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일회용컵 보증금제 8개월…불편 감수하며 서서히 적응중
"형평성 위해 제주도 전체 확대 시행해야" 조례 개정 추진
(제주=연합뉴스) 전지혜 기자 = "처음이 어려웠지, 한번 해보니까 할만하던데요."
제주시에 사는 60대 주부 황모 씨는 일회용컵 보증금제(이하 컵보증금제)가 시행된 지 8개월여가 지난 최근에야 직접 컵을 반납하고 보증금을 돌려받아봤다.
황씨는 그동안 카페에서 보증금 300원을 내고 받은 일회용컵을 일반 재활용품으로 배출하거나, 자녀에게 반납을 부탁해왔다.
앱을 설치해 가입하는 과정이 어렵게 느껴졌고, '어느 카페에선 같은 브랜드 컵만 받는다'고 하는 이야기도 들어서 반납처를 알아보기가 꺼려졌다고 한다.
그러나 한번 해보니 그리 어렵진 않았다.
자원순환보증금 앱을 설치해 가입하고, 보증금을 환급받을 계좌를 등록하는 과정은 자녀의 도움을 받았다.
이후 직접 반납해보니 앱을 켜서 회수기에 바코드를 찍고, 컵에 붙어있는 라벨지의 바코드를 찍기만 하면 돼서 생각보다 어렵지는 않았다고 한다.
황씨는 "반납처 고민할 것 없이 가까운 재활용센터에 가면 되고, 동네 주민센터와 대형마트 등에도 반납기가 있으니 큰 불편함은 없다"고 했다.
게다가 탄소중립포인트제에 가입하니 컵 1개를 반납하면 보증금 300원에 탄소중립포인트 200원까지 총 500원을 돌려받는 꼴이라며 "환경 보호에 동참하면서 돈을 버는 느낌이 든다"고 뿌듯해했다.
컵보증금제를 시행하지 않는 지역에서 온 관광객들도 속속 참여하고 있다.
제주국제공항 3층 대합실 한편에 마련된 반납처 '오멍가멍에코존'에서는 관광객들이 컵을 반납하고 보증금을 돌려받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이곳에는 다회용컵 반납기 3대와 일회용컵 반납기 1대가 있다.
일회용컵 반납기 옆에는 도우미가 배치돼 방법을 안내하고 있었다.
한 관광객 가족은 "음료를 산 카페에서 알려줘서 앱을 설치했고, 여기 와보니 도우미분이 남은 음료를 비우고 컵만 씻어서 갖고 오라고 해서 안내에 따라 반납했다"며 "도움을 받아서 하니 어려운 것이 없었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왔다는 한 20대 관광객은 "제도는 알고 있지만 이번에 처음 해봤다. 여행 중 이미 카페에서 안내받아 기기로 반납해봐서 방법을 알고 있다"며 도움 없이 직접 컵을 반납했다.
18일 제주도에 따르면 제주와 세종에서는 지난해 12월 2일부터 컵보증금제가 시범 운영되고 있다.
컵보증금제는 카페 등 식음료 프랜차이즈 가맹점에서 일회용컵에 음료를 받으려면 보증금 300원을 음료값과 함께 결제했다가 나중에 컵을 반납하면 돌려받도록 한 제도다.
적용 대상은 전국에 매장이 100개 이상인 프랜차이즈 중 제주·세종의 가맹점이다.
지난달 기준 제주에서는 493곳이 해당한다. 이 중 스타벅스 등 118곳은 다회용컵(리유저블컵)을 사용하거나 캔으로 전환했고, 나머지 375곳이 일회용컵을 사용 중이다.
제도 시행 초기 보증금제를 이행하지 않는 매장이 많았지만, 참여를 유도하는 과정을 거쳐 지난 6월 7일부터 과태료를 부과하기로 하면서 현재는 대상 매장 대부분이 제도를 이행하고 있다.
"형평성에 어긋나며, 영세한 매장에 너무 큰 부담이 된다"며 보이콧하던 제주프랜차이즈점주협의회도 "제도 취지에는 공감한다"며 지난 4월 도내 전체 매장 대상 시행, 라벨 부착 방식 개선, 홍보 강화, 가맹본부 책임규정 마련 등 몇 가지 조건을 걸고 동참을 선언했다.
