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성 “영화 ‘비트’, ‘나에게 꿈이 없었다’ 내레이션 쓸 때부터 감독 꿈꿔…26년만에 이뤘죠”[SS인터뷰]
[스포츠서울 | 조은별기자]“영화 ‘비트’의 ‘나에게 꿈이 없었다’ 내레이션을 쓸 때부터 감독을 꿈꿨던 것 같아요.”
전 세계에서 가장 잘생긴 감독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대한민국을 넘어 아시아에서 가장 잘생긴 감독이 탄생한 건 분명하다. 첫 장편상업영화 ‘보호자’의 연출을 맡은 정우성은 자신의 이름 석자를 널리 알린 영화 ‘비트’의 유명한 도입부 내레이션 ‘나에겐 꿈이 없었다’를 직접 쓴 사연과 함께 감독의 꿈을 갖게 된 사연을 전했다.
“운이 좋아서 배우가 됐지만 의미없는 질문을 많이 던졌던 시기였어요. 친구들과 ‘넌 뭐가 될거야?’라는 얘기를 종종 나누곤 했죠. 그때 김성수 감독님이 ‘비트’는 네 또래 얘기니 직접 내레이션을 써보라고 권하셨어요. 그리고 제가 쓴 내레이션을 영화에 그대로 사용하는 걸 본 뒤 자신감이 생겼어요. 아마 그때부터 직접 연출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20대 청년의 막연했던 꿈은 26년이라는 긴 시간을 거쳐 50대에 결실을 이루게 됐다. 정우성은 “목표만 가지고 있을 뿐, 당장 해야겠단 욕심은 없었다. 언젠가 기회가 생길 것이라고 생각하며 준비만 해왔다”고 차분하게 말했다.
기회는 준비하는 자에게 찾아온다. 정우성에게도 그랬다. 영화 ‘증인’(2019) 촬영을 마친 뒤 액션연기의 갈증을 느끼던 어느 날 평소 친분이 있던 프로듀서에게 시나리오를 받았다. 당시 연출은 신인 감독이 내정돼 있었다. 주인공 수혁 역 출연을 수락했는데 이후 감독이 개인 사정으로 연출을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어차피 수혁 역 연기를 위해 시간을 비워뒀던 터라 ‘내가 연출해볼까’ 했더니 프로듀서도 ‘저는 좋죠 선배님’ 이라고 하더라고요. 지금 생각해보니 그 프로듀서의 큰 그림이 아니었나 싶어요.(웃음)”
영화는 어둠의 세계에서 일하다 감옥에 간 수혁이 출소 뒤 연인과 어린 딸을 만나는 내용으로 출발한다. 수혁은 과거를 지우고 딸을 위해 ‘평범하고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하지만 조직은 그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다. 설상가상 2인자였던 성준(김준한 분)은 행여 수혁이 자신의 자리를 되찾을까봐 전전긍긍하며 청부살인업자를 고용한다.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배우지만 초보감독인 정우성에게 모든 게 도전이었다. 캐스팅조차 쉽지 않았다. 정우성은 “캐스팅 앞에서는 그동안 잘 살아온 게 소용없었다”고 농을 치며 “차라리 나를 모르는 사람에게 역할을 제안하는 게 나았다”고 말했다.
가장 캐스팅이 어려웠던 인물은 성준이 고용한 청부살인업자 우진 역의 김남길이다. 우진은 잔혹함과 천진난만함이 공존하는 ‘조커’같은 인물이다. 정우성은 “우진 역을 새로운 얼굴에게 맡기는건 너무 큰 모험이었다. 김남길에게 시나리오를 건넬 때도 행여 부담을 가질까봐 따로 연락을 하거나 ‘부담갖지 말라’는 말조차 꺼내지 않았다. 다행히 김남길이 스스로 우진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출연을 수락해줬다”고 설명했다.
감독 정우성은 배우들에게 ‘나침반’을 제시하는 연출자다. 정우성은 “배우들의 이미지를 일부러 규정하지 않았다. 그런 시도가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는데 행여 제약을 줄 것 같았다”며 “배우들이 한걸음 한걸음 길을 찾아나갈 수 있도록 유도하기만 했다”고 연출포인트를 짚었다.
‘절친’이자 ‘청담부부’로 불리는 배우 이정재는 정우성의 든든한 ‘보호자’다. 촬영은 ‘보호자’가 먼저 했지만 이정재의 ‘헌트’가 지난해 먼저 관객에게 선보여진 ‘개봉선배’기도 하다.
“연출과 연기를 병행하다보니 체력소모가 컸어요. 출연분량이 없는 날은 심적으로 가벼웠죠. 어느 날 제가 고단해 보였는지 ‘옆집남자’(이정재)가 제게 ‘우성 씨, 홍삼이라도 먹어’라고 하더라고요. (웃음) 저도 작년에 ‘헌트’ 개봉 때 ‘거, 산삼 드세요’라고 했죠.”
오랜 시간 목표한 만큼, 고생이 큰 만큼, 영화가 관객에게 좋은 평가를 받으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보호자’는 개봉 첫날인 15일, 4만 222명이 관람하며 박스오피스 7위로 출발했다. 16일에도 1만 2528명이 관람, 누적관객 수 5만 6639명을 기록하며 박스오피스 6위에 머물렀다.
“모든 사람이 저를 좋아할 수 없듯, 모든 사람이 이 영화를 좋아할 수 없으니까요. 클리셰적인 설정이 불편할 수도 있고, 액션 돌파를 보고 싶었는데 새로운 시도가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감독 정우성이 하고자 하는 말을 이해하는 분과 대화가 이뤄졌으면 좋겠어요. 제가 감독으로서 생각했던 이 영화의 언어가 좀 더 많아지길 바랍니다.”
mulgae@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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