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프로는 16배 먹었는데”... 18개월 투자에도 원금만 건진 천보 메자닌 투자자들
제로금리·할증 발행·리픽싱 삭제 등 사측에 유리한 조건으로 투자자 모집
채권자 “추후 원금 회수만 가능할 듯... 금리 고려하면 실패한 투자”
이차전지 소재 기업 천보의 전환사채(CB), 신주인수권부사채(BW) 등에 투자한 기관투자자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원금회수 시기를 고심하고 있다. 이자율 0%, 전환가액 할증 발행, 리픽싱 배제 등 천보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조건임에도 2차전지 기업임을 이유로 대규모 자금을 투자했는데, 기대했던 것과 달리 주가가 급락한 탓이다. 투자자 입장에선 잘돼야 원금 챙기는 수준이 됐다. 돈이 묶이는 기간을 고려하면 사실상 손해라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같은 기간 에코프로와 비교하면 박탈감은 더 심해진다. 지난해 2월 에코프로 주가는 7만원 선에서 움직이다가 최근 111만원 선으로 16배 급등했다.
18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전날(17일) 천보 주가는 14만원 선으로 떨어졌다. 올해 4월 최고 29만9500원까지 오른 것을 고려하면 딱 절반이다. 16일에는 2분기 실적 발표 여파로 17% 급락하기도 했다. 영업이익이 시장기대치를 미치지 못했고, 3분기 실적도 부진할 것이란 분석이 나오면서 주가가 크게 밀렸다.
증권업계에서도 목표가를 줄줄이 낮췄다. 삼성증권 리서치센터는 가장 낮은 목표가인 16만원을 제시하며 “지난 5월, 6월 군산공장에서 염소가스 누출 사고가 발생하면서 카보네이트(FEC), 바닐렌 카보네이트(VC) 양산 가동이 예상보다 늦어지고 있다”며 “F전해질(LiFSI)의 경우도, 완공 시점을 11월로 늦춰 예정대로 정상 가동될 수 있는지 따져봐야 하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천보는 중국 판매 비중이 높은 점도 우려 요인으로 꼽힌다. 올해 1분기 매출액 중 30%가 중국에서 발생했다. 그러나 최근 중국 전기차 수요 둔화로 인한 재고 부담, 현지 업체들과 가격 경쟁 심화 등이 부각돼 실적 부진으로 이어졌다.
천보는 중대형 리튬전지용 전해질인 F전해질을 상용화하면서 주목받은 회사다. F전해질은 이차전지 4대 소재 중 하나인 전해액 첨가제 육불화인산리튬(LiPF6)을 대체하는 필수 재료다. 이 전해질과 다른 재료를 배합해 전해액을 만든다. 전해액은 양극재, 음극재, 분리막과 함께 배터리 4대 요소로 꼽힌다.
주가가 절반 수준으로 떨어지자, 메자닌 투자자들은 한숨을 쉬고 있다. 천보는 지난해 2월 3000억원 규모의 자금조달을 진행했다. 아우름자산운용, 브레인자산운용, 디에스자산운용, 안다자산운용, 타임폴리오자산운용 등 다수 운용사, 증권사 대상으로 2500억원 규모의 CB와 500억원 규모의 BW를 발행했다.
투자자들에게는 불리한 조건이었다. CB, BW 모두 표면이자율, 만기이자율 0%로 설정됐다. 채권자들이 CB, BW를 보유해 받는 이자가 없다는 의미다. 전환가액도 당시 주가보다 10%가량 높은 31만8150원으로 설정됐다. 천보 주가가 31만8500원를 넘어서 전환청구권을 행사해야 이득을 보는 구조다. 리픽싱 조건도 없다. 주가가 떨어지더라도 주식을 더 받거나 전환가액을 낮출 수 없다.
지난 2월 22일부터 채권을 주식으로 바꿀 수 있지만, 무용지물이다. 주가가 반토막 나면서 어떤 채권자도 전환청구권, 신주인수권을 행사하지 않았다. 전환가액 기준으로 주식을 바꾸면 17일 종가(14만7900원) 기준으로 53% 손실이다.
풋옵션 행사일은 2025년 2월부터 가능하다. 1년 6개월 후에도 주가가 31만8500원을 넘지 못한다면, 겨우 원금만 돌려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는 의미다.
천보의 기술력, 성장성을 믿고 거액을 베팅한 기관투자자들은 사실상 실패한 투자라고 평가했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올해 이차전지 업종이 오를 때 천보는 같이 못 올랐는데, 떨어질 땐 배로 떨어졌다”며 “기준금리 3.5% 시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지난해 2월 메자닌을 직접 받은 투자자들은 대거 물린 상태라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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