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한 그루에 전쟁 날 뻔…미군들 살해된 판문점 도끼 만행 [뉴스속오늘]

[편집자주]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기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왼쪽 위 헬멧을 쓴 사람이 도끼로 공격당한 배럿 중위, 트럭 앞에 쓰러져 발만 보이는 사람이 보니파스 대위. 배럿 중위는 공격당한 지 한시간 반이 지나서 발견됐다. 그는 발견 당시 살아있었지만 후송 중 사망했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조선 사람의 본때를 보여주라. 단, 남조선 노무자들은 건드리거나 총을 쓰지 말고 미제 놈들에게 본때를 보여줘라."

UN군이 시야 확보를 위해 판문점에서 미루나무 가지치기를 한다는 보고를 받은 후계자 수업을 받던 김정일이 이같이 말했다. 김정일의 명령을 받고 며칠 뒤인 1976년 8월 18일 오전. 벌목 작업을 지도하던 미국인 UN군 장교 2명이 조선인민군에 의해 살해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 사건은 단순히 미국과 북한의 문제를 넘어 UN에 무력도발을 한 대도발 사건이라는 점에서 국제적인 문제로 비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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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치기 조언하며 화기애애했는데…도끼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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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8월 당시 판문점은 물리적인 군사분계선이 존재하지 않는 단어 그대로의 공동경비구역이었다.

유엔군 측 3초소는 조선인민군 육군 초소 3개소에 포위당한 지점에서 항상 위협에 노출돼 있었다. 유엔군은 가장 위에 있는 5초소(OP 5)에 올라서 3초소를 지켜보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3초소와 5초소 중간에 위치한 미루나무가 자라면서 시야를 방해하기 시작했다.

이에 UN군 경비대 작업반은 시야가 확보되지 않으면 3초소가 위험에 노출되니 미루나무를 자를 것을 권고했다.

이후 8월 6일 한국인 노무자 4명과 UN군 병사 4명이 미루나무 절단을 시도했지만, 북한군이 이의를 제기하면서 작업을 중단시키자 UN군은 일단 후퇴했다.

사건 당일인 8월 18일. UN군은 시야 확보를 위해 가지치기만 하는 것으로 작업을 결정했다. 북한군이 다가와 항의했지만, UN군은 베는 것이 아니라 가지치기 작업을 하는 중이라 설명했다.

현장에 있던 북한군도 상층부에 연락한 뒤 답이 오자 가지치기 정도면 괜찮다고 수긍했다. 북한군은 오히려 노무자들에게 가지를 잘 치는 법에 대해 조언을 하기도 할 정도로 분위기가 화기애애한 것으로 알려졌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도 잠시 곧바로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10시 47분쯤 박철 중위 등 북한군 장교 2명이 15명의 병력을 이끌고 현장에 나타났다. 박철 중위는 보니파스 대위에게 즉시 작업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보니파스 대위는 박철 중위의 말을 무시하고 작업을 속행할 것을 지시했다. 대치 상황이 지속된 11시 30분쯤 박철 중위가 "그만두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고 재차 위협을 가했으나 보니파스 대위는 무시했다.

그러다 박철 중위가 차고 있던 시계를 주머니에 넣으며 신호를 보내자 북한군들은 일제히 소매를 걷었고, 박철 중위가 "죽여!"라고 소리를 질렀다. 이에 북한군들은 트럭에 싣고 온 둔기와 한국인 노무자들이 사용하던 도끼를 이용해 기습적으로 집단 폭행을 가하기 시작했다.

보니파스 대위가 가장 먼저 쓰러졌고, 북한군 5명이 쓰러진 그에게 달려들어 도끼로 살해했다. 마크 배럿 중위는 구타를 당한 채 방치되었으며 발견 당시에는 살아 있었지만, 이송 중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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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뻔한 태도로 일관하던 북한…미국 강경 대응에 결국 꼬리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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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이후 북한은 미군이 먼저 자신들에게 도끼를 던져 반응한 것이라는 공식 발표를 내며 미국의 사죄를 요구했다.

이같은 북한의 발표에 이 사태의 최대 피해자인 미국은 매우 분노했다. 당시 UN군 사령관이자 미 육군 대장이었던 리처드 스틸웰 장군은 보고가 올라오자마자 바로 전투기에 탑승해 급히 한국으로 입국했다.

한국에 입국한 스틸웰 대장은 즉시 회의를 소집한 뒤, 박정희 대통령을 만나 데프콘 3을 발동시키자는 합의를 내렸다.

미국은 1만 2000명가량의 미 육군과 1800명의 미 해병대를 증파했고 미국의 최강 정예 해군이라 불리는 미 해군 7함대와 B-52 전략 폭격기 3대까지 추가 배치했다.

이처럼 상황이 악화하자 결국 김일성 주석이 직접 나서 유감 성명을 표했다. 처음 미국은 "유감 성명은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거부했다가 미루나무를 벌목하는 일명 '폴 버니언 작전'이 끝난 시점인 다음날에 결국 수락했다.

사건 이후 판문점 경비초소에는 모호한 경계 대신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확실한 경계가 세워졌다. 경계 밖에 있던 양측 초소는 모두 철거되고 현재와 같은 상태가 됐다.

미국이 폴 버니언 작전에서 벌목한 미루나무의 일부는 JSA 안보견학관에 전시하여 방문객들에게 공개되고 있다.

현재 미루나무가 있던 자리에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비가 세워졌다. 판문점 관람 코스에 버스를 타고 추모비 앞을 지나는 것이 포함돼 있으며 버스 안에서 이 추모비를 볼 수 있다.

하수민 기자 breathe_in@m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