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판 나토’ 창설? 한·미·일 “안보 위기에 서로 대화·관여”

길윤형 2023. 8. 18.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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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한-미-일 정상회의]

지난 5월 21일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관국 자격으로 일본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일본 히로시마 그랜드프린스호텔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의에 앞서 기념사진을 찍고 회의장으로 향하고 있다. 히로시마/연합뉴스

16~17일 한·미 고위 당국자의 브리핑을 통해 18일 미국 대통령 별장인 캠프데이비드에서 열리는 한·미·일 정상회의에서 도출될 합의 내용의 윤곽이 분명해졌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근본적 변화’라고 표현한 것처럼 이번 정상회의는 2차 세계대전 이후 70여년 동안 이어져온 동아시아 안보 질서에 형용하기 힘든 큰 변화를 불러오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 합의는 ‘동아시아판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창설과 같은 집단안보체 창설로 나아가는 시작점이 될 수도 있다.

세 나라는 이번 정상회의를 통해 군사 분야뿐 아니라 경제 안보, 기후 변화, 인도적 지원, 첨단 기술을 포함한 광범위한 영역에서 협력을 강화하기로 선언하게 된다. 또 ‘캠프데이비드 원칙’이란 별도 문서를 통해 이번 회의에서 약속한 사항을 되돌리지 못하도록 협력의 ‘제도화’도 시도한다.

여러 합의 내용 가운데 단연 눈에 띄는 것은 안보 협력의 강화다. 세 나라는 정상·외교장관·국방장관·안보실장 등 국가 안보를 다루는 핵심 당국자 간의 회담을 정례화하고, 이들 사이에 ‘핫라인’을 개설하게 된다. 이런 다층적인 소통틀과 ‘핫라인’을 통해 세 나라는 위기 상황에서 “서로 대화하고 관여”할 예정이다. 또 세 나라가 참여하는 연합훈련이 연례화된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런 점들을 들어 캠프데이비드에서 이뤄지는 이번 결정을 ‘3자의 역사적 합의’라고 표현했다.

한국 대통령실은 세 나라가 내놓은 이번 합의로 한-일이 동맹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대통령실 고위 당국자는 “동맹이라고 하면, 한 나라가 공격당했을 때 다른 일방이 참전하는 관계인데 한-일은 그런 동맹 관계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합의로 “특정 대상에 대해 유기적으로 필요한 정보를 공유하고, 세 나라가 안보 이익에 직결되는 문제라고 합의될 때 협력”할 수 있게 돼 “3각 안보협력 체제라고 얘기할 순 있”다고 말했다.

세 나라가 18일 내놓는 합의문에서 가장 뜨거운 논란이 예상되는 부분은 위기 상황이 발생할 때 각국이 상대국들과 “서로 대화하고 관여한다”는 부분이다. 이는 나토 헌장 4조에 담긴 한 나라의 “안보가 위협받을 때 함께 협의한다”는 구절을 연상시킨다. 나토는 이 조항 바로 뒤에 한 나라에 대한 공격을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해 공동대응한다는 집단안보 조항(5장)을 배치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합의를 향후 동아시아판 나토 창설을 염두에 둔 첫 구체적인 움직임이라 해석할 수 있다.

유럽과 달리 동아시아에서 나토와 같은 집단안보 체제가 제도화되지 못한 것은 협력의 ‘기본 축’이 되어야 할 두 나라인 한·일의 역사 갈등과 평화헌법의 제약 때문이었다. 한국은 1968년 1월 김신조 청와대 습격 사건과 북의 푸에블로호 나포 등의 큰 안보 위기를 겪은 뒤 나토와 비슷한 집단안보 기구인 아시아태평양조약기구(APATO) 창설을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베트남 전쟁으로 인해 국내 반전 운동에 시달리던 미국과 평화헌법 9조의 제약 아래 놓여 있던 일본이 동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972년 2월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계기로 미국이 대중 관여 정책에 나서며 아시아판 나토 구상은 자연스레 소멸했다.

변화가 시작된 것은 중국의 부상이 구체화되던 2010년대 중반부터였다. 미국은 아시아판 나토의 생성을 가로막아온 두 요소인 한-일 역사 갈등과 일본 평화헌법이란 제약을 하나씩 해체해왔다. 한·일을 화해시키려 한국에 외교적 압박을 가했고, 일본의 재군비를 지지했다. 미국은 일본이 지난해 12월 북·중에 대한 예방적 선제타격 능력을 의미하는 ‘적기지 공격 능력’을 갖겠다고 선언하자 이를 열렬히 환영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3월 한-일 협력을 제약해온 마지막 장애물인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판결에 대해 일방적 ‘양보안’을 내놓았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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