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률 5할도 무너졌다..판단 착오가 불러온 양키스의 30년만 최악 시즌[슬로우볼]
[뉴스엔 안형준 기자]
승률 5할도 무너졌다. 최고 명문 구단의 자존심은 또 한 번 구겨지기 직전이다.
뉴욕 양키스는 8월 17일(한국시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 원정경기에서 0-2 패배를 당했다. 시즌 61번째 패배이자 최근 5연패. 이날 패배로 양키스는 60승 61패를 기록했다. 5할 승률이 무너진 것이다.
이날 양키스는 올시즌 처음으로 5할 승률 미만으로 떨어졌다. 개막전을 승리하며 시즌을 시작한 양키스는 승률이 정확히 5할이 된 날은 있었지만 5할 승률이 무너진 적은 없었다. 5월 중순에는 승률이 6할까지 올랐던 양키스지만 이제는 승패 마진이 마이너스인 팀이 됐다.
양키스는 이제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에서 유일한 4할 승률 팀이 됐다. 지구 선두인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승차는 무려 14경기. 지구 4위인 보스턴 레드삭스와 승차도 3.5경기다. 와일드카드 레이스에서도 3위 토론토 블루제이스에 6.5경기차로 뒤쳐졌다. 사실상 포스트시즌에서 하루하루 멀어지고 있다.
굉장한 굴욕이다. 핀 스트라이프 유니폼을 앞세운 양키스는 야구계 최고의 명문 구단. 압도적인 월드시리즈 27회 우승 경력을 가진, 그야말로 메이저리그를 상징하는 강팀이다. 하지만 이제는 꼴찌 탈출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캡틴' 데릭 지터의 데뷔시즌이던 1995년부터 지난해까지 28년 동안 양키스는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가 단 4번 뿐이었다. 해당기간 5차례 월드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고 15차례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정상에 올랐다. 양키스의 마지막 '루징 시즌'은 벌써 31년 전인 1992년. 그리고 양키스가 지구 최하위로 시즌을 마친 것은 그보다도 더 전인 1990년이 마지막이다.
아무리 부진해도 지구 중위권, 위닝 시즌은 '기본'으로 해내는 팀이 바로 양키스였다. 하지만 양키스는 올해 31년만의 최악 굴욕 시즌으로 한 걸음씩 향해가고 있다.
처참한 실패가 더욱 굴욕적인 것은 그 어느 때보다 더 의욕적으로 준비한 시즌이었기 때문이다. 양키스는 올시즌에 앞서 애런 저지와 9년 3억6,000만 달러 재계약을 맺었고 카를로스 로돈을 6년 1억6,200만 달러 FA 계약으로 영입했다. 저지에게 안긴 '연평균 4,000만 달러'는 메이저리그 역대 최고액 신기록을 쓰는 계약이었다.
그리고 양키스는 팀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가장 비싼 선수'가 된 저지를 '캡틴'에 공식적으로 임명했다. 그라운드에서의 역할이 크지 않은 야구팀의 주장은 꼭 필요하지는 않은 자리다. 공식적으로 주장을 두지 않는 팀도 얼마든지 있다. 양키스 캡틴 자리 역시 2014년 지터가 은퇴한 후 비어있었다. 저지를 공식 캡틴으로 만든 것은 저지가 지터의 뒤를 잇는 핀 스트라이프의 상징임을 공표한 것이었다.
하지만 양키스의 올시즌은 가장 공들인 두 선수로 인해 무너졌다. 유리몸의 기로에 서있는 저지는 올시즌 .281/.415/.615 22홈런 45타점을 기록하며 활약했지만 건강을 지키지 못했다. 6월 초 발가락 부상을 당한 저지는 7월 말에야 복귀하며 거의 두 달을 결장했다. 주포인 저지가 결장한 42경기 동안 양키스는 19승을 거두는데 그쳤고 저지가 이탈할 때 0.590이었던 승률은 그가 복귀했을 때는 0.529까지 떨어져있었다.
