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걱정 없이 사는 법[이제학의 힐링카페]

기자 2023. 8. 18.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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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걱정 없이 사는 법이 있을까?

우연히 <평생 걱정 없이 사는 법>이라는 책의 제목이 마음에 들어 읽어보았다. 페이융 지음, 허유영 옮김으로 부재가 ‘마음이 지치고 심란할 때 읽는 반야심경의 지혜’이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불경을 접해보지 못했고 불교서적을 읽어 본 바가 없어서 많이 심오하고 딱딱해 어려울 것이라 생각하고 긴장하면서 책장을 넘겼다. 그런데 어라(?) 이게 별게 아니고 아주 익숙하게 넘어간다. 거의가 다 아는 내용이고 별반 신기하거나 생소한 내용이 없다.

성경에 나오는 말씀 내용과 그렇게 큰 차이를 발견할 수가 없다. 진리는 결국 하나라는 느낌이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세기 1장 1절). 이거 하나만 다르고 나머지는 거의 같다는 생각이 든다. 기독교, 불교, 카톨릭의 고수들이 함께 자리를 하면 “결국 내 마음에 그대 마음에 그분이 계시는 것 아니냐고 서로를 존중한다.”는 말씀이 생각난다.

이제학 힐링산업협회장



이 책의 서문에서 페이융은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우리는 고통의 바다 위에서 허우적거리고 있고, 물결이 밀려오듯 수많은 문제들이 연달아 닥친다. 우리는 아직도 힘들고 피곤하다. 그래서 반야심경이 내놓은 답은 이것이다. “해답은 없다.”

이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부강한 나라를 만들고 부귀영화를 한 몸에 받아 부인이 칠백 명에 첩이 삼백 명으로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것은 모두 누려본 솔로몬 왕이 “헛되고 헛되니 헛되고 헛되도다.”라고 한 뒤 “세상만물이 피곤하고 해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면서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인간으로서는 알 수가 없다”고 했던 것과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나는 사우나를 좋아해서 일주일에 한번 씩은 동네 목욕탕을 간다. 온탕에 몸을 푹 담그고 있으면 온 몸의 피로가 스르르 풀리는 느낌이 너무 좋다. 탕에 들어가면 눈을 감고 여기가 내가 지금까지 가본 가장 좋은 온천에 왔다고 생각하고 즐거운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서 내가 진짜 천국에 온 기분을 맛본다. 눈을 뜨면 동네 목욕탕이지만 눈을 감으면 무궁무진한 미지의 세계로 갈 수 있는 것이다.

교회를 30년 넘게 다니고 성경을 세 번 정독을 했는데도 가장 힘든 것 중의 하나가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다는 것이다. 내가 보고 있는 것도 믿을 수가 없는데 보이지 않는 것을 믿으라니. 성경의 요한복음에도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는 제자 도마에게 예수님이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요 21:27)”시며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고 사도 요한은 기록하고 있다.

한편 『평생 걱정 없이 사는 법』 이 책에서 페이융은 “만약 눈, 코, 귀가 없다면 이 세상이 어떻게 될까?” 라면서 “이 가설은 또 우리를 무한한 체험으로 인도한다.”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이른바 ‘세계’라는 말은 인간이 감지할 수 있는 세계 일 뿐이고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또 다른 ‘존재’가 우리와 동시에 존재하고 있지만 우리는 그들이 있음을 전혀 알지 못한다. 우리는 우리 눈에 보이는 것만 보지만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무한하다고 주장한다. 이 또한 예수님이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는 말씀과 괘를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아울러 페이융은 이 책에서 결론적으로 보이는 곳 너머 광활한 ‘무’의 세계가 있다면서 아인슈타인의 말을 인용한다. “종교는 신비로운 경험에서 탄생한다. 종교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의 존재를 인식하고, 가장 심오한 이성과 가장 찬란한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이다.” 결국 기독교나 불교, 카톨릭의 ‘진리는 하나’라는 생각이 다시 한 번 들게 한다.

짝과 종교가 달라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다. ‘다른 종교와 어떻게 관계를 가져야 하는가?’에 대해 강원용 목사님은 “우선 겸손한 태도를 갖고 많이 배워야 한다. 다른 종교인들의 신앙을 배운다고 자신의 신앙이 없어진다면, 그 정도의 신앙은 차라리 없는 게 낫다”고 말씀했다. 참 깊은 내공이 느껴진다. 굳건하게 자기 믿음을 지키면서도 겸손하게 타인이 믿는 종교를 인정할 줄 알아야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으로서 평생 걱정 없이 평화롭게 사는 지혜가 아닐까?

<이제학 사단법인 힐링산업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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