 다르다. 아래에 태양열을 차단하는 거대한 차단막이 있고 그 위에 벌집 모양의 반사경과 렌즈가 달려 있다(〈사진 2〉 참조). 태양열 차단막은 테니스장 1개 크기에 달한다. 이렇게 큰 망원경을 그대로 로켓에 넣어서 발사할 수는 없다. 태양열 차단막과 반사경이 접힌 채로 로켓에 실린 제임스웹 망원경은 발사 뒤 150만㎞ 떨어진 목표 지점까지 날아가며 장비들을 하나하나 펼쳤다.

<사진 2> 제임스웹 우주망원경의 3D 이미지 사진. 노란색 벌집 모양으로 보이는 부분이 지름 6.5m 반사경이다. ⓒNASA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6.5m 크기 벌집 모양 반사경은 육각형 거울 18개로 이루어져 있다. 18개의 작은 거울이 하나의 큰 거울처럼 매끄럽게 이어지도록 펼치는 정렬 작업은 매우 까다로운 과제였다. “제임스웹에서 처음 도입된 방식이거든요. ‘이론상으로는 가능하지만 저 멀리 우주에 망원경을 띄운 뒤에 거울을 펼쳐서 조각조각을 정렬하는 게 과연 될까?’ 많은 사람들이 엄청난 모험이라고 했어요.”

제임스웹은 거울 뒤에 조정장치 126개를 달아 머리카락 굵기의 1만 분의 1 정도로 정밀하게 거울을 움직일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우주망원경과학연구소는 지난해 7월 본격 미션이 시작되기 전 3개월 동안 이 조정장치들을 원격으로 움직여 거울 18개를 하나의 매끄러운 반사판으로 만들고 초점을 맞추는 작업을 수행했다. 망원경의 성능을 좌우하는 이 미션을 손상모 박사가 속한 광학팀에서 맡았다.

그 과정이 순탄하게만 풀린 건 아니다. 거울 정렬을 막 마친 지난해 5월, 우주를 날아다니던 미세운석이 제임스웹의 조각 거울 하나를 정면으로 강타했다. 모래알 크기 입자가 총알의 30배 속도로 날아왔을 것으로 연구자들은 추정한다. 그야말로 “식겁할 만한” 상황이었다. 이 사고는 실제로 거울이 찌그러질 정도의 충격을 남겼으나, 다행히 거울의 굴곡을 조정해 이를 보정할 수 있었다. 손 박사는 같은 팀 동료가 출근 직후 반사경의 상태를 체크하더니 심각한 표정이 돼 긴급회의를 소집했던 아침을 가슴 떨리게 회상했다. 그 이후 제임스웹은 미세운석이 날아오는 방향을 예상해, 만약 부딪치더라도 정면충돌이 일어나지 않도록 그때그때 자세를 변경하는 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우주는 138억 년 전 빅뱅으로 태어났다. 2억 년이 흐른 뒤부터 최초의 별과 은하가 생성되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우리가 관측한 가장 오래된 은하는 2015년 허블 우주망원경이 발견한 134억 년 전 은하였다. 제임스웹은 더 깊은 시간 속에 숨어 있던 약 135억 년 전 은하들을 찾아내고 있다.

손상모 박사는 무엇보다도 초기 은하들을 속도감 있게 찾아내고 있는 것이 고무적이라고 말했다. “사실 그 정도 스케일로 가면 134억 년 전이냐, 135억 년 전이냐는 아주 큰 차이는 아니에요. 그보다는 제임스웹을 통해 더 많은 수의 초기 은하를 발견하고, 더 제대로 관측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해요. 과학이라는 게 샘플 하나로는 말할 수 없잖아요. 1~2개가 아니라 수십 개, 수백 개를 관측해서 원시우주가 어떻게 형성되었고 어떻게 진화해왔는지 규명해내는 것이 제임스웹의 미션이에요.”

빅뱅 이후 ‘원시우주’ 더 자세히 관측할 수 있어 

제임스웹은 인류의 눈에 씌워진 강력한 안경에 비유할 수 있다. 예전에는 너무 흐릿해서 보이지 않거나 보여도 제대로 분간할 수 없었던 우주의 오래된 빛이 과거보다 한층 선명해진 것이다. 아직 더 검증이 필요하지만 지난 1년간 제임스웹의 발견을 통해 과학자들은 우리 예상보다 더 일찍, 더 밝은 은하가, 더 많이 만들어졌을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제임스웹의 시선이 우주의 기원을 탐구하는 머나먼 우주만을 향하는 건 아니다. 지난 1년간 제임스웹은 목성·토성·천왕성·해왕성을 찍은 사진들을 지구에 보내왔다. 태양계 행성으로 지구의 형제·자매라 할 만큼 친숙한 천체들이지만 제임스웹의 적외선 카메라에 비친 모습은 색다르다. 〈사진 3〉은 올해 2월6일 제임스웹이 촬영한 천왕성의 모습이다. 구슬처럼 영롱한 행성 주위로 고리가 또렷이 보인다. 천왕성은 고리 13개를 가지고 있는데 이 중 11개가 사진에 찍혔다. 제임스웹은 우리 눈에 보이는 가시광선을 넘어서 적외선 영역을 관측하기 때문에 낮은 온도에서 나오는 빛을 포착할 수 있다. 다른 망원경으로 찍은 사진들과 달리 얼음알갱이로 이루어진 천왕성의 고리가 선명하게 드러난 이유이다.

<사진 3> 제임스웹이 촬영한 천왕성. 행성을 둘러싼 고리가 선명하게 찍혔다. ⓒNASA

제임스웹 1주년을 앞두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어떤 사진이 공개될지 관심이 쏠렸다. 나사의 선택은 태양계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별 탄생 성운이었다. 7월12일 나사는 ‘로 오피우치(Rhp Ophiuchi)’ 성운의 사진을 공개했다(〈사진 4〉 참조). 지구에서 고작 390광년 떨어져 있는 곳으로 여름철 남쪽 하늘에 뜨는 별자리인 뱀주인자리(땅꾼자리)에 속해 있다. 손상모 박사는 “우주에서 390광년이면 바로 옆집”이라고 말했다. 390광년은 빛의 속도로 390년을 날아가야 도달할 수 있는 거리라는 뜻이다.

<사진 4> ‘로 오피우치’ 성운은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별 탄생 성운이다. ⓒNASA

별은 먼지구름이라 할 수 있는 성운(星雲) 속에서 우주먼지 등이 뭉쳐져 생겨난다. 제임스웹이 찍은 로 오피우치 성운 사진 속에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젊은 별 50여 개가 담겨 있다. 나사는 태양과 질량이 비슷하거나 태양보다 작은 별이라고 설명했다. 먼지로 뒤덮인 성운이 마치 황금빛 동굴처럼 빛나고, 신생 별들이 내뿜는 에너지(제트)가 일으키는 다양한 천체물리 현상이 붉은색을 드리우며 경이로운 사진이 완성되었다.

제임스웹은 “별이 태어나는 순간의 신비”를 포착한 사진도 찍었다. 지난해 11월 공개한 ‘암흑성운 L1527 내의 원시성’ 사진이다(〈사진 5〉 참조). 원시성은 말 그대로 갓 태어난 별을 말하는데, 이 사진의 원시성은 생성된 지 약 10만 년 된 별로 손상모 박사에 따르면 “우주에서는 신생아 수준”이라고 한다. 참고로 태양의 나이는 46억 년이다.

<사진 5>제임스웹은 ‘암흑성운 L1527 내의 원시성’을 찍어 별이 태어나는 순간을 포착했다. ⓒNASA

사실 이 사진에서 원시성의 모습 자체는 보이지 않는다. 모래시계 모양으로 빛이 번져나가는 가운데, 위아래를 잇는 중심부를 자세히 보면 얇게 드리운 검은 선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별이 태어날 때는 이 별을 중심으로 주변의 물질들이 모여들어 일종의 원반이 형성된다. 먼지 등으로 구성된 이 원반을 옆에서 찍으면 이처럼 검은 선으로 나타난다. 사진의 주인공인 원시성은 바로 이 원반 뒤에 숨어 있다. 이제 막 빛을 내기 시작한 상태이기 때문에 아직은 별빛이 원반을 뚫고 나올 만큼 밝지 못한 것이다.

대신 원시성은 태동하는 에너지로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갓 태어난 별은, 마치 힘을 주체하지 못하는 젊은이처럼 양극 방향으로 ‘제트’라 불리는 에너지를 뿜어내게 된다. 에너지 자체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주변의 먼지, 가스와 부딪치며 사진 속 모래시계 같은 현상이 나타난다. 손상모 박사는 제임스웹이 찍은 사진 가운데 ‘최애(최고로 애정하는)’ 사진으로 이 장면을 꼽았다. “별은 보이지 않지만 ‘저기에서 생명이 태어나고 있구나, 별이 꿈틀대고 있구나’ 알 수 있잖아요. 그 느낌이 참 좋더라고요.”

인류의 시야 어디까지 확장시킬까

원칙적으로 제임스웹 우주망원경을 사용할 수 있는 기회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나사는 1년에 한 번씩 전 세계 연구소와 과학자들에게 프로젝트 제안서를 받는다. 제임스웹 우주망원경을 이용해 어떤 연구를 할지, 무엇을 관측할지, 그 영향력이 어떻게 될지 등을 써내는 것이다. 접수가 마감되면 인종과 성별 등 다양성을 고려해 구성된 전문가위원회에서 프로젝트를 선정한다. 유명하거나 경력이 긴 연구자들에게만 기회가 돌아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심사는 블라인드로 진행된다. 경쟁률은 15대 1 정도이다. 이렇게 공모로 모인 전 세계 과학자가 제임스웹 우주망원경을 사용하고, 전체 운영시간 중 10%가량은 우주망원경과학연구소 소장에게 재량이 주어진다. 소장의 재량으로 주어진 시간에 찍은 사진은 대부분 제임스웹 공식 사이트에 공개된다(webbtelescope.org).

손상모 박사는 제임스웹의 여정을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린다고 말했다. “제임스웹의 미션 중에 생명체가 살 수 있는 지구와 유사한 행성을 찾거나, 우주의 시작을 탐구하는 목표는 이미 알려져 있잖아요. 이제 시작 단계이지만 지금까지 제임스웹의 활약을 보면 당연히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물론 이 미션들도 기대되지만 제 가슴을 진짜 떨리게 하는 건 계획에 포함시킬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을 발견해내는 거예요.”

우리는 제임스웹을 통해 또 무엇을 보게 될까? 인류의 시야는 어디까지 확장될까. 최강의 우주망원경이 미션을 시작한 지 이제 고작 1년이 지났다.

김연희 기자 u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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