데뷔 첫 6년 동안 리그 평균 수준의 기량을 가진 '유리몸' 투수였지만 2021-2022시즌 맹활약하며 커리어를 '세탁'한 로돈은 기대감 만큼이나 불안도 큰 선수였다. 2021시즌마저도 부상을 겪은 로돈은 웬만해선 건강을 지키지 못하는 선수였고 FA 시즌에만 실력 이상의 성적을 쓰는 소위 'FA 로이드' 활약일 확률이 매우 높은 선수였다. 때문에 로돈이 스캇 보라스를 등에 업고 '7년 2억 달러'를 외칠 때 대부분의 구단들은 그를 외면했다.
하지만 2009년 이후 한 번도 월드시리즈에 오르지 못하며 우승 갈증이 커진 양키스는 참지 못하고 '악성 매물'에 손을 댔다. 그리고 양키스의 판단이 흐려진 덕분에 '인생 역전'에 성공한 로돈의 실체는 일각의 우려보다도 훨씬 형편없었다. 로돈은 스프링캠프 시범경기 개막 직후 부상을 당해 전반기 종료 직전에야 돌아와 팀 데뷔전을 치렀고 성적도 처참했다. 6경기 평균자책점 7.33의 수준 이하 성적을 쓴 로돈은 다시 부상을 당해 현재 부상자 명단에 오른 상태다. 오는 23일 복귀가 예상되고 있지만 복귀 후 활약이 그리 기대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올시즌 양키스를 망친 주범은 저지보다도 로돈이다. 저지는 양키스의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지난해 MVP였다. 구단의 자존심과 팬들의 바람 등 양키스가 거액을 투자해서라도 저지를 잡아야 할 이유는 충분했다. 하지만 로돈은 아니었다. 30대에 접어든 유리몸 투수에게 연평균 3,000만 달러에 가까운 돈을 투자하는 것보다는 약점이 있는 다양한 포지션을 보강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었다. 로돈의 화려한 부상 경력과 단축시즌까지의 커리어를 감안할 때 양키스의 투자가 '본전'이라도 되려면 로돈이 계약 첫 2시즌을 '사이영 급' 투수로 활약해줘야 했다.
하지만 로돈은 이미 '가장 젊고 건강할' 계약 첫 해를 망쳤다. 이제 한 살씩 나이가 들어갈수록 로돈이 건강하거나 좋은 기량을 보일 확률은 더 낮아질 수 밖에 없다. 최악의 경우에는 부상에 시달리며 수술과 재활로 남은 계약 기간의 대부분을 보낼 수도 있다. 로돈이 2017-2020시즌 4년 동안 겨우 232.1이닝을 투구한 투수라는 점을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시나리오다. 양키스는 어쩌면 6년 동안 한 번도 규정이닝을 소화하지 못할 투수에게 1억6,200만 달러를 버린 것일 수도 있다.
양키스가 로돈에게 돈을 버리는 대신 준척급 선발투수와 포수를 영입하고 백업 선수 층을 보강했다면 올시즌 성적은 달라졌을 수도 있다. 이미 '고령화' 된 주전 선수들이 부진하거나 부상을 당했을 때 그 자리를 제대로 채울 수 있는 선수들이 없었다. 타격에 재능이 없는 카일 히가시오카, 호세 트리비노에게 또 안방을 맡긴 것 역시 저지가 이탈한 뒤 타선이 급격히 붕괴하는 원인을 일부 제공했다.
로돈의 계약은 이제 막 시작됐다. 내년부터 지급액이 더 늘어나는 로돈의 계약은 2028년까지 양키스 페이롤의 한켠을 차지하며 팀 재정 운영에 걸림돌이 될 전망이다. 한 순간 판단을 잘못한 여파가 향후 몇 년간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여름 시장을 조용히 보낸 것도 이런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애매한 5할 이상 승률로 트레이드 데드라인을 맞이한 양키스는 지난 겨울 거액을 쓴 만큼 재정비를 선언할 수 없었고 이를 만회하기 위해 미래까지 포기할 수도 없었다.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조용히 데드라인을 보냈고 계속 추락하고 있다.
어느 때보다 야심차게 시즌을 준비했지만 양키스의 2023년은 처참한 실패로 향해가고 있다. 과연 양키스가 언제쯤 최고 명문 구단의 자존심을 회복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자료사진=카를로스 로돈)
뉴스엔 안형준 marka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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