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일군 공장 닫습니다”… 벼랑 끝 中제조업, 줄도산 공포

베이징=이윤정 특파원 2023. 8. 18.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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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제조업 중심지 선전서 공장 줄줄이 폐업
수출·내수 부진에 자금줄까지 끊겨 직격타
中 정부 “경제 회복세 개선되고 있다” 고집

“지금까지 동료 여러분의 노력에 감사를 표합니다. 세계 경제 침체로 주문량이 감소하는 가운데 코로나19까지 겹쳐 회사 사정이 더욱 악화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회사를) 조기 해산하게 됐으니 이해 바랍니다.”

지난 15일 중국 광둥성 선전시에 있는 ‘신안전기(선전)유한공사’는 이같은 내용의 통지문을 전 직원에게 발송했다. 회사는 “주주총회에서 조기 해산 결정이 내려져 오는 18일부터 운영을 중단할 예정”이라며 “관련 규정에 따라 직원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할 예정이며, 18일 보상금 산정 마감이 끝나면 모든 직원의 근로 계약은 종료된다”고 밝혔다.

중국 제조업의 중심지, 광둥성 선전시를 수십년간 지탱해 온 기업들이 쓰러지고 있다. 중국 수출 전선이 무너진 가운데 코로나19 이후 내수마저 망가지자 손해가 눈덩이처럼 커진 것이다. 여기에 제조업 불황으로 자금 공급까지 경색되면서 기업들이 청산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이같은 상황은 경제지표 곳곳에서도 확인되고 있지만, 중국 정부는 “전반적인 회복세는 유지되고 있다”며 “서방 언론이 코로나19 이후 경제 회복 과정의 문제를 과장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중국 광둥성 선전시에 있는 ‘신안전기(선전)유한공사’가 직원들에게 보낸 통지문. 오는 18일부터 회사 문을 닫는다는 내용이다./바이두 캡처

◇ 제조업 중심지 선전, 공장 폐업 잇따라

18일 증권시보, 제일재경 등 중국 현지매체에 따르면 홍콩계 자본으로 설립된 신안전기는 1985년부터 커피포트, 전기오븐, 건조기 등 소형 가전제품을 양산해 미국, 유럽 등에 수출해 왔다. 중국에서 판매되는 필립스 커피머신의 위탁생산도 맡고 있다. ‘가공무역 수출 100대 기업’, ‘노동관리 선진기업’ 등을 수상하는 등 정부로부터 인정받아 생산규모를 지속 늘려왔다. 2년 전까지만 해도 직원 규모는 5000여명에 달했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사세가 급격히 기울기 시작했다. 제일재경은 “해외 주요국의 높은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소비가 억제되면서 소형 가전의 수요가 줄었다”고 설명했다. 수출량이 줄어들자 신안전기는 내수 시장에 공을 들였지만, 중국 소비자 역시 가전제품 소비를 꺼리면서 실적이 급격히 악화했다. 수주량이 급감하자 회사는 정리해고를 통해 직원 규모를 900명대까지 줄였지만 경영난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선전시에서 문을 닫는 제조업 공장은 신안전기뿐만이 아니다. 네스카페, 로레알 등 글로벌 브랜드 제품의 포장을 담당했던 ‘선전관다인쇄공장’ 역시 설립 20년 만인 최근 생산을 완전히 중단했다. 1986년 문을 연 ‘선전선리완구공장’은 직원 급여와 공급업체 납입대금을 해결하지 못한 채 지난 6월 폐업했고, 대형 플라스틱 제품을 생산하는 ‘푸화더플라스틱제품유한공사’ 역시 6월부터 청산 절차를 밟고 있다.

증권시보는 “올해 초부터 선전시의 많은 기업이 폐업을 선언하고 있다”며 “산업 밸류체인의 변화에 맞춰 업그레이드에 실패하면서 주문이 감소하는 가운데 코로나19로 인해 자본 공급이 끊어지면서 시장에 복귀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 중국 제조업 종사자는 “경제 부진이 길어질수록 첨단기술, 전문기술을 보유하지 못한 기업은 도태될 것”이라고 말했다.

◇ 경제지표 곳곳 빨간불인데… 中 “서방 언론이 과장하고 있다”

중국 수출 제조업이 무너지고 있다는 신호는 경제지표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최근 중국 국가통계국이 발표한 7월 산업생산은 전년 동기 대비 3.7% 늘어나는 데 그쳤다. 올해 들어 4월(5.6%)까지 확장세를 거듭하던 산업생산 증가율은 5월부터 급격히 둔화하고 있다. 제조업 경기 동향을 나타내는 구매관리자지수(PMI) 역시 7월 49.3에 그쳐 4개월 연속 ‘경기 수축’을 뜻하는 50 미만에 머무르고 있다. 중국의 7월 수출액은 1년 전보다 14.5% 줄어 3년 5개월 만에 최악의 수준을 기록했다. 중국이 ‘세계의 공장’이라 불리는 것은 그만큼 수출 제조업 의존도가 크다는 것을 뜻한다. 이들이 무너지면 고용이 악화하고, 소득이 줄어 소비도 부진해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부동산개발업체들의 연쇄 디폴트(채무불이행) 우려까지 겹치면서 중국 경제 침체 흐름이 짙어지고 있지만, 중국 정부는 여전히 ‘회복 경로에서 이탈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전날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중국 경제의 회복세는 개선되고 있으며, 여전히 세계 경제 성장의 중요 엔진”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 서방 정치인과 언론이 중국의 포스트 팬데믹 경제 회복 과정에서 나타나는 주기적 문제를 과장해 왔다”며 “결국 그들이 틀렸다는 것이 분명히 증명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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