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얼굴의 지주택]② 3차례 법 개정에도 ‘실효성’ 의문... “보완 보다는 폐기해야”

채민석 기자 2023. 8. 18. 06:0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도정법 아닌 주택법 적용... 감시·규제 ‘느슨’
불명확한 업계 용어... 수요자 현혹
협력업체 선정 기준無... 사기·횡령 부추겨
전문가들 “보완해도 ‘양날의 검’... 폐기가 마땅”

한 때는 저렴한 분양가로 서민들의 ‘내 집 마련’ 수단으로 주목 받았다. 하지만 조합의 빈번한 사기·횡령과 수억원의 추가 분담금 등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지역주택조합의 현주소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은 무엇인지 3회에 걸쳐 짚어본다. [편집자 주]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하는 지역주택조합의 폐단을 방지하기 위해 3년전 관련법이 개정됐지만 여전히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기 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조합원 모집 요건을 강화하고 탈퇴를 보다 쉽게 하도록 규정을 보강했지만, 주로 횡령·사기 등에 따른 피해가 조합 설립 이전 단계에서 발생한다는 점에서다.

18일 조선비즈의 취재에 따르면 지역주택조합의 법적 근거가 되는 주택법은 2017년과 2019년, 2020년 총 3차례에 걸쳐 개정이 됐다. 이 과정을 통해 조합 탈퇴 및 환급 규정, 조합원 모집신고제도, 연간 자금운용 계획·집행실적 제출, 조합원 모집 요건 강화 등의 내용이 마련됐다.

하지만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조합 설립 이후의 탈퇴 방법이나 환급 방안 등이 개정안에 반영됐는데, 대부분의 피해는 조합 설립 이전 단계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설사 조합원 구성 이후 범죄가 발생해 계약금을 돌려받으려고 해도 별도의 ‘처벌 조항’이 없는 상황이다. 개별적으로 고소나 고발을 통해 법적으로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

또 지역주택조합은 사업 기간이 10년 이상 걸리는 경우가 많다. 2017년 이전에 구성된 조합은 개정안이 아닌 기존 규정을 적용 받는다는 점에서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사업장들이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의 적용을 받는 일반 재건축 등 도시정비사업과 달리, 지역주택조합의 법적 근거가 주택법이라는 점이 근본적 한계다. 도정법은 정비사업에 필요한 근거들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지만, 주택법은 정비사업에 비해 보다 포괄적 개념으로 규정돼 있다. 감시나 규제가 비교적 느슨할 수 밖에 없다.

이를 테면, 정비사업은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정비계획 수립 및 정비구역 지정을 해야 한다. 이후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소속 지방자치단체에 설립 승인 요청을 받아야 효력이 발생한다. 반면, 지역주택조합은 조합원 자격을 갖춘 20인이 모이면 특별한 승인 없이 추진위원회라는 가칭을 사용할 수 있다.

또 정비사업은 조합설립인가를 받고 시공사를 선정했더라도 사업시행인가, 관리처분계획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러나 지역주택조합은 추진위를 구성한 뒤 바로 협력업체(업무대행사)와 시공예정사 선정 및 조합원 모집에 들어간다.

특히 협력업체 선정 부분은 그야말로 ‘깜깜이’로 진행된다. 도정사업의 경우 정기적으로 감사를 받고, 공개입찰을 통해 협력업체를 선정해야 한다. 그러나 지역주택조합은 협력업체 선정과 관련한 구체적 기준이 마련돼 있지 않다. 자격 요건도 ‘자본금 5억원 이상’으로 낮다. 이에 일부 지역주택조합은 협력업체와 공모해 조합원들을 상대로 사기나 횡령을 저지르기도 한다.

지역주택조합들이 사용하는 업계 용어도 혼선을 가중시킨다. ‘시공예정사’는 정식으로 계약을 한 것이 아닌 말 그대로 ‘예정사’의 개념이다. 정비사업에서 공고를 통해 선정된 시공사와는 결이 다르다. 그런데 지역주택조합 중 일부는 유명 시공사를 언급하며 “시공사 선정을 완료했다”고 한다.

이 밖에도 지역주택조합은 토지소유자 80% 이상의 ‘사용권원’을 확보해야 조합설립 인가를 받을 수 있는데, 최종 사업계획 승인을 받으려면 95% 이상의 ‘토지소유권’을 확보해야 한다. ‘소유권’은 ‘사용권원’과 다르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사용권원은 단순히 토지 사용 허락을 받는 것이고, 소유권은 잔금을 지불하고 넘겨받은 것이다. 그러나 일부 지역주택조합은 사용권원만 확보했음에도 ‘토지확보 완료’라는 문구로 현혹한다. ‘사용권원’ 확보를 증명하기 위한 서류의 종류도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지 않다.

만약 사업이 무산되고 조합이 해체됐다고 해도 뚜렷한 구제 방안이 없다. 지역주택조합은 조합원이 자본을 투자해 해당 지역의 토지를 매입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투자자가 사업 무산 이후 투자금이나 가입비 등을 회수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조합이 조합원 명의로 사업비를 대출하거나 횡령을 저지르는 경우에는 부채 또한 감당해야 한다. 반면, 재개발 조합원은 자신의 토지를 소유한 상태로 조합원 자격을 얻기 때문에, 사업이 취소돼도 본인의 자산은 유지할 수 있다.

일러스트=이은현

이에 전문가들 사이에선 지역주택조합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다만 지역주택조합이 서민들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으로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제도 자체는 유지하되, 관련 규정을 보강하고 안전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최황수 건국대 부동산학과 겸임교수는 “현재로서는 도정법이 존재하기 때문에, 지역주택조합과 관련한 큰 틀에서의 개선안이 나오지 않는 이상 존속의 이유가 없다고 본다”며 “다만, 폐지가 어렵다면 지역주택조합에 대한 특정한 지휘 감독 기능을 추가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역주택조합제도 폐지 촉구 건의안을 발의한 최동원 경상남도의원은 개선안을 마련하고자 하는 노력 자체가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안전장치를 마련하면 가뜩이나 느린 사업 속도가 더 늦춰질 수 있고, 법 개정이 없다면 피해자가 꾸준히 양산된다는 점에서다.

최 의원은 “토지사용 승낙서 동의율을 높이는 등 안전장치를 위한 기준을 강화하면 오히려 사업이 더욱 지연되는 사업장이 늘어날 것이다. 반대로 사업 속도를 위해 기준을 완화하면 조합과 협력업체들이 법의 맹점을 이용할 것”이라며 “지역주택조합제도 자체가 폐지되는 것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강조했다.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