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쌀의 날’에 되새겨 보는 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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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18일은 '쌀의 날'이다.
곡식 중 유일하게 쌀의 날을 제정했다는 것은 그만큼 쌀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 'ㅄㆍㄹ'이 오늘날 '쌀'로 변한 것이다.
각종 거래대금을 '쌀 몇되 값' '쌀 몇가마니 값'으로, 날짜를 '몇월 며칠'이 아니라 '모내기 때' '타작할 때' 등 벼농사 중심으로 기억하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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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18일은 ‘쌀의 날’이다. 쌀의 가치를 알리고 소비를 늘리기 위해 2015년 농림축산식품부가 기념일로 제정했다. 곡식 중 유일하게 쌀의 날을 제정했다는 것은 그만큼 쌀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쌀은 우리 민족에게 식량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여러 견해가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벼농사가 시작된 것은 신석기시대 후기로, 청동기시대부터 벼농사가 본격화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벼농사의 역사적 증거로는 선사시대 무문토기에 찍힌 볍씨 자국이나 탄화미, 농사 도구 등이 있다. 1998년 충북 청원군 옥산면(현 청주시 흥덕구 옥산면) 소로리에서 발굴된 볍씨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울산, 충남 논산 등지에서 발굴된 청동기시대 논 유적은 벼농사의 직접적 증거가 된다.
벼농사에 관한 문헌 자료로는 ‘삼국지’ 위서 고구려전을 비롯해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 여러 문헌이 있는데, ‘삼국사기’ 백제본기에는 ‘다루왕이 남쪽 주군에게 벼농사를 시작하게 하였다’는 대목이 있다. 이후 조선시대 각종 문헌에도 벼농사 기록이 나온다.
쌀이란 순우리말이 최초로 기록된 문헌은 ‘석보상절’이다. 1447년 편찬된 ‘석보상절’과 1449년 간행된 ‘월인천강지곡’에 각각 ‘ㅄㆍㄹ’로 표기돼 있다. 이 ‘ㅄㆍㄹ’이 오늘날 ‘쌀’로 변한 것이다. 이는 1527년 최세진이 편찬한 ‘훈몽자회’에 ‘쌀 미(米)’의 음이 ‘ㅄㆍㄹ 미’로 돼 있는 것으로 봐서 분명해진다.
벼농사는 이후 재배면적이 늘고 농기구 도입과 기술 발달로 수확량이 꾸준히 증가했다. 특히 삼국시대 시작된 우경(牛耕)과 조선 중기 도입된 이앙법은 ‘농업혁명’이라 할 정도로 벼농사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조선 후기에는 쌀이 주식으로 자리 잡으면서 다양한 문화를 낳았다. 특히 일상의 기준을 쌀과 관련지어 기록하고 기억했다. 각종 거래대금을 ‘쌀 몇되 값’ ‘쌀 몇가마니 값’으로, 날짜를 ‘몇월 며칠’이 아니라 ‘모내기 때’ ‘타작할 때’ 등 벼농사 중심으로 기억하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쌀이 식생활의 중심이 되다보니 쌀을 최고의 곡식으로 쳤다. 다른 곡식은 잡곡(雜穀)으로 분류해 상대적으로 낮게 대접했다.
일제강점기에는 쌀 수탈을 늘리기 위해 쌀 절약과 잡곡밥 먹기를 강요했다. 1939년 9월 ‘매일신보’에는 ‘쌀을 절약합시다’ ‘저녁은 잡곡밥으로’ ‘7분도미를 먹자’ 같은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해방 후에는 쌀 증산정책이 추진됐다. 토지 개간과 수리시설 확충 등 쌀 생산 기반을 탄탄히 하고 농민들이 증산에 힘쓰도록 했다. 이후 1970년대 ‘통일벼’ 개발로 생산량이 급격히 늘었고 1977년 대망의 ‘쌀 4000만석’을 달성해 쌀 자급 시대를 열었다. 당시엔 증산과 함께 절미(節米)운동을 벌였는데, 각 농가에 절미통을 보급해 쌀 절약을 독려했다.
그러다 1980년부터 쌀 소비가 계속 줄어 쌀값이 떨어지는 상황이 벌어지자 1990년대부터는 쌀 소비를 늘리자는 운동이 전개됐다. 쌀이 부족해 쌀을 적게 먹자던 분위기가 몇년 새 쌀을 많이 먹자는 분위기로 반전된 것이다. 남아도 걱정, 모자라도 걱정인 쌀 문제는 오랜 역사만큼이나 그 해법이 복잡다단하다.
네이버 사전에 ‘米’ 자를 부수로 둔 한자가 무려 550자가 나오고 중국 ‘대광익회옥편’에도 200자가 넘게 실려 있다. ‘미혹하다’ 또는 ‘헤매다’란 뜻의 미(迷), 힘이나 기운을 의미하는 기(氣) 자에는 모두 ‘米’ 자가 있다. 쌀을 먹지 않으면 미혹되거나 헤맬 수 있고 반대로 쌀을 많이 먹으면 기운이 난다는 뜻이리라.
밥 먹으면 생기는 힘, 밥심으로 무더위를 이겨내보자.
김재균 국립농업박물관 학예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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