현재까지 제주에서 제도 미이행으로 과태료가 부과된 매장은 7곳이며, 이 중 2곳은 과태료 부과 후 동참하고 있다고 도 관계자는 전했다.
게다가 공공반납처와 무인회수기가 확대돼 시행 초기 반납이 불편했던 점도 많이 개선됐다.
현재 제주에는 주민센터, 공항, 재활용도움센터 등 공공반납처 98곳이 있으며, 매장 등에 무인회수기도 300여대 설치됐다.
초기에는 자사 브랜드 또는 해당 매장 컵만 회수하는 매장들이 많았으나, 현재는 여러 매장이 타 브랜드 컵도 받는 이른바 '교차반납'을 허용하고 있다. 교차반납을 받는 매장에는 회수한 컵 1개당 10원씩 지원된다.
대상 매장도, 소비자도 애써 불편을 감수하며 차차 적응해가는 가운데 앞으로의 과제는 무엇이 있을까.
우선 소비자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제도 홍보가 더 필요하다.
각 매장이 주문대나 키오스크 주변 등에 보증금제 홍보물을 부착해놓고 문의하는 고객에게 일일이 응대하는 등 제도 홍보와 안내마저 매장의 부담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제주와 세종 외에 현재 제도가 시행되지 않는 지역에서는 보증금제를 잘 모르다 보니 관광객이 많은 제주도에서는 홍보와 안내가 중요하다.
일부 발생하고 있는 '부정 반환'도 문제다. 일회용컵 1개에 보증금제 라벨 스티커 여러 개를 옮겨붙이는 등 컵은 반납하지 않고 스티커만 떼어내 보증금만 반환받고 컵은 반납하지 않는 것이다.
자원순환보증금관리센터는 '부적정한 방법으로 보증금을 반환받는 경우 보증금 반환 서비스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고 공지하기도 했다.
현재는 이런 꼼수 반납을 제재할 방법이 없는 터라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근본적인 해결을 위한 제도 전면 시행이다.
최근 감사원은 공익감사를 통해 컵보증금제 전국 확대 방안을 마련할 것을 환경부 장관에게 통보했다. 환경부도 감사 결과를 수용하고 전국 확대 방안을 준비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현행 '일회용컵 보증금 대상 사업자 지정 및 처리지원금 단가 고시'는 세종과 제주에서 일회용컵 보증금제를 시작한 작년 12월 2일 이후 3년을 넘지 않는 범위에서 전국 확대 방안을 마련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전국 시행 시기가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지만 제주도는 자체적으로 도내 확대 시행을 추진 중이다. 현재 조례 개정을 위한 연구용역이 진행되고 있다.
앞서 프랜차이즈점주협의회도 도내 전면 시행을 조건으로 내걸고 참여하고 있다.
도는 조례 개정을 통해 프랜차이즈 사업자(전국 100개 이상 매장 보유)에 한정된 일회용컵 보증금제도 의무 대상 사업장을 지역 브랜드 매장이나 개인이 운영하는 카페 등까지 대폭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제주도 관계자는 "저렴한 가격대에 테이크아웃 위주의 매장은 매출 1만원을 올리려면 컵 3∼4개를 쓰게 된다"며 "라벨지 붙이고, 컵을 반납받고, 보증금을 반환하는 등 가욋일이 생기고 소비자와의 갈등도 생기는데, 원가 구조도 빡빡하고 매장도 협소하다 보니 부담이 더 크게 느껴질 것"이라며 매장의 어려움에 공감했다.
이어 "형평성 등의 문제 해소를 위해 빨리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며 "제도 대상 매장들과의 형평성을 고려해 매장 범위나 이행 시기를 결정할 것"이라고 조례 개정 방침을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동참 매장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은 소비자와의 갈등이다. 일부 매장만 대상으로 하다 보니 제도에 대한 불만이 매장에 쏟아지기 때문"이라며 도내 모든 매장을 대상으로 시행한다면 소비자 불만이나 갈등이 일부 매장을 향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atoz@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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