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어와 등용문, 한국 바둑과 응씨배[응씨배 특집①]
‘용문에 오른다’는 뜻의 등용문은 성공하기 위한 절호의 관문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황하 상류의 한 협곡에 위치한 용문에 물고기, 특히 잉어가 통과하면 용이 돼 승천한다는 전설이 있는데 이에 빗댄 말이다.
한국 바둑이 세계에 그 명성을 떨치게 된 등용문이 있다면, 단연 응씨배를 들 수 있다.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세계 바둑의 주류는 일본 바둑이었다. 바둑은 중국에서 태동해 한반도를 거쳐 일본으로 전파됐는데, 바둑을 현대화시켜 지금의 바둑에 이르게 한 것이 바로 일본이었다.
일본 바둑은 1980년대 중반 들어 중국 바둑으로부터 정면 도전을 받았다. 당시만 해도 변방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중국 바둑은 1984년 일본기원의 주도로 성사된 중일 슈퍼 대항전에서 녜웨이핑 9단의 대활약을 앞세워 일본을 꺾고 우승하는 쾌거를 달성했다. 녜웨이핑은 4회 대회까지 일본 기사들을 상대로 11연승을 질주하며 ‘철의 수문장’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이렇게 일본과 중국이 바둑 패권을 두고 첨예하게 다투던 때, 한국 바둑은 변방 취급도 받지 못했다. 당시 한국 바둑의 1인자였던 조훈현 9단도 일본에서 바둑을 배운 ‘유학파’였다.
이런 상황에서 1988년 대만 재벌인 고(故) 잉창치 선생의 주도에 응씨배가 창설됐다. 아직까지도 단일 대회로는 최고액인 40만 달러(약 5억3600만원)의 우승 상금이 걸려있는 응씨배는 4년마다 열려 ‘바둑 올림픽’이라는 영예로운 호칭이 붙어있다.
1회 대회 때 한국 바둑이 응씨배에서 받은 취급은 ‘하수’ 수준이었다. 당시 일본이 6명, 중국이 4명, 대만이 3명의 기사를 출전시킨데 비해 한국은 미국, 호주와 함께 1명 밖에 나서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이 중국이나 일본이 우승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한 것과는 다르게, 결과는 한국 대표로 나선 조훈현의 우승으로 끝이 났다. 일본과 중국의 내노라하는 기사들을 줄줄이 꺾었고, 결승에서는 중국의 자랑인 녜웨이핑과 5국까지 가는 대접전 끝에 우승을 차지했다. 한국 바둑의 자존심을 살린 조훈현은 귀국 후 김포공항에서 마포까지 카퍼레이드를 하는 영광을 누렸다. 조훈현 이후 한국 바둑에서 카퍼레이드를 한 기사는 없다.
조훈현의 응씨배 우승 후 한국 바둑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1992년 2회 대회에는 무려 5명의 한국 기사가 출전했고, 조훈현이 16강에서 탈락하는 등 수많은 이변이 일어난 끝에 ‘된장 바둑’ 서봉수 9단이 우승을 차지하며 다시 한 번 한국의 기상을 높였다. 이후 유창혁 9단(3회 대회 우승), 이창호 9단(4회 대회 우승), 최철한 9단(6회 대회 우승)이 우승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놓으며 한국은 응씨배 최다 우승 국가(5회)로 우뚝섰다.
한국 바둑의 성장은 많은 나비 효과를 불러왔다. 당시 일본과 중국 사이에서 벌어지던 중일 슈퍼 대항전은 조금씩 ‘2부리그’ 취급을 받기 시작했고, 결국 1996년을 끝으로 폐지됐다. 이외 양국 사이에 펼쳐지던 교류전 역시 줄을 이어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반면 한국은 조훈현의 뒤를 이은 이창호가 ‘패자’로 올라서면서 명실상부한 세계 최강이 됐다.
2016년까지 8번이 열린 응씨배 결승에 한국 기사가 이름을 올려놓지 못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다만, 최근 두 번의 대회에서는 모두 중국 기사들이 우승을 차지해 한국이 약간 밀리는 모습을 보인 감도 없지 않다. 그 두 번의 대회 모두 희생양이 된 기사가 당시 한국 바둑 1인자였던 박정환 9단이라 더 뼈아팠다.
2020년에 시작한 9회 대회는 현재 결승전만 남겨놓고 있다. 누구나 인정하는 한국 바둑의 최강자인 신진서 9단이 중국의 셰커 9단과 3번기로 우승을 다툰다. 원래 2021년에 열려야 했던 결승인데, 코로나19 팬데믹에 ‘대면 대국’을 고집한 주최 측의 주장에 따라 계속 연기되어오다 이번에 열리게 됐다.
윤은용 기자 plaimsto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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