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0회 영농수기 가작] 해와 달을 잡아두고 싶다

관리자 2023. 8. 18. 0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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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부문 이홍재(62·전북 고창군 심원면)
쓰레기 하나 제대로 못버리던 ‘초짜’
실수투성이어도 보듬는 이웃 정에
귀농센터서 만난 귀한 인연들 덕에
고창에서는 외로워할 시간이 없네
이홍재·이효숙씨 부부(맨 왼쪽부터)와 함께 2022년 전북 고창군 체류형 귀농귀촌센터에서 교육받고 귀농한 이웃들이 집 앞마당 텃밭에서 행복한 웃음을 짓고 있다. 타지에서 온 이들은 공동텃밭을 일구며 가족·친구처럼 지내고 있다.

이른 아침이다. 시골에서 맞는 아침 햇살은 도심에서 맛볼 수 없는 신선함이 있다. 더욱이 밤사이 비가 내린 후면 더욱 상쾌하고 싱싱한 느낌이 마음속을 파고든다. 숨을 크게 내쉬고 기지개를 막 켜려는 순간 마을회관 스피커에서 ‘딩동댕’ 예비 방송이 흐른다. 서울에서는 민방위 훈련 때나 들을 수 있는 소리라, 뭔 일인가 하고 귀를 쫑긋 세워서 마을회관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후 낭랑한 여성의 목소리가 아침 햇살을 가른다.

“알려드립니다. 마을회관 앞 쓰레기 적치장에 사골뼈를 종량제봉투에 담아 배출한 사람은 양심적으로 바로 오셔서 가져가시기 바랍니다.”

으악! 어제 내가 버렸는데. 서울에서 손님이 와서 사골을 고아 대접하고 남은 뼈를 종량제봉투에 담아 버렸는데, 양심적으로 오셔서 가져가라니 가지러 갈 수밖에. 모자를 푹 눌러쓰고 마을회관 앞으로 가서 조용히 문을 열고 종량제봉투를 들고 오려는데 앞집 어르신이 한마디 하신다.

“뼈는 종량제봉투에 넣으면 안돼요. 그냥 밭에 버려요.”

집에 와서 사골뼈를 골라내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다가 면사무소에 전화했더니 매립용 마대를 사서 넣으면 된다고 한다. 진작 알았으면 창피함은 당하지 않았을 텐데. 올해 2월에 이곳으로 이사 와서 이렇게 하나하나 부딪히면서 시골생활에 적응해가고 있다.

며칠 전에는 앞집 할머니께서 20ℓ용 살포기를 등에 메고 제초제를 뿌리셨다. 우리는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기로 했는데 지나가시면서 우리도 뿌려야 옆집으로 풀이 번지지 않는다고 하신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할머니의 말이 맞는 것 같다. 우리 풀 때문에 할머니 밭이 피해를 받으면 안되는데, 우리도 제초제를 뿌려야 하나. 아내와 상의한 결과 제초제를 뿌리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신경이 더 쓰인다. 혹시 피해를 주면 어떻게 하지? 요즘엔 할머니네 밭과 경계 지역에 풀이 나기가 무섭게, 수시로 가서 풀을 뽑는다.

식물에 빗물이 가장 좋다고 해서 이사 오자마자 빗물 활용 방법을 연구했다. 비가 올 때마다 얼마만큼의 빗물이 어떻게 흘러 나가는지 파악했고 다행히도 집 주변으로 흘러드는 물을 내보내는 조그만 수로가 설치돼 있어서 수로를 이용하기로 했다. 수로의 중간을 막고 물이 차면 파이프를 통해 물이 저장탱크로 흘러들게 만들었다. 때마침 비가 적당히 와서 긴장하며 물이 차기를 기다렸고, 물이 어느 정도 차자 파이프를 통해 저장탱크에 물이 차기 시작했다. 탱크에 물이 가득 찬 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뭔가 부족함이 없는 것 같았다. 하우스의 물은 이렇게 해결을 했는데 며칠 후 문제가 생겼다. 밤새 비가 왔지만 잘 자고 기분 좋게 문을 열고 앞을 보니 할머니 밭에서 할머니와 그 아들이 뭔가를 하고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아뿔싸, 내가 사고를 친 거였다. 비가 생각보다 많이 와서 빗물이 막아놓은 수로를 넘쳐 밭으로 흘러들었고 할머니 밭으로 물살이 파고들어 밭에 물고랑을 심하게 내고 말았다.

“전에는 이런 일이 한번도 없었는데 이게 웬일이랴? 수로는 왜 막은 거랴?”라는 할머니의 물음에 유구무언이 맞는 말인 것 같다. 그저 “무조건 죄송합니다. 다시는 피해가 가지 않도록 조치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할 뿐.

다음날 물이 아래 밭으로 흘러내리지 않도록 관을 사다가 묻었고, 수로도 벽돌 땜질을 했다. 며칠 전에도 비가 많이 와서 혹시나 하고 걱정했는데 완벽했다. 요즘엔 할머니가 완두콩도 주시고 호박 모종도 주시고 직접 재배한 양파도 주신다. 물론 우리도 가끔 뭔가 조금씩 나눠 드리지만 사소한 갈등이라고 무시하고 넘어갔다면 이웃의 정은 쌓이지 않았을 것이다.

지난해엔 전북 고창군 부안면에 있는 귀농·귀촌체류센터에 입주해 9개월 간의 교육과 살아보기 경험은 내가 이사해서 적응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교육을 받을 때는 내가 진짜로 정착을 할 것인지, 서울로 올라갈 건지 결정이 되지 않은 상태라 교육에 심혈을 기울이지 않았었다. 조그맣게 주어진 텃밭에서 알려주는 대로 상추나 토마토, 감자 등을 심어 가꾸기도 했지만 그게 귀농해서 내 소유 밭을 일구는데 도움이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었다.

나는 운이 좋은 것 같다. 지난해 교육을 받으면서 동기들과 같이 좋은 관계를 맺으며 교육을 받고 공동시설에서 생활을 했다. 교육생 가운데 부부가 같이 교육을 받거나 공동생활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초여름 어느 날 부부팀 모임이 만들어졌다. 4가정, 8명인데 치맥을 하면서 서로 정보를 교환하며 도움되는 일들을 만들어 보자고 했다. 그중 인문학에 밝은 교사 출신이 있는데 이름을 ‘고처’로 하자고 했다. 고치긴 뭘 고치지 궁금했는데 설명인즉 ‘고창은 처음처럼’이란다. 너무 좋다. 고창이 날마나 처음처럼의 느낌이었으면 좋겠다.

나뿐만이 아니라 고처 부부팀은 정착할 방법을 찾고 있었다. 개인별로 터를 알아보러 다니고 정보를 얻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우린 현재 4가구지만 5 가구 이상 모여 일정 지역에 터를 조성하면 상하수도·전기 등의 시설이 제공된다고 해 이 방법도 연구해보기로 했다. 각자 알아보면서, 좋은 곳이 있으면 같이 보러 가기도 하고 보고 나서 각자 느낌을 공유하기도 했다. 가장 먼저 한 가정이 터를 잡았다. 무려 30여회 방문해서 주변을 살피고 또 살폈다고 한다. 그리고 매매하기로 결정했다. 우리가 봐도 참 좋은 위치인 것 같다. 집도 너무 좋다. 본인들도 참 마음에 들어한다. 그러면 됐다. 

이제 3가정이 남았다. 부부 4팀이 같이 정보를 얻어 보러 다닌다. 그중에 또 마음에 든 집이 하나 생겼다. 바로 내가 계약한 집이다. 나는 겁 없이 집을 보러 간 첫날 구입하기로 구두 계약을 해버렸다. 집과 땅, 위치, 조경 등이 내가 생각해왔던 것과 맞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계약 기념으로 돈가스를 쐈다. 이제 2팀이 구하면 된다. 그러면 4팀이 정착할 수 있다. 한 팀은 위태위태하다. 아직은 이곳에 정을 느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부부팀 간의 모임에 정을 느껴 같이하고 싶다며 틈나는 대로 집을 보러 다닌다. 가끔은 서울로 간다는 말도 들린다. 

같이 정착했으면 좋겠는데 하는 마음으로 좋은 곳이 나오면 같이 보러다니길 수회, 드디어 마음에 드는 집이 나타났다. 내부 인테리어가 너무 잘 돼 있다. 마치 신혼집 같다. 시골에 이런 집이 있을 줄이야. 한집이 또 계약을 하고 이제 부부 한 팀이 남았다. 이들 부부는 여러 곳을 꾸준히 보러 다녔지만 마음에 드는 집을 찾지 못했다. 우리도 뭔가 도움이 되기 위해 노력했지만 꿈인 카페를 지을 만한 터전은 찾지 못했다. 어찌할까? 서울로 올라갈까? 아쉬운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는데 임대로라도 거주하면서 새로운 터전을 찾겠다고 한다. 결국 비어 있는 집을 계약하고 우리 고처 회원들이 방문해서 도배도 하고, 싱크대로 닦고, 화장실도 청소하고, 먼지도 제거하면서 살 수 있는 집을 가꾸기 위해 힘을 합쳤다. 사람의 힘은 놀라운 것이다. 폐허로 느껴졌던 집이 안락한 농가로 변하는 것이다. 지금은 꽃도 가꾸고 여러 가지 변화를 줘서 농촌의 아름다운 집이 됐다. 바라는 것은 이 가정이 원하는 대로 조그만 카페를 할 수 있는 공간을 찾으면 좋겠다.

이렇게 고처 모임을 통해 4가정이 이곳에 정착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러한 모임이 없었다면 과연 몇 가정이나 정착할 수 있었을까 싶다. 아마 나도 서울에서 살고 있지 않았을까?

이곳에서 살다보니 경영체 등록을 하지 않으면 거의 아무 혜택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물론 내 돈을 투자하면 못할 것 없겠지만 남들은 지원받는데 나만 못 받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라 생각한다. 나는 집에 붙어 있는 땅이 760㎡(230평) 정도 된다. 경영체 등록 요건에 231여㎡(70평)가 모자란다. 그래서 주변에 땅을 임대하는 방법을 찾기로 했다. 아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마을에서 임대해주겠다는 분의 협조를 얻어 서류를 갖춘 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에 갔는데, 빌려주는 토지에 하우스가 있고 식물이 식재되지 않으면 면적에서 빠진다고 한다. 확인해보니 하우스는 농기구 저장 창고로 사용되고 있어서 아쉽지만 실패했다. 또 다른 분이 무상으로 임대해 준다고 해서 확인해 보니 식물을 심을 수 있는 밭이라 서류를 갖춰서 농지은행에 임대차 계약을 하러 갔는데 소유주가 논농사로 지원을 받고 있어서 임대 자격이 안된다고 한다. 또 실패다. 아, 어렵다. 그래도 이 소유주는 무상으로 줄 테니 뭐라도 심으라고 한다. 고처 회원들과 상의해서 이곳에 땅콩을 심었다. 물론 공동 경작이다. 경비도, 수익도 똑같이 부담하고 나눈다. 어쩌면 이게 시발점으로 ‘고처’란 이름의 주식회사가 만들어질지도 모른다.

이참에 땅을 사자. 미국의 소설가 펄 벅이 쓴 장편소설 ‘대지’의 주인공 왕룽은 돈이 생기면 땅을 산다. 이것이 그에게 부를 안겨 줬다. 그런데 나는 경영체 등록을 위해 땅을 산다. 이것이 나중에 어떤 변화를 줄 수 있을 지 모르지만 지금 당장은 경영체 등록이 우선이다. 그래야 농기구를 마음대로 빌리고 퇴비·비료를 싸게 살 수 있다. 세제 혜택도 받을 수 있다.

고창에 정착해서 많이 외로울 줄 알았는데 외로울 시간이 없다. 아침에 일어나면 밭을 가꾸고, 기타를 배우고, 목공을 배우고, 탁구를 치러가고, 고처 모임도 수시로 갖고, 서울에서 손님이 많이 오고, 정말 하루하루가 너무 빨리 지나간다. 고창의 해와 달을 잡아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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