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취와 낭만 사이, 우리가 모르는 열대 [책&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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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때 접한 '슬기로운 생활' 교과서는 한국을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로 소개했다.
여기엔 사계절은 좋다는 가치 판단이 은은히 깔렸었고, 1년 내내 더운 열대 지역은 사계절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자리 잡았다.
열대가 열등하다는 인식은 한국만의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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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학자의 열대 인문여행
야만과 지상낙원이라는 편견에 갇힌 열대의 진짜모습을 만나다
이영민 지음 l 아날로그 l 1만8800원
초등학생 때 접한 ‘슬기로운 생활’ 교과서는 한국을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로 소개했다. 여기엔 사계절은 좋다는 가치 판단이 은은히 깔렸었고, 1년 내내 더운 열대 지역은 사계절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자리 잡았다. 열대가 열등하다는 인식은 한국만의 것은 아니다. 서구 선진국의 발명품이기도 하다. 호모 사피엔스의 고향이 아프리카인데도 서구의 역사학자들은 아프리카를 “‘역사가 없는 대륙’으로 평가”했고, 열대 해안 지역의 지명들(노예해안, 상아해안, 후추해안…)은 제국주의가 열대에서 “무엇을 어떻게 착취했는지를” 암시한다.
반대편에는 ‘아름다운 원시 자연’으로서의 열대가 있지만, 이 역시 오래된 대상화에 지나지 않는다. 인식의 ‘주류’를 결정했던 유럽이 “19세기 말에 이르러 피폐해지면서 순수한 원시성을 동경하는 예술가들에 의해 상상적 낙원으로서의 열대성”이 이미지화된 것이기 때문이다. 열대에 흔히 붙는 수식어 ‘이색적’이라는 말을 뜯어 보면 ‘다른 색깔’인데, 그것은 매혹인 동시에 하얀 빛깔(백인)을 기본값으로 설정하고 이외의 모든 빛깔(유색)을 착취해 온 역사의 방증이다.
‘역사가 없는 대륙’과 ‘낭만적인 휴양지’를 오갔던 열대는 이제 ‘기후위기의 최전선’에 있다. 이미 오세아니아의 나라 투발루는 미개함이나 관광지가 아니라 기후위기로 유명세를 탔다. 평균 고도가 2미터인 이 나라의 외교장관은 2021년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알리려 자국의 해변에서 허벅지까지 잠긴 채 연설했다. 이 연설이 있은 지 2년, 유엔은 우리가 이제 지구온난화를 넘어 ‘글로벌 보일링’(Global Boiling)의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진단했다. 그리고 한국 언론은 글로벌 보일링을 ‘지구열대화’라고 번역한다. 인식론적 열대와 존재론적 열대 사이의 간극을 좁히지도 못했건만, 열대는 이미 성큼 가까워졌다.
조해영 기자 hy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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