잼버리에 야구 관람·쇼핑몰 투어? 조직위는 '나몰라라'

CBS노컷뉴스 양형욱 기자 2023. 8. 18. 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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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행 운영' 논란 속 전국으로 스카우트 대피시킨 잼버리 조직위
숙소 뿐 아니라 일정까지 지자체에 떠넘겼더니…대회 취지 무관한 일정 속출
야구경기·오케스트라 공연 관람, 쇼핑몰 투어, 카카오 기념품 받기가 스카우트 활동?
'당장 만들어내라' 책임 떠넘긴 조직위에 일선 공무원만 '울상'
2023 새만금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에서 조기 퇴영한 스카우트 대원들이 서울 강남구 코엑스몰에서 시간을 보내는 모습. 박종민 기자


잼버리 조직위원회가 새만금 야영장을 떠난 세계스카우트 대원들의 일정까지 전국 지자체에 떠넘기면서, 폐영식 당일까지 잼버리 취지와 거리가 먼 '부실 프로그램'들이 속출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조직위는 지난 9일 제6호 태풍 '카눈' 북상에 따라 전북 새만금 잼버리 야영장에서 서울·인천·세종 등 전국 8개 시·도로 잼버리 대원들을 분산 이동시켰다.

기존 계획한 잼버리 대회 일정은 폐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 취재진이 향후 일정에 대한 질문을 쏟아내자, 조직위는 같은 날 보도자료를 통해 "지역 문화·체험 프로그램은 K-컬쳐에서부터 자연환경, 첨단 산업 현장 견학까지 다양하게 마련돼 있으며, '새로운 체험과 모험, 교류'라는 잼버리의 취지를 최대한 살려 운영된다"고 호언장담했다.

하지만 조직위가 '대피' 대신 야영장 '철수'를 선택해 스카우트 대원들이 전국으로 흩어지면서, 자연을 벗삼아 야영하고 다른 문화권의 대원들과 교류하는 잼버리 정신과는 무관한 일정이 '급조'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조직위의 부실한 관리 속에 스포츠 경기 관람, 멀티 플렉스 투어 등 잼버리 취지와는 동떨어진 일정들이 진행됐다.

서울 구로구청에 따르면, 코스타리카 대원 65명은 지난 10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프로야구 키움 히어로즈의 경기를 관람했다. 경기 의왕시는 지난 9일 상주오케스트라 공연을 아르헨티나 대원 71명에게 제공했다.

경기 성남시에서는 지난 11일 핀란드와 스위스, 리히텐슈타인, 필리핀에서 온 대원 231명에게 카카오 계열사가 모인 사무공간인 '카카오아지트'와 현대백화점에 방문해 기념품을 받아가는 일정을 소화했다.

같은 날 경기 광주시에서는 튀니지 대원들이 유명 멀티 플렉스 '하남스타필드' 쇼핑 투어를 진행하는 것으로 하루 일정을 마쳤다.

이번 잼버리는 운영방침은 '4S+ACT(건전한 자아 발달·건전한 국민으로서의 역량 강화·다양한 수용과 스카우트 간 유대·세계평화와 환경개선이라는 목표 실천+모험, 문화, 전통)'로 요약된다.

'참가자들의 꿈을 실현하고,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과 우정을 나누며 사회적, 신체적, 지적, 정서적, 정신적 성장을 이룰 수 있도록 흥미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라는 잼버리 대회 본연의 목적과는 하나같이 다소 거리가 먼 일정들이다.

박종민 기자


이에 대해 갑자기 잼버리 참가대원을 관리할 책임을 떠맡게 된 일선 공무원으로서는 하루만에 프로그램을 급조하느라 대회 취지를 살리기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조직위가 큰 틀에서 프로그램 운영 취지는 정했지만, 문화 프로그램이나 관광지가 마땅치 않은 서울 외곽 지역이나 지방은 매일 매일의 프로그램을 짜는 것조차 급급했다는 것이다.

구로구청 관계자는 "서울시나 행안부에서 100% '전통 문화 체험 프로그램으로 해라'는 지침은 없었다. 타 부서와 협의해서 전통문화와 우리나라를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고민하다가 이것저것 다양하게 넣었다"며 "박물관이나 기념관도 후보에 넣었는데 이동시간이 너무 길어서 프로그램을 소화하려면 반나절이 다 날아가더라"고 토로했다.

성남시청 관계자도 "성남시가 유서 깊은 관광지나 문화가 많지 않아서 시 특성에 맞게 프로그램을 짰던 부분이 있다"며 "충분하게 협의했으면 더 좋은 프로그램을 빨리 제공할 수 있었을 텐데 '당장 만들어 내라'고 하니까 깊이 있는 프로그램을 준비를 못 했다"고 아쉬워했다.

일부 공무원들은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조직위와 소통이 원활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광주시 관계자는 "모든 일정은 지자체가 자체적으로 정했고 경기도에 매일 문화체험 행사 보고를 했다"며 "조직위와는 통화도 안 될 뿐더러 한 번도 통화한 적이 없다"고 답답해했다.

이어  "(튀니지 측이) 입국해서 바로 잼버리 야영장으로 갔기 때문에 쇼핑을 하고 싶다고 얘기를 했다"며 "(하남시가) 청소년 안전 문제가 있어서 전통시장과 멀티 쇼핑몰 중 멀티 쇼핑몰 후보지들을 전달했고 튀니지가 선택한 내용"이라고 해명했다.

의왕시 관계자는 "당시에는 너무 급박한 상황이어서 고민할 틈도 없었다. 게다가 조직위로부터 프로그램과 관련한 공문을 늦게 받았다"며 "공연을 할 수 있는 단체가 별로 없어서 오케스트라를 섭외했고, 다행히 오케스트라 측에서 청소년 눈높이에 맞춘 곡을 선정해 연주해줬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취재진이 잼버리 주무 부처인 행정안전부에 야영장을 떠난 뒤 폐막식을 진행할 때까지 스카우트 대원들에게 제공된 문화 체험 프로그램 현황 등을 요구했지만, 행안부 관계자는 답변을 제